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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중국 부자들이 쓴다는 그 ‘황사 마스크'?

  • 박수진
  • 입력 2015.03.29 09:22
  • 수정 2015.03.29 09:24

[토요판] 르포 / 황사감시센터와 마스크 제조공장

봄이 되면 한반도엔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옵니다. 사막이 없는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지구 온난화 탓에 사막화의 폐해는 온몸으로 겪고 있습니다. 지구를 거꾸로 돌릴 수도 없고 거대한 방풍벽을 칠 수도 없습니다.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성능 좋은 마스크와 신제품 공기청정기만 바라보며 각자도생해야 할까요? 서울황사감시센터와 황사마스크 제조공장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25일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도부라이프텍의 황사마스크 제조 공장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포장하고 있다. 도부라이프텍은 이달부터 일반인들이 쓰는 ‘방독면’ 형태의 황사 대비용 방진마스크의 시판에 들어갔다.

봄철마다 불어오는 모래바람 황사는 다른 말로 ‘아시아의 먼지’(Asian dust)라 불린다. 우리에겐 <삼국사기>에 등장할 만큼 오래되고 익숙한 자연현상이지만, 세계적으론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서 유난한 일일 뿐이다. 날씨가 포근해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불청객은 바다와 떨어진 대륙의 깊고 건조한 사막에서 발원한다. 부유하는 흙먼지는 지구 자전으로 형성된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 상공을 거쳐 멀리 북태평양까지 흩날린다. 지구의 자전 방향을 반대로 돌린다면 모를까, 대륙의 동쪽 반도에 터잡은 우리로선 해마다 불어오는 이 거대한 모래바람을 달리 어찌할 길이 없다. 황사의 원인인 사막화를 막으려면 전 지구적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지만 여의치 않다. 황사와 더불어 살아가려면, 어찌해야 할까.

PM10 관측값 800 넘기면 ‘경보’

지난 23일 오후 황사감시센터가 있는 서울기상관측소를 찾았다. 관측소는 종로구 송월동 1번지 옛 기상청 건물에 있다. 백범 김구가 머물던 ‘경교장’을 끼고 강북삼성병원과 서울시교육청을 지나 구부정한 언덕길을 5분 정도 오르니 서울기상관측소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나왔다. 다시 50개가량의 계단을 딛고 오르자 눈앞에 넓은 개활지가 펼쳐졌다. 일제 때쯤으로 보이는 옛 양식의 하얀 건물과 한편에 놓인 각종 관측장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건물 앞마당엔 ‘계절관측 표본목’인 단풍나무와 매화, 진달래가 심어져 있었다. 단풍나무엔 꽃이 없었지만, 매화와 진달래엔 하얀색과 자주색 꽃이 피었다.

이 건물은 종로구 낙원동에 있던 경성측후소가 현 송월동으로 이전한 1933년에 세워졌다. 기상청이 1998년 신대방동으로 이전한 뒤에도 서울기상관측소로 지정돼 기상관측 업무를 맡고 있다. 서울기상관측소와 함께 한국기상산업진흥원, 서울황사감시센터가 이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86m에 위치한 관측소는 주변이 탁 트였다. 서쪽의 안산과 북쪽의 인왕산, 멀리 북한산 백운대와 이곳에서 14㎞ 떨어진 관악산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하늘은 옅은 푸른빛을 띠었고, 주변에 가릴 것이 없는 관측소 건물엔 봄볕이 그대로 내리쬈다.

이곳에선 관측예보사 4명이 12시간씩 돌아가며 24시간 교대근무를 했다. 두 달째 서울관측소에서 근무 중이라는 송광명(32) 관측예보사는 “올 들어 황사 관측일수가 11일로 이미 지난 한 해 동안 황사 관측일수를 넘어섰다”고 했다. 실제 서울관측소에서 황사를 관측한 날은 지난 1월에 하루, 지난달엔 나흘, 이달엔 엿새였다. 지난해엔 황사 관측일이 한 해 동안 열흘, 2013년엔 사흘, 2012년엔 하루에 불과했다. 올해 유난한 셈이다.

올해 유독 황사 관측일수가 많았던 이유는 ‘겨울 황사’ 탓이다. 지난달 22~23일 이틀 동안 전국에 나타났던 짙은 황사도 겨울 황사다. 기상청은 지난달 ‘기상특성’ 자료에서 “지난겨울 주요 황사 발원지인 몽골과 중국 북부 지역의 눈덮임이 평년보다 적었고, 2월에 고온 건조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겨울철임에도) 황사가 발원하기 좋은 조건이 됐다”고 설명했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13년 동안 황사는 114차례 불어왔는데, 그중 49%가 고비사막과 내몽골 지역에서 발원했고 다음으로 많은 18%가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원했다.

황사 관측은 세계기상기구(WMO)의 권고에 따라 목측(눈으로 하는 관측)을 기본으로 한다. 시정이 혼탁하고 대기에서 흙냄새가 나며 하늘의 색깔이 황적색이면 황사로 판단한다. 자동차 유리나 현관 같은 곳에 쌓인 먼지의 상태도 본다. 현재 전국엔 28개의 황사관측소가 설치돼 있다. 2005년엔 중국 황사 발원지와 경유지에 각각 3개, 2개의 관측소가 설치됐다. 2007년엔 만주 지역에도 5곳을 추가했고 북한 지역인 개성과 금강산에도 관측장비를 설치했다.

대기 중의 미세먼지(PM10) 측정값은 황사특보를 발령하기 위해 활용한다. PM10은 지름(직경) 10㎛(마이크로미터) 이하 크기의 입자를 말하는데, 관측값은 1㎥ 공간 안에 이런 입자가 몇 개나 있는지를 나타낸다. 기상청은 2002년 4월부터 황사특보제를 시행하고 있다. PM10 관측값이 1시간 평균 400을 넘은 상태가 2시간 이상 지속되면 주의보를, 800을 넘기면 경보를 발표한다.

과거 기록을 보면 전국적으로 짙은 황사가 관측되는 날 관측값이 1000을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짙은 황사가 발생한 2010년 3월20~21일에 흑산도와 대구 관측소의 관측 최고값은 2712와 2684였다. 당시엔 강한 바람을 타고 황사가 빠르게 물러나 큰 피해가 없었지만, 2008년 3월2~3일엔 일부 초등학교가 임시휴교를 했고 2007년 3월31일~4월2일엔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됐다. 2006년 3월10~11일엔 공원이나 국립공원 이용객이 급감했다. 이런 날 입과 코를 가리는 마스크 없이 장시간 실외활동을 하면 어떻게 될까. 기상청은 황사 주의보 단계에선 노약자나 어린이, 호흡기 질환자의 실외활동을, 경보 단계가 되면 일반인의 실외활동을 자제할 것을 권한다.

“황사에선 칼슘이 많이 나오는 편”

오후 4시 정각이 되자 송 예보사의 자리에서 요란한 벨 소리가 울렸다. 예보사들은 매시간 정각마다 현재 날씨와 관련된 각종 수치를 입력해야 한다. 그는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지만 않으면, 크게 바쁘지는 않다. 황사나 눈, 집중호우 같은 ‘악기상’ 상황일 땐 특보 대처를 위해 보고를 서둘러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사무실 한쪽 벽면에 놓인 황사 감시 시스템의 PM10 수치는 인터뷰를 진행되는 동안 60에서 65로 바뀌어 있었다. 모니터 위쪽에 표시된 ‘황사 정보’(200), ‘황사 주의보’(300), ‘황사 경보’(500)까지 가기엔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다. 수치가 각각 400(주의보), 800(경보)인 특보 기준보다 낮았는데, 이는 “특보를 발표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관측소 내부 기준”이라고 송 예보사는 설명했다.

서울기상관측소가 황사를 포함해 서울의 각종 기상상황을 관측하는 구실을 하는 곳이라면, 바로 옆 황사감시센터는 황사만을 두고 물리적, 화학적, 광학적 특성을 분석하는 연구시설이다. 국립기상과학원의 황사연구과 연구원 2명이 이곳에서 근무한다.

이혜정 연구원은 12개의 관을 이어 붙인 모습의 ‘다단식 포집기’를 보여줬다. 그는 “입자 크기에 따라 12개의 구간이 있고 구멍이 큰 순서대로 연결돼 있다. 유입된 공기에 포함된 황사나 연무 입자는 크기가 큰 순서대로 포집기 안에 쌓인다”고 설명했다. 채집한 입자의 크기가 주로 어느 구간에 분포돼 있는지를 보아 ‘황사’와 ‘연무’(Haze)로 구분했다.

황사는 중국과 몽골의 황토지대에서 바람에 의해 불려 올라간 황토 먼지가 한반도에 이르러 서서히 하강하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연무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극히 작고 건조한 고체 입자가 대기 중에 떠다니는 현상을 이른다. 연무는 황사처럼 대륙에서 발원하지 않으며, 크기와 색도 다르다. 실제 채집을 해보면 황사는 1.8~10㎛ 크기인 입자가 많고 색깔도 황토색을 띤다. 반면 연무는 1.8㎛ 이하 크기 입자가 주를 이루고 색도 짙은 회색이나 검은색이다. 현재는 황사에 해당하는 PM10을 기준으로 예보하지만 최근엔 연무에 해당하는 초미세먼지(PM2.5)가 문제 되면서 이를 따로 관측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연구원이 꺼내 보여준 두 개의 배양접시에 쌓인 입자는 각각 누런 흙색과 짙은 회색으로 한눈에 봐도 차이가 있었다. 그는 “지난달엔 PM10 측정값이 1000 가까이 올라갔는데, 누런 쪽이 그때 채취한 황사 같다”며 “요즘은 황사와 연무가 합쳐서 오는 경우가 있어 색이 완벽히 구분되지 않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센터에선 채집한 입자를 물에 녹여 황산염과 질산염, 암모늄 같은 성분의 함유도를 분석한다. 색으론 구분되지 않는 입자를 화학적으로 구분하기 위해서다. “황사에선 칼슘이 높게 나오는 편”이라고 이 연구원은 설명했다.

황사 현상은 해가 갈수록 빈번해진다. 기상청이 정리한 ‘봄철(3~5월) 황사일수 평균값’을 보면 그런 경향이 뚜렷하다. 황사일수는 전국 17개 목측 관측소에서 모두 황사가 관측된 날만을 헤아리는데,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 동안 평균 2.3일이었던 봄철 황사일수는 1971년부터 2000년까지 3.6일로, 다시 1981년부터 2010년까지 5.2일로 늘었다. 시간이 갈수록 황사 관측일수가 늘지만 이를 예측하는 건 길어야 2~3일 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발원지에서 모래바람이 일면, 기압 분포와 기류 등을 보아 2~3일 뒤 한반도로 넘어올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국립기상과학원 황사연구과 김정은 연구사는 “황사 예보는 길어야 사흘 전에 나갈 수밖에 없다. 황사의 발원이나 바람의 흐름을 그보다 더 일찍 예상하긴 어렵다”고 했다.

천마스크 넘어 플라스틱 마스크 시대

황사가 더 빈번해지고, 인체에 미치는 해악이 더 많이 알려지면서 관련 산업도 번창하고 있다. 황사마스크나 공기청정기를 생산하는 회사들의 주가는 봄철에 유독 등락이 심하다. 우리는 대륙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입과 코를 막거나 각자가 흡입하는 공기를 능력껏 정화하는 일로 대처할 따름이다.

25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한 황사마스크 제조공장을 찾았다. 조선소 같은 작업장에서나 쓰는 산업용 마스크를 주로 생산하는 도부라이프텍은 이달부터 일반인들이 쓰는 황사 대비용 방진마스크의 시판에 들어갔다. 이 회사에서 만드는 황사마스크는 흔히 쓰는 천마스크가 아닌, 말랑말랑한 플라스틱으로 된 틀로 얼굴을 반쯤 덮은 뒤 부직포로 만든 필터를 교체해 쓰는 ‘반면형’이다. 공장도가격 9000원, 시판 가격은 2만원대로 예상하고 있다.

김성진(68) 도부라이프텍 연구소장은 “우리보다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한 중국에선 특히 부자들이 이런 형태의 마스크를 많이 찾는다. 우리도 곧 거리에서 이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부직포를 잘라 필터로 만드는 제조공장은 기계가 내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6개의 라인마다 1명씩 붙어 부직포 롤을 기계에 걸거나 기계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5개 라인에서 산업용 마스크에 쓰는 필터를 만들었고, 1개 라인에서 황사마스크용 필터를 만들었다. 산업용은 13개의 부직포를, 황사용은 2개의 부직포를 한 겹으로 포갠 필터를 하루에 1만개씩 제조한다. 산업용엔 특히 야자열매의 껍질을 태워 만든 활성탄이 들어가 가스나 냄새를 잡아준다고 김 소장은 설명했다.

마스크의 필터가 되는 부직포엔 ‘정전처리’를 한다. 정전기가 기공을 지나는 미세먼지를 붙잡아주는 구실을 한단다. 이 정전기력은 2~3년 동안 방전되지 않도록 처리된다. 새로 구입한 마스크의 이용연한은 이 정전기력이 유지되는 기간 동안인 셈이다. 생산된 필터는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무작위로 하나씩 뽑아 성능을 시험한다. 어른 몸집만한 장방형 기계 위에 올려진 마스크에 공기를 통과시키자 ‘슈우우웅’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뒤 시험 결과가 기계에 표시됐다. 분당 47.7리터의 유속에서 투과율 0.084%를 보였다. 지난해 9월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증하는 미세먼지 입자차단기준인 ‘KF’는 KF80, 94 등의 수치로 표기되는데, 100에서 이 투과율을 뺀 만큼의 수치를 이른다. 80은 0.6㎛ 크기의 미세입자를 80% 차단한다는 의미이고 94는 0.4㎛ 입자를 94% 이상 차단한다는 의미다. 마스크를 착용했을 때 숨쉬기가 얼마나 편한지를 나타내는 저항값은 90.2파스칼을 보였다. 저항값이 높을수록 숨쉬기가 어려워지는데 기준은 240 이하라고 한다. 산업용은 120 정도의 저항값을 기준으로 만든다.

황사는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현상이다. 한반도에서 황사에 대한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온다. 서기 174년인 신라 아달라왕 21년 기록의 ‘우토’가 황사를 이르는 말이다. 당시엔 하늘의 신이 화가 나 비나 눈이 아닌 흙가루를 땅에 뿌린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서기 644년인 고구려 보장왕 3년엔 음력 10월에 평양에 내린 눈이 붉은색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인 명종 5년 3월22일의 왕조실록은 “한양에 흙비가 내렸다. 쓸면 먼지가 되고 흔들면 날아 흩어졌다. 25일까지 쾌청하지 못하였다”며 나흘간 계속됐던 황사 현상을 기록했다.

황사에 대한 기록은 일제 때에도 이어진다. <동아일보>는 1928년 5월18일치에 ‘이상한 작금천후’란 제목의 기사에서 황사 현상을 기록했다. 기사는 경성측후소를 인용해 “일본 동해안 고기압이 연해주로 이동하면서 조선에 동풍이 불기 시작했고, 동시에 북동지방의 기온이 저하하면서 북풍이 불어와 만주사막으로부터 황사가 전 조선에 내려와 퍼져 태양빛이 붉어졌다”고 쓰여 있다. 기사는 이어 “겨울에는 가끔 황사가 날아와 태양빛이 붉어지는 일이 많지만 봄에는 그다지 많지 않은 일이라 그와 같이 괴이하게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래된 자연현상이지만, 과거에 견줘 나아진 건 마스크 같은 호흡기 보호구의 발달뿐이다. 지구 자전 방향을 바꿀 수 없고, 대륙의 사막화도 막을 수 없는데다 장기 예측도 어려우니 우린 황사와 더불어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없다. 질 좋은 마스크나 값비싼 공기청정기가 없다면 먹는 것으로라도 도움을 받는 수밖에. 칼슘과 식이섬유가 많은 고구마 줄기나 토란 줄기가 황사로 인해 체내에 유입된 중금속 배출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마늘의 유황 성분도 중금속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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