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직장인 이은혜(30)씨는 이번 여름에 장기근속 휴가로 2주간 유럽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제주도 6박7일로 일정을 바꿨다. 이달 초 경남 거제에 2박3일 여름 휴가를 다녀온 직장인 정희진(25)씨는 “해외여행을 못 가 경비를 아낀 만큼 평소보다 좋은 리조트를 예약해 다녀왔다”며 “교통편 예약 등 여행 준비는 일주일 전부터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여름휴가 모습도 바뀌고 있다. 해외여행 대신 국내여행을 길게 가는 추세다. 숙박예약 플랫폼 여기어때가 발표한 ‘2020 여름 국내여행 트렌드’를 보면, 올해 7~8월 4박5일 이상의 연박 예약(6월 말 기준)은 지난해보다 70% 늘었다. 3박4일과 2박3일도 각각 26%, 3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국내여행 예약이 35%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장기여행객 수와 그 비중은 대폭 증가한 것이다.
인터콘티넨탈 서울 코엑스도 7~8월 두 달 사이 2박 이상 예약한 고객이 지난해보다 60% 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노보텔 앰배서더 독산과 파라다이스시티 등 일부 호텔들은 아예 2박 이상 연박 상품을 내놓고 있다.
스위트룸에 묵는 고가 숙박 상품도 인기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분출하는 이른바 ‘보복소비’에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제주도 등 국내로 신혼여행을 가려는 수요까지 맞물린 영향으로 업계는 평가한다. 한화리조트의 7~8월 평균 객실 예약률은 80%인데, 가격이 두 배 가량 비싼 스위트 객실 예약률은 90~95%다.
윤문엽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홍보담당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해외여행을 포기한 대신 국내여행에서 프리미엄을 경험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나타난 특이 현상”이라고 말했다. 롯데호텔의 최상위 브랜드인 시그니엘 서울도 최근 주말 투숙률이 90%를 웃돈다.
스위트룸 인기에 호텔들은 ‘최고급’ 패키지 경쟁에 한창이다. 제이더블유(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은 20일부터 1박에 천만원짜리 패키지를 판매한다. 호텔에 하나뿐인 프레지덴셜 스위트 객실에 투숙하면서 호텔 내 레스토랑 등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올-인클루시브 럭셔리’ 패키지다. 이 호텔 역대 최고가로, 직전까지 최고가 상품은 600만원대였다.
장수진 제이더블유 메리어트 동대문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최고급 상품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보고 해외 휴양지의 고급 리조트에서처럼 호텔 내 모든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출시했다”고 설명했다. 파라다이스시티도 세 개밖에 없는 로열 스위트 객실에 묵으면서 고급 한우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올 어바웃 럭셔리’ 패키지를 출시했다. 가격은 성인 2인 기준 평일 280만원대에 이른다.
국내여행인 만큼 준비기간은 짧아졌다. 글래드 마포 쪽은 이달 1일부터 16일까지 온라인여행사(OTA)를 통한 예약 중 예약일과 투숙일 사이 기간이 0~1일인 경우가 전체의 32%로 전년 동기 11%에 비해 증가했고, 2~3일은 지난해 8%에서 올해 18%, 4~7일은 10%→28%, 15~30일은 20%→7%로 변화했다고 밝혔다.
파크하얏트 서울 관계자는 “6월 한 달 투숙일로부터 0~3일 전 예약한 고객 비율이 전년 동기 대비 약 40% 증가했다”며 “거주하는 지역 내 호텔에서 쉬면서 휴가를 보내는 경우 미리 준비할 게 없는 만큼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가 투숙 직전에 예약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