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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14일 15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14일 16시 15분 KST

나의 성수동은 그들의 성수동과 다르면서도 같다

지금 성수의 주인공은 주말에 지나치는 트렌드세터 말고 평일에 출근하는 지식 노동자다.

한겨레
성수동 붉은 벽돌 건물 지역의 한 공장 건물.

보통 성수를 ‘서울의 브루클린’이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성수-뚝섬-서울숲 벨트에서 활동하는 한 건축가에게 저 단어의 의미를 물어보는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결코 참을 수 없는 단말마의 웃음으로 반응했다.) 아마 공장 지대를 재생해 겉은 허름하지만 안은 멋진 장소가 생기는 현상을 정의하려고 브루클린의 일부 지역과 성수동을 1:1로 비교하는 미디어적 발상의 일부일지도 모르지만, 또 저렇게 성수동의 특색을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는 말을 쉬이 찾긴 힘들지 모른다. 지금 성수가 해외 사례를 가져오지 않는 한 정의 내릴 수 없는 신기한 모습을 띠고 있는 건 분명하니까.

사실 운때가 잘 맞았다. 예전 같으면 여지없이 밀어버렸을 준공업지역의 개발 논리가 도시 재생과 결합해 성수의 허름한 분위기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경리단길을 위시한 여러 동네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유발한 참혹한 결과가 언론을 뒤엎을 때, 지자체는 조례 지정을 통해 대형 프랜차이즈의 공습과 소상공인의 증발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지리적 위치를 무시할 수 없다. 압구정 중심과 이어진 성수대교, 청담동 명품거리와 연결된 영동대교가 모두 성수에 뿌리를 박고 있다. 곧 강 건너 사람들이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강남에서 평생을 산 지인의 경우, 유일하게 강남 밖에서 노는 장소가 홍대였는데, 지금은 놀이터가 성수로 바뀌었다.

나는 이런 성수 지역의 최전선에 작년 겨울부터 노동자로 출근 중이다. 사무실은 2호선 성수역 3번, 4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이 소요되는 초역세권이다. 이런 말을 지인들에게 하면 곧바로 ‘오오오오’라는 반응과 함께 성수에서 가야 할 핫플레이스를 추천해달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치는 대사가 있다. “나는 사무실에서 50m 이상 돌아다니지 않아.” 이 말이 얼마나 유효하냐면, 나보다 5살 어린 동료가 올해 초 입사했을 때 그가 지닌 성수 핫플 DB가 나를 위시한 나머지 사람들의 정보 총량보다 많았다. 그가 특별히 성수를 사랑하는 이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언젠가 한 동료가 지하철 입구 앞에서 받은 커피 쿠폰을 건넨 적이 있다. 원래는 귀찮아서 안 받으려고 했는데 디자인이 예뻐서 받았단다. 우리는 이 공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여행’을 떠났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획득하고 공간을 쭉 돌아보면서 한 마디 했다. “여기 뭔가 돈 냄새가 나는데요. 말로만 듣던 핫플일까?” 얼마 후 그 장소는 인스타그램에서 난리가 났다. 바로 성수연방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현재의 성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 정보다. 작년부터 성수에 거대한 지식정보센터들이 계속 문을 열었다. 용적률을 꽉 채운 것이 분명해 보이는 거대한 빌딩에는 수많은 스타트업이 입주했다. 비록 적더라도 소득이 분명 존재하며, 취향에 민감한 20~30대 남녀가 매일 아침 성수역 출구에서 탈출 전쟁을 벌인다. 이들은 점심을 먹어야 하고, 식후에 커피를 마신다. 야근하면 저녁도 먹고, 주변에서 약속도 잡는다. 그들이 평일에 돈을 쓰는 장소가 어디겠는가? 회사가 자리잡은 성수다.

예전 이 동네의 핫플레이스가 새로운 냄새를 킁킁 맡으며 남들보다 더 빨리 경험하려는 사람들과 그들이 퍼뜨린 정보를 따라 주말마다 부유하는 사람들을 성수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평일 낮이나 밤이나 20~30대 유동 인구의 절대량이 존재한다. 이들을 공략하면 평일 장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고, 이들이 소셜 미디어에 남긴 흔적을 보고 주말에는 타지 사람들이 놀러 온다. 나만 해도 빵 먹고 싶을 때는 ‘어니언’을 간다. 커피 마실 땐 ‘카페 포제’를 간다. 밥 먹고 다리 움직이려고 걸어가는 데가 ‘오르에르’다. 이유는 똑같다. 가까우니까. 편하니까.

성수 대부분은 준공업지역이라 용적률이 높아 개발이 용이하다. 지식정보센터 덕분에 평일 낮에도 20~30대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주말에는 관광객이 몰려 온다. 게다가 서울 동부의 최대 상권인 건대입구역이 지척이다. 서울 서쪽에 자리 잡은 (교통 오지) 목동에서 25년을 살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건대입구역 오피스텔에서 생활하는 나는 아침마다 13층 높이의 창을 통해 건대입구역과 성수역 사이를 조망한다. 여기가 어떻게 개발되고 확장되고, 끝내 서로 이어질 수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이제 성수 부근이 삶의 본거지가 되어버린 내 입장에서 성수는 다른 이들의 성수와 분명 다르지만, 어느 한편으론 동일해졌다. 지금 성수의 상황이 특별하게 와닿는 이유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