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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05일 14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8월 05일 18시 10분 KST

강제징용 조선인 무덤 돌보는 89세 일본인의 이야기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뉴스1
2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택 인근에 있는 무연고 조선인 묘소를 청소하고 관리하면서 명복을 빌어온 나카히라 요시오(中平吉男·89)가 미소를 짓고있다.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는 중요치 않았습니다…같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3일 오후 3시10분쯤 일본 시코쿠(四國) 고치현(高知縣) 시만토정(四万十町)의 한 주택.

아담한 정원과 소박한 연못에 살고 있는 커다란 잉어들이 입을 뻐끔거리면서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짧은 마당길을 지나 현관문을 열자 무연고 조선인 무덤을 20년 넘게 돌봐왔던 나카히라 요시오(中平吉男)가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올해 나이 89세. 에도시대(1603~1867년) 때부터 터를 잡고 이곳에서 5대째 살고 있다고 했다.

나카히라는 일제강점기 중반부인 1930년 1월에 태어났다. 그는 국민학교 고등부 2년생(13세·현재 중학교 2년생 정도)이었을 때 우연히 조선 사람들이 시신을 매장하는 광경을 보게됐다.

나카히라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아이고, 아이고’ 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곡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선명하게 울리는 듯이 발음과 리듬, 높낮이를 비슷하게 따라했다.

땅에 묻힌 사람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지 묻자 ”‘배가 침몰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강제징용희생자인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누가, 어떤 연유로 묻혔는지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랜 기간 이름없는 무덤 위에는 돌덩이 하나만 세워져 있었다.

당시 근처에는 일제강점기 막바지인 1941년, 고치현에서 에히메현(愛媛縣)으로 전력을 보내기 위한 수력발전소 ‘츠가댐(津賀ダム)’이 건설되고 있었고 강제징용 한국인 희생자 수백명이 동원됐다. 현지에서는 약 200명이 강제징용 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실제 인원은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나카하라씨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무연고 무덤과는 연을 맺지 마라”고 자주 말씀하셨다고 한다. 오랫동안 선조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관습과도 같은 것이었다.

당시 ‘하타제미幡多ゼミ)’라는 고치현 하타(幡多)지역의 일본 고등학생 세미나 동아리가 자신이 거주하던 지역에서 강제징용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나 무연고 조선인들을 파악하기 위한 청취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탐문조사를 하다 나카히라씨와 연을 맺게됐다.

학생들은 그의 안내를 받아 무연고 조선인 무덤을 방문했고 주변을 정리한 뒤 추도했다.

그때 나카히라가 함께 동행했다.

그는 진심을 담아 무덤에 예의를 갖추고 묘소를 정리하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에 감동했다.

나카히라는 그때 ”내가 건강한 동안에는 앞으로 평생 조선인 무연고 묘소를 돌보겠다”라고 스스로 그리고 학생들과 약속했다고 했다.

그는 ‘사람의 도리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3~4개월에 한 번씩 꾸준히 묘소를 청소하고 관리해왔다.

그는 ”한국에서 젊은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와 엄청나게 힘든 작업 속에서 고생만 하다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며 ”거기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컸다”고 강조했다.

또 ”지금 굉장히 후회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당시 그 조선인들에게 달려가서 주소나 이름이라도 물어보고 알아봤더라면’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츠가댐 평화기념비가 세워졌을 당시 나카히라가 돌보던 무연고 조선인의 유골은 기념비 밑으로 장소를 옮겼다.

돌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무연고 묘소를 오랜기간 돌보면서 명복을 빌었던 나카히라씨.

묘소는 이제 터만 남았을 뿐이지만 그는 ”강제징용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 돌아가신 분들께 최소한의 예의를 다할 수 있도록 그들을 추모하는 위령제가 계속되길 바랄 뿐”이라면서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