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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 합법화 논쟁 “개인의 자유” VS “존엄성 훼손”

대법원은 리얼돌의 수입 허가 판결을 내렸다.

지난 6월 대법원이 성인용품인 ‘리얼돌’(여성의 신체를 본뜬 실리콘 인형)의 수입을 허가하는 판결을 한 걸 계기로 ‘리얼돌 합법화’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리얼돌 수입 및 판매 금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은 31일 오전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넘어섰다.

리얼돌은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일본 등에서 영화 특수 메이크업에 사용하는 고급 실리콘으로 사람의 말랑말랑한 피부와 움직이는 관절, 여성의 가슴과 성기 등을 재현한 전신 인형이다. ‘리얼돌 합법화’ 논란이 불거진 건 2017년 리얼돌 수입통관 보류 처분을 받은 한 업체가 인천세관을 상대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다. 현행 관세법 제234조와 제237조는 ‘헌법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대해 수출·수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업체는 이같은 이유로 리얼돌의 수입을 규제한 세관의 처분이 ‘개인의 성적 결정권 행사에 간섭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인천지법에 소송을 냈다.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리얼돌은 길이 159㎝, 무게 35㎏의 여성 형상으로 성기와 항문 형태의 외관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리얼돌 수입통관 보류 처분이 정당했는가를 놓고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의 성적 부위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며 수입통관 보류 처분이 적법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지난 1월 “공중에게 성적 혐오감을 줄 만한 성기구가 공공연하게 전시·판매돼 제재가 필요한 경우 등이 아니라면 성기구의 수입 자체를 금지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며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1심 결과를 뒤집었다. 2심 재판 결과는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일단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엄밀히 말해 리얼돌의 수입을 허가한 것이다. 법원이 수입을 허가한 외국산 리얼돌과 달리, 국내에서 제작한 리얼돌의 판매는 과거에도 법의 규제를 받지 않았다. 한 성인용품 쇼핑몰 관계자는 “리얼돌과 관련한 법 규정이 없다 보니, 일부 업자들의 경우 대법원 판결 전부터 국내에서 제작한 리얼돌을 판매해왔다. 하지만 관련 규정이 없어 싸구려 제품이 수백만원에 판매되거나 해외 구매대행 사기 피해가 빈번했던 게 사실”이라며 “현재 관세청의 수입통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수입이 허가된 만큼 최소 100만원 이상이던 리얼돌 가격은 내려갈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크게 확산된 건 대법원 판결 직후 일부 업체에서 주문자가 원하는 여성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로 리얼돌을 제작해 판매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평소에도 리얼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았지만, 리얼돌을 매개로 현실 속 여성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려는 행태가 알려지면서 SNS 등에선 20, 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졌다. 급기야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리얼돌 수입 및 판매 금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올라왔고, 31일 새벽 20만명의 동의를 돌파했다. 이 글에서 청원자는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얼굴이 리얼돌로 만들어지면 그 정신적 충격은 누가 책임지나”라며 “자극적인 성인 동영상을 보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리얼돌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실제 여성에게 성범죄를 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여성계 역시 리얼돌 수입 허가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리얼돌이 일본의 AV산업과 마찬가지로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을 풀어줘야 하는 ‘그릇’(또는 용기)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이 문제”라며 “이번 이슈는 리얼돌 수입·판매 규제나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이미지를 (법으로) 금지하는 문제와 별개로 성별화된 집단(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이미지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인 여성학자 허민숙씨도 “개인 사생활이라고 볼 수 있는 성매매를 법으로 규제하는 이유는 그것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사고팔 수 있는 물건으로 인식돼 사회 규범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며 “섹스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필요한 물건이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중증 장애인 등의 성욕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리얼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장애인의 수요를 근거로 리얼돌 수입을 지지하는 건 장애인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이라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조윤숙 장애인 푸른 아우성 대표는 “성매매 등의 소지가 있는 장애인 성도우미에 대해선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리얼돌은 진짜 사람이 아닌 인형인 만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남성이든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건전한 성생활을 위한 리얼돌 수입 허가에 찬성한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해 리얼돌을 수입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다른 존재로 여기는 차별적 시선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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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