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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02일 12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8월 02일 12시 00분 KST

한국사회의 창피한 소동, 영화 '앨리스 죽이기'를 보다

신은미씨는 아직도 한국에 입국금지 상태입니다.

영화 ‘앨리스 죽이기’ 의 한 장면

신은미씨의 부군 정태일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주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하면 안돼!” 신은미씨의 인터뷰를 공격적으로 진행하던 기자의 질문을 지켜보다가 짜증이 폭발한 것이겠지요. 기자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짜증을 내도 신은미씨가 내야 하는데 부군이 보다 못해 짜증을 내다니요. 당황스러운 그 찰나의 장면이 ‘앨리스 죽이기’ 영화에 잘 담겼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의 김상규 감독은 신씨를 대하는 여러 언론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당시 신은미씨의 남편을 짜증나게 만든 기자는 저였습니다. 2014년 겨울이었습니다. 조선일보 등은 신은미씨의 ‘통일 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로 매도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한복판에서 종북 강연이 벌어지고 있다’며 공개적인 우려를 했습니다. 검찰은 신은미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했고 법무부는 신씨를 추방조처 했습니다. 추방되기 며칠 전 제가 신은미씨를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진보언론의 맏형을 자처하는 ‘한겨레’가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침묵만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부채감 때문에 좀 뒤늦게 밀어붙인 인터뷰였습니다.

사실 인터뷰의 목적은 이 말도 안되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내는 부조리극을 조명하는 것이었지만, 저는 기자로서 어쩔 수 없이 인터뷰 당시에는 중립을 지키려 노력해야 했습니다. “북한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데 왜 통일콘서트를 열었느냐” 등의 공격적인 질문을 했지요. 그걸 듣고 있다가 신은미씨의 부군이 “대체 남한에서는 북한에 대해 한 마디도 하면 안되냐”며 버럭 짜증을 낸 것입니다.

사실 제가 생각해도 애써 중립을 지키려 노력하는 기자로서의 제 태도가 우습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신은미씨는 북한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는 그냥 북한을 여행하고 온 것이고 여행가 수준에서 북한에서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남한에서 설명했을 뿐입니다. 스스로도 자신은 그냥 여행을 다녀온 해외 동포에 불과하다면서 격을 낮추었습니다. 무슨 ‘포린어페어’지 같은 곳에 남과 북의 사회에 대해 전문적인 기고를 한게 아니란 것이지요.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그리고 저같은 기자들은, 신은미씨에게 “북한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강연을 열면 안된다”고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것이지요. 신은미씨가 “북한을 다 안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말이지요.

“대동강 맥주 먹어보니 맛있더라”, “평양 시민들도 스마트폰을 쓰더라”, “평양에선 애낳으면 산부인과 이용이 무료다” 는 등의 이야기를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 조중동은 마치 ‘포린 어페어’지에 실린 정도의 권위적 무게를 두어 비판하고 나섰지요. ‘북한을 지상 낙원으로 묘사한다’는 허위 주장도 곁들였습니다.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신은미씨(좌)와 허재현 기자(우)가 서울 모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지킬필름’ 제공.

꽤 괜찮은 이상한 나라 관찰기

오는 8월8일 2014년 겨울 신은미씨를 두고 한국 사회가 벌인 창피한 소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앨리스 죽이기’가 개봉합니다. 이 영화가 촬영된지 5년이나 늦게 개봉하는 것을 두고 어쩌면 굳이 왜 5년전 이야기를 우리가 다시 반추해서 들여다 봐야 하는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그거 아십니까? 신은미씨는 아직도 한국 입국금지 상태입니다. 법무부가 재미 동포인 신씨를 출입국관리법상 ‘사회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해 추방해버렸고 행정법원도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2020년까지 신씨는 국내 입국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신씨가 한 발언은 북한 사회주의 체제와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북한을 인권 복지 국가로 오인하게 할 만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에 대한 직접 경험이 불가능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같은 발언이 가지는 파급력은 크다.”

이게 신씨의 입국금지가 정당하다고 한 2017년 2월8일 서울고법 행정6부 판결(이동원 부장판사)문의 내용입니다. 최근 법원은 유승준의 입국불허는 잘못됐다고 판결했지요. 그러나 신은미 입국불허는 괜찮다고 판결하는 상황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이게 모두 국가보안법과 보수언론의 마녀사냥 기사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신은미씨에 대한 보수언론의 거짓 보도는, 해외 여행 유튜버들의 평양 관련 영상만 검색해봐도 금방 드러납니다. 실제로 평양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신은미씨가 전한 여행담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신은미씨는 되레 그의 책에서 다른 유튜버들과 달리 북한 농촌의 암울한 경제 상황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슨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2014년의 남한 사회에서는 신은미씨의 말은 믿지를 않고 그저 ‘종북 마녀사냥’만 하기 급급했습니다.

2019년 현재까지도 2014년 말 벌어진 종북 마녀사냥 바로 잡기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일베회원에게 폭탄 테러를 당한 피해자인 신은미씨는 되레 우리 사회를 위험하게 만든다며 추방해 입국금지 상태이고, 보수언론은 뻔뻔하게 아무런 사과도 안하고 있습니다. 폭력의 가해자들은 반성이 없고 피해자들만 추방당해 조국을 그리워 하는 일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뒤늦은 개봉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가치있는 이유입니다.

‘이상한 나라’인 한국 사회가 반성을 늦추는 사이 되레 해외에서는 신기하게 이 영화를 보았나 봅니다. 북미 최대 다큐영화제인 제25회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8)와 샌디에고아시안영화제(2018) 등에서 이미 큰 주목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그들의 눈에 남한은 분명 북한만큼 이상한 나라였을 겁니다.

‘앨리스 죽이기’ 영화의 또다른 훌륭한 점은, 앨리스에 대한 관찰을 넘어 앨리스를 대하는 남과 북의 모습에 대한 비교 관찰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촬영의 제약상 북한의 모습이 많지는 않지만, 민족의 화합을 걱정하는 한명의 동포인 앨리스(신은미)를 대하는 북한의 태도와 거의 마녀를 대하듯 공격하는 남한의 태도가 슬플 정도로 강렬하게 비교됩니다.

또 영화는 남한의 언론과 미치광이들에 대해서도 꽤 농밀하게 관찰하는 미덕을 보입니다. 조중동 기자들이 현장에서 스스로 어떤 말들을 내뱉고, 이 소모적인 갈등의 취재에 투입된 것을 스스로도 얼마나 이상하게 여기는지 관찰합니다. 또 ‘앨리스’를 죽이러 행동에 나선 일베 회원까지 찾아가 꽤 진지한 인터뷰를 시도한 것은 매우 훌륭한 관찰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현장에 쏟아지는 여러 ‘팩트’들을 손쉽게 주워담는 수준이 아니라, 몸을 숨기고 있는 팩트를 스스로 발굴하러 다닌 감독의 노력은 이 다큐가 우연히 나온 수작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합니다. 소위, 미국의 마이클 무어처럼 ‘취재를 잘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시사회 현장에서 진행된 신은미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전합니다. 저는 지금도 신은미씨의 페이스북 글을 가끔 봅니다. 그는 한국 스포츠 선수들이 해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전할 때 남한 이라는 표현 대신 ‘조국’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제압했을 때 ‘조국:독일=2:0’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식입니다. 남한 사람들도 잘 안쓰는 ‘조국’이란 단어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쓰는 해외동포에게 우리 사회는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은미-김상규 감독 인터뷰“우리 사회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있다”

-사회자 :  인사말좀 해주세요.

=신은미 : 남녘 땅은 영원한 저의 모국입니다. 2014년 잘못된 판단으로 출국을 당한 몸이 되었지만  그 당시 그럴 수 밖에 없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남한에는 제 노모도 살아 계시니까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요. 남북관계도 좋은 상황이 됐고 북미 정상도 만났고 한반도에는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고 우리 민족이 화해할 수 있는 역사적으로 대전환의 시기가 되었으니까요. 더더욱 제가 모국에 가고 싶고요. 갈 수만 있다면 모국을 갈 때 남녘도 북녘도 함께 가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 사회자 : 감독님께서 이 영화를 만든 의도는?

=김상규 : 우선 제가 처음에 이런 내용의 영화를 만들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애초 제 계획은 북한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분들 통해 북한을 입체적으로 그려보는 영화를 만들어보려 했습니. 한국 사회가 너무 극단으로 치달아서, 또 일부에서는 북에 대해 약간의 환상을 갖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그 와중에 신은미씨의 기사를 보고 직접 강연을 들어보니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논란이 시작됐고 결국 북한 사회를 입체적으로 그려보려 했던 영화는 종북 논란과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는 그런 영화로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 사회자 : 이 영화의 현재적 가치라면?

= 김상규 :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더라도 그것이 평화의 종결점은 아닙니다. 시작은 될 수 있어도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선언적 평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평화가 되려면 평범한 사람들의 교류가 있어야죠. 이 영화는 5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우리가 분단 이후 계속 갖고 있던 ‘레드 컴플렉스’에 대해 되돌아보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자유로운지 그런 걸 고민하게 하고 싶습니다.

=신은미 : 저는 일반 극장에서 이 영화가 개봉되는 것이 좀 놀랍습니다. 그러나 5년 전의 모습들이 블랙코미디와 같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영화관에 오신 분들이 이것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들의 지지가 없다면 한반도의 평화 정착도 한낱 물거품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허재현 : 이 영화 제목이자 수식어인 ‘이상한 나라’라는 표현은 북과 남을 동시에 지칭하는 것인가요. 일베 회원까지 만나서 인터뷰한 이유는 뭐죠?

=김상규 : 2000년 초반 금강산에 관광 간적 있습니다. 그때도 설렘과 두려움, 그런게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관광안내원들과 이야기 해도 되나 하는 그런.  우리는 북한을 이상한 나라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신은미 선생께서 북한을 갔을 때 신은미씨도 자신이 엘리스가 된 거 같은 느낌일 거 같았습니다. 동화에서는 엘리스가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끝나지만 만약 엘리스가 경험했던 신기한 이야기를 주변에 이야기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나라는 다만 북한만은 아닌거 같습니다. 북한 이야기에 경기를 일으키는 한국 사회를 보면서 과연 이것이 정상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신은미 선생의 여행담에 찬성과 반대는 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를 마녀 또는 사회악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남한 또한 이상한 나라라는 타이틀에서 자유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세연(폭탄 테러 일베 회원)씨까지 만난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지나면 사회가 나아질거라는 추상적 믿음을 갖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어떤 극단적 행동을 하는 그런 존재들도 스스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듣고) 분노하고 폭력적 표현을 실행에 옮기는 게 굉장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잘못된 분노와 표현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일베 회원과는 세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는데 너무 그의 생각을 미화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을 것 같아 핵심만 간추려서 영화에 넣었습니다.

= 신은미 : 허재현 기자님이 질문하신 거죠? 목소리를 다 기억합니다. 다른 기자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거는요. 어떤 보도도 다 괜찮습니다. 제발 사실에 입각해서 보도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근데 여전히 백프로 사실에 입각해 보도 안하는 종편 언론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사명감과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상규 : 종북 토크쇼라는 말의 시발점이 종편 언론사인 TV조선이었습니다. 거기서 종북 토크쇼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신은미 논란이 촉발되었습니다. 이후 많은 언론들이 그 표현을 가져다 쓰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종북 토크쇼라는 표현을 사용했었지요. 언론이 그런 거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언론사의 기자들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과연 이 정도로 취재를 해야 하는 사건인지’ 그들 스스로 하는 고민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사회자 : 앨리스 죽이기 영화를 어떤 관객이 봤으면 하나요.

= 김상규 : 많은 관객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가 제 첫번째 다큐입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저는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논란이 되는 사안을 다룰 때 그 표현은 다양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맞고 당신은 틀렸다는 생각은 안했으면 합니다. 관객이 그것을 충분히 검토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종북논란 있었을 때 신은미씨를 비난했던 분들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여러분의 후원으로 기사가 제작되는 행동탐사언론 리포액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