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지난해 의결된 기본단위 킬로그램(kg), 암페어(A), 켈빈(K), 몰(mol)의 재정의가 20일부터 시행된다고 17일 밝혔다.
7개 기본단위 중 4개의 정의가 한꺼번에 바뀌는 것은 단위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기본단위를 재정의하는 이유는 단위가 측정의 기준으로 삼을 정도로 충분히 안정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kg은 지난 129년 동안 인공물인 ‘국제킬로그램원기’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긴 세월에 걸쳐 정밀 측정한 결과, 원기의 질량이 약 50㎍(마이크로그램) 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불변의 단위를 구현하기 위해 이번 재정의에는 플랑크 상수, 볼츠만 상수 등 값이 변하지 않는 기본상수가 이용된다.
한 번에 단위 4개 정의가 바뀌는 것은 도량형의 전 세계적인 통일을 처음으로 논의한 미터협약을 맺은 1875년 이후 144년만에 처음이다.
이번 재정의를 두고 과학자들은 ”거대한 변화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다(a huge change, but no change)”고 표현한다. 미래 과학기술과 산업을 한 단계 올리는 과학적인 중요한 변화지만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릴 정도의 변화는 없어 혼란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전세계 도량학자들이 단위 4개를 재정의하는 이유는 기존의 정의가 불안정하고 시간에 따라 변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1889년 백금과 이리듐의 비율이 9대 1로 구성된 원기둥 모양의 원기를 1㎏의 국제기준으로 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질량이 변했다.
도량학계는 변하지 않는 물리상수를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은 ‘플랑크상수‘(h)를 이용해 재정의하기로 했다. 플랑크 상수는 빛 에너지와 파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 상수다. ㎏의 새 정의에는 플랑크 상수라는 고정된 값의 기본상수와 물체의 질량을 연결하는 ‘키블 저울’을 사용한다. 키블저울은 질량·중력·전기·시간·길이 등 측정표준의 종합체로 측정의 불확도가 1억분의 1 수준으로 구현돼야 한다.
암페어는 지금까지 ‘무한히 길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원형 단면적을 가진 두 개의 평행한 직선 도체가 진공 중에서 1m 간격으로 유지될 때 두 도체 사이에 m당 1000만분의 2뉴턴(N)의 힘이 생기게 하는 일정한 전류‘로 정의돼 왔다. 이는 주관적인 ‘무한히 길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이 포함돼 있어 이를 없애고 ‘기본 전하’(e)를 이용해 정의하기로 했다.
켈빈은 물이 액체와 기체, 고체 상태로 모두 존재하는 ‘삼중점‘의 온도를 기준으로 정의하던 것을 ‘볼츠만 상수‘(k)로 새로 정의한다. 물질의 양 단위 몰(mol)은 탄소 질량을 기준으로 삼았지만 ‘아보가드로 상수’(NA)로 새로 정의한다.
KRISS는 기본단위 재정의와 세계측정의 날을 맞아 대전 본원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미옥 제1차관 등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개최한다.
측정과학기술 유공자들을 대상으로 표창이 진행되며, ‘표준의 알쓸신잡’을 주제로 경희대 김상욱 교수의 초청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기본단위 재정의를 주제로 한 기념우표 또한 이날 전국적으로 발행된다.
박상열 원장은 “불변의 기준으로 재정의된 단위로 인해 측정이 고도화되고 수많은 과학기술이 창출될 것”이라며 “탄탄히 다져진 기반 위의 집이 견고하듯 단위를 새롭게 정의하고 구현하는 기술력을 갖춘 국가만이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