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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31일 17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31일 18시 14분 KST

잔디밭의 무법자, 흰뺨기러기

핀란드 이모저모

huffpost

수년 전부터 봄이 되면 동네 해변가를 접수하는 무법자들이 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초록색 똥으로 뒤덮인다. 잔디밭에 맘 편히 주저앉던 좋은 시절은 다 갔다. 백조는 이 무법자들보다 훨씬 크지만 사람 근처에 오지 않고, 떼를 지어 다니지도 않아서 이들처럼 위협적이진 않다.

이 무법자들은 이 근방에서는 눈에 띄는 새들 중 백조 다음으로 큰 새(백조에 비해 상당히 작다)인 데다가 무리 지어 다니고 가끔 사람을 위협하는 행동도 보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이 잔디밭의 무법자가 캐나다 기러기라 착각한다. 그 유명한 비싼 방한용 옷 브랜드의 재료가 되는 아이들이라 여긴다.

캐나다기러기라는 착각 때문에 가을에 무리를 지어 어김없이 날아가는 이들을 보며 캐나다까지 가려면 힘들겠다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이 이듬해에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뭔데 뭐하러 힘들게 오니? 그런데 다 오해였다.

이 무법자들은 캐나다기러기가 아닌 비슷하게 생긴 흰뺨기러기다. 흰뺨기러기 (1.21–2.23kg, 두산 백과 참조)는 캐나다기러기 (수컷 3.2~6.5kg, 암컷 2.5~5.5kg, 두산 백과 참조)보다 작고 가슴 부위까지 검으며, 턱 부위만 하얀 캐나다기러기에 달리 얼굴 대부분이 하얗다.

극지방 철새인 이들은 예전엔 이동시에만 핀란드에서 관찰되었다. 1980년대부터 핀란드에 둥지를 틀기 시작해서 현재는 핀란드 남부 해변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최근엔 핀란드 북부의 가장 큰 도시인 오울우에서도 발견된다. 원래 흰뺨기러기는 천적을 피하기 위해 절벽에 둥지를 트는데, 절벽이 드문 핀란드에서는 바닷가 근처나 공원, 도심지역에도 둥지를 튼다.

오늘날 흰뺨기러기는 유럽위원회의 조류 보호를 위한 명령(The Birds Directive, 유럽연합에서 가장 오래된 환경 관련 규제)에서 멸종 위기로 분류 (Annex 1)되어있으며, 핀란드에서는 자연 보존법에 의해 보호받는 새다.

흰뺨기러기(왼쪽), 캐나다기러기(오른쪽)

배고픈 채식주의자: 흰뺨기러기의 식성이 야기한 문제

주로 물가에서 눈에 띄어서 물고기를 먹고살 것 같은 흰뺨기러기는 사실 채식주의자들이다. 수초나 해초, 그리고 풀밭의 풀을 뜯어먹는다. 문제는 이 기러기들이 사람들이 일광욕이나 소풍 등 휴식을 즐기도록 지방 정부에서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해변가나 공원의 풀들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풀을 정기적으로 깎아주는데, 잘린 풀에서 다시 자라는 연한 풀들은 흰뺨기러기에게 맛 좋고 영양가 높은 음식이다.

한 전문가는 여름이 건조할 때는 다른 지역의 풀들이 말라서 기러기들이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올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벌써부터 집 주변 해변가 잔디밭을 거닐며 똥을 싸 대는 흰뺨기러기들은 도대체 뭔가? 흰뺨기러기들은 그냥 잔디밭의 풀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기러기들이 높이 자란 풀은 피하기 때문에 헬싱키 시는 해변가의 풀을 그냥 자라도록 내버려두는 시도도 고려하고 있지만, 공원의 풀들은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계속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네 해변가를 거닐고 있는 흰뺨기러기, 2019년 5월 2일

풀이 가진 영양소는 흰뺨기러기 체내에서 흡수가 잘 안된다. 때문에 이 새들은 끊임없이 먹고 끊임없이 똥을 싼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휴식을 위한 풀밭은 똥밭이 돼서 사람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든다. 특히, 해변가에서 돌을 주워 던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물가와 풀밭에 이 기러기들이 여기저기 싸놓은 똥을 주워 던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게다가 흰뺨기러기의 만행은 똥으로 공공장소의 더럽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헬싱키대학교의 농업연구를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 연구용으로 키우는 식물은 물론 연구용으로 키우는 가축의 먹이도 먹어치울 뿐 아니라, 그 자리에서 싼 똥이 위생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어느 해에는 1년 치 연구를 거의 완전히 망치게 했다. 

기러기와 사람의 공존을 위해 어느 해에는 집 주변 바닷가 풀밭에 부분적으로 울타리가 설치되기도 했다. 흰뺨기러기들을 쫒기 위해 소리나 빛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헬싱키대학교의 경우는 기러기의 접근을 막기 위해 그물망 사용이 대안으로 논의되었으나, 현실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했다.

2013년, 헬싱키 대학교는 농업 연구를 위해 새들을 밭에서 내쫓고자, 관련기관 (ELY Centre, 경제 개발, 운송 및 환경 센터)에 일주일에 세 마리의 흰뺨기러기를 사냥 허가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 후 최고 행정법원까지 간 흰뺨기러기 사냥 허가는 결국 무산되었다. 현재는 관련기관에 허가를 받아 세 마리 양치기 개들을 이용해 주기적으로 연구용 밭에서 새들을 쫓아내고 있다.

EU 차원에서 보호받는 흰뺨기러기

이는 흰뺨기러기가 보호종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허가 없이 이 새를 쫓는 것도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흰뺨기러기를 죽이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만약 죽이게 된다면, 새 한 마리당 평가 가치인 336유로를 내야 하며, 새를 죽이는 데에 사용된 도구 (총기)를 반납해야 하며,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흰뺨기러기가 더 이상 멸종 위기의 동물이라고 하기엔 개체수가 상당할 뿐 아니라, 흰뺨기러기의 겨울철 도래지에서는 이 새들에 의한 농작물 피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핀란드도 농작물 피해가 있긴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미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흰뺨기러기는 핀란드의 법뿐 아니라, 1979년에 제정된 유럽위원회의 조류 명령 (The Birds Directive)에 의해 보호를 받기 때문에 유럽 차원의 조류 보호종 목록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글을 마치며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의미의 영어 표현인 ‘The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가 흰뺨기러기에겐 사실이다. 온화한 기후에 천적이 적은 핀란드의 풀밭이 흰뺨기러기에게는 그들이 번식하던 극지방의 풀밭보다 더 좋다. 문제는 흰뺨기러기들의 식욕이 사람에 대한 경계를 이긴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휴식장소를 배설물로 채워놓을 뿐 아니라, 위협적인 태도를 종종 보이는 새들을 왜 적극적으로 내쫓지 않을까 궁금했었는데, 보호종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집 주변 바닷가에 널린 게 흰뺨기러기인데 왜 보호종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 내력을 찾아보았다.

게다가 몇 년 전 들은 헬싱키 대학의 연구용 작물 이야기는 잊히지가 않았다. 이 새들이 연구용 작물을 다 먹어치워, 연구자료가 없어져 연구원들의 1년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다. 흰뺨기러기가 보호종이 된 이유는 무분별한 사냥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서였다. EU 차원의 노력으로 멸종 위기는 벗어났지만, 늘어난 흰뺨기러기가 야기하는 문제로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앞으로 사람과 흰뺨기러기의 공존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살지가 궁금하다.

 * 북유럽연구소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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