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남자 없이도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뒤 일어난 변화

돌이켜보면 내가 섹스에 대해 배운 거의 모든 것은 '나의 쾌감'이 아닌 '남성의 쾌감'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늦은 봄, 저녁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신발과 옷을 벗어 던진 다음 침대에 누웠다. 과감히 클리토리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오늘 밤 나는 아주 한가하다. 정말 혼자서도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을지 반드시 알아낼 생각이다.

나는 얼마 전에 클리토리스 자극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 시리즈를 발견했다. 솔직히 고백건대, 아주 최근까지도 나에게 클리토리스가 있다는 걸 잘 모르고 있었다. 몇번의 시도에서 예상만큼의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드디어 2018년 5월 10일 저녁 처음으로 오르가즘을 느꼈다.

나는 24세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서는 남성이 필요하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대부분 그 반대였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파트너와 섹스할 때보다 자위할 때 오르가즘을 더 쉽게 느낀다.

나는 클리토리스가 뭔지도 몰랐다

도대체 왜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구글에 “여성이 보통 자위를 시작하는 나이가 몇살인가?”를 검색해 보았다. 12세라고 했다. 내 나이보다 12년 이르다.

나는 학교 성적이 좋았고, 여러 업계에서 일했고, 시간이 남을 때면 컴퓨터 프로그래밍부터 천문학까지 온갖 분야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정작 내 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쩌다가 ‘오르가즘을 위해서는 남성이 필요하다’고 굳게 믿게 되었을까?

내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 집에서는 ‘섹스’에 대한 대화를 하는 이가 없었다.(여성의 오르가즘에 대한 대화는 그보다도 훨씬 드물었다.)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

학교에서 ‘쾌감’에 대해 배운 적도 없었다. 우리는 △아기가 생기는 원리 △바나나에 콘돔을 씌우는 방법 △성병의 위험에 대해서는 배웠어도, ‘여성 혼자서도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는 말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여성 아닌 ‘남성의 쾌감’을 위한 정보들

늘 접하는 책, 잡지, TV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섹스 이야기가 등장할 때는 보통 ‘남자친구를 만족시키는 10가지 방법’ 등의 조언들로 가득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의 오르가즘을 언급하는 걸 너무 부끄러워하거나, 혹은 관심도 없는 듯했다.

16세 때, 남자친구가 섹스 중에 자기가 보는 앞에서 ‘스스로 네 몸을 만져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누워서 손가락을 성기에 넣고 흥분한 척했다. 나의 쾌감이 아닌 그의 쾌감을 위한 것이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민망하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그도 알았을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자위에 대해서는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들 하고 있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 역시 나만큼이나 아는 게 없었을지 모른다. 잘 몰랐던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남성의 시선과 쾌감을 우위에 놓는 문화,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섹스가 오로지 출산을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문화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섹스에 대해 배운 거의 모든 것은 ‘남성의 쾌감’을 중심으로 한 것 같았다. 내 몸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남성의 자위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행복하고 건강한, 흥분한 여성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여성의 쾌감도 남성의 그것과 똑같이 중요한 선에 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영국(을 비롯한 모든 곳)의 의무 성교육에 들어가야 한다. 십대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거나,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에 성교육을 맡기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오르가즘의 환상적인 기분을 놓치는 소녀들이 더 생기지 않길 바란다. 오르가즘은 건강에도 좋다. 이 세상엔 행복하고 건강한, 흥분한 여성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자신의 몸과 교류하고 이해하는 여성들,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아는 여성들, 타인과 성적 욕구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여성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내게 있어서 자위는 새로운 길을 여럿 열어주었다. 나는 성적인 영역을 넘어 삶의 다른 분야에서도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솜씨가 좋아지고 있다. 마치 자위라는 굉장히 근본적인 행동을 알게 되면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스스로에게 더 관대해지는 것 같다. 내가 여러 이유로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다양한 감정들을 이제는 풀어줄 수 있게 되었다.

자위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남성의 삽입을 처음 경험할 때 여성이 된다는, 흔히들 가진 잘못된 믿음과는 달리 나는 드디어 여성이 된 기분이다. 거울 속의 내가 정말 사랑스럽다. 자위의 발견이 즉시 이런 변화를 일으킨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필자가 2018년 7월 네덜란드 코펜하겐에서 열린 "걸즈 아 토킹"(Girls Are Talking) 행사에서 자위에 대한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가 2018년 7월 네덜란드 코펜하겐에서 열린 "걸즈 아 토킹"(Girls Are Talking) 행사에서 자위에 대한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남성과 성관계를 맺을 때 상대가 느끼는 만큼 나도 쾌감을 얻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만족시켜주는 사람’(나)과 ‘만족을 얻는 사람’(상대)의 관계가 아니다. 만약 이런 걸 기대하는 남성을 만나면, 나는 그냥 떠나버린다.

이런 자세가 내 삶의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게 느껴진다. 최근까지 나는 누가 사랑을 표현하면, 그 애정에 더 크게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건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이제 나는 사랑을 주는 법뿐 아니라 받는 법도 배우고 있다.

2019년인 지금도 이 주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정도 터부시된다.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다. 내가 정말 오랫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지냈다는 걸 공개하는 것도 쉽지 않다. 비웃음을 사거나 조롱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부모님, 내가 예전에 잤던 남성들, 심지어 일부 친구들까지, 내가 아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까 봐 걱정된다.

하지만 계속 얘기해야만 한다. 수치심도 이러한 문제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위 이야기하는 것을 그토록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러 해를 성적인 좌절로 허비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 허프포스트 US의 을 번역, 편집했습니다. 글을 쓴 헤이젤 에반스(Hazel Evans)는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예술가이며, 현재는 덴마크에 거주 중입니다. 헤이젤에 대한 정보를 더 알고 싶다면 트위터인스타그램을 방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