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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백래시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사회 공동 기준 필요" : 어린이단체로까지 번진 공격에 전문가들이 전한 우려

관련 모임과 선을 긋고, 문제를 제기한 커뮤니티에 해명 글을 올리는 등, 대응 방식은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남초 커뮤니티의 무차별적 백래시(성평등에 대한 반발성 공격)가 이제는 어린이단체까지 자신들의 혐오를 키우는 먹잇감으로 삼기 시작했다. 최근 대기업(GS25), 수사기관(경찰), 지방자치단체(평택시) 등 자본과 권한을 가진 이들까지 근거 없는 ‘남혐 손가락 찾기 공격’에 쉽게 투항하면서 자칫 혐오 효능감을 키워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왔다. 전문가들은 ‘빨간불’이 켜졌다는 경고와 함께 사회 공동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말한다.

이번에 백래시 좌표가 찍힌 대상은 2년도 넘은 지난 2018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후원한 영어책모임 ‘페미-수다’ 1기 모임 공고글이다. 해당 글에는 “엄마인 나, 딸인 나로서 우리 모두가 겪었거나 겪을지도 모르는 불평등한 경험들 앞에서 ‘이렇게 해야 해, 이렇게 하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해주는 ‘엄마는 페미니스트 :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가지 방법’ 원서를 읽어보며 우리의 이야기를 나눠 보아요”란 내용이 적혀 있다.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해당 모임에서 페미니즘 도서를 다룬 점을 문제 삼았다.

최근 백래시 좌표가 찍힌, 2018년 공고글 
최근 백래시 좌표가 찍힌, 2018년 공고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같은 해 열린 행사도 논란이 됐다. 해당 사진에는 ‘10대 페미니스트 성장 동아리 페미니즘 교육을 실천하는 경기여성위원회’라는 문구와 함께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주관 단체로 포함돼 있다.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페미니즘을 지원하고 있다며 후원 해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실제 후원을 해지했다는 인증샷도 일부 올라왔다.

미국 소설가가 쓴 ‘엄마는 페미니스트’에 대해 출판사는 ‘아이를 낳고 키워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소개한다. ‘전업주부로만 자신의 정체성 규정짓지 말고 충만한 사람이 될 것’, ‘남편과 같이 할 것’, ‘독서를 가르칠 것’, ‘일찍부터 성교육을 할 것’, ‘아이의 외모와 관련된 일에 관여할 때 신중히 할 것’ 등 엄마가 성차별 없이 아이를 키울 때 꼭 필요한 조언을 담았다.

후원금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단체의 취약성을 노린 공격은 적중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지난 20일 ‘문제’를 제기한 남초 커뮤니티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공식 입장’을 올려 해명하는 한편, 이튿날 재단 홈페이지에도 같은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재단은 “(언급된) 해당 모임·행사와는 관련성이 없다”고 거듭 밝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페미니즘이냐 안티페미니즘이냐’란 프레임에 휩싸인 것 자체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재단 관계자는 23일 <한겨레>에 “재단은 그저 아이들을 돕는 일을 묵묵히 해왔다. 그런데 왜 이런 논란에 휩싸였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재단의 대응 방식은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재단은 “해당 행사·모임과 전혀 관련 없음” “앞으로도 스스로를 점검하겠다”며 부당한 공격에 맞서기보다는 일단 선부터 긋는 방어적 자세를 취했다. 기업과 경찰, 지자체 등이 ‘그런 의도는 없었다’며 취했던 대응과 동일하다. 결과적으로 백래시 공격의 좌표를 재단이 아닌 ‘해당 행사·모임’으로 돌린 셈이 됐다.

재단 쪽은 백래시를 옹호하는 이들이 끊었다는 후원금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아동의 미래와 권리를 위하는 단체가 백래시를 일삼는 이들의 일부 후원 중단에 지나치게 저자세를 취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재단 직원이) 해명글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아동과 미성년자 여성에 대한 성적 학대 게시물을 수시로 올리며 소비하는 커뮤니티에 올렸다”며 해당 직원과 재단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온 상태다.

이에 대해 재단 관계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입장문을 올린 것은 후원자의 오해를 풀어드리기 위한 차원이었다. 부족한 상황 대처로 혼란을 드렸다. 재단의 취지와는 다르게 잘못된 방향으로 문제가 확대재생산돼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자료 사진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어린이단체까지 백래시 폭력 대상이 된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여성에 대한 공격이 어머니에 대한 공격,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돌봄노동이 어머니에게 대부분 전가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과 아이가 연결돼 있는 고리를 볼 필요가 있다. 사실은 여성을 향한 공격인 셈”이라고 했다.

백래시는 특정 대상 하나를 찍어 무너뜨리면 그 다음 대상을 고르는 식이다. 우리 사회 면역력을 차례차례 무너뜨리는 백래시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 공동의 기준이 필요하다. 손 교수는 “앞서 대기업, 정부기관마저 백래시에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원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단체 등은 ‘후원을 끊겠다’는 불매운동 방식의 온라인 공격에 더 취약할 할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백래시에 효능감을 줘선 안 된다. 백래시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공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매뉴얼을 제작하는 등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겨레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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