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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교육시키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한국은 홍콩과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ANGHI via Getty Images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수상으로 승리를 이끌어내고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머리는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이코노미스트지에 나온 기사를 보면 해로우 스쿨(Harrow School)이라는 명문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의 성적은 바닥을 기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회고록에서 비록 머리는 나빴지만 더욱 똑똑한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상당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답니다. 똑똑한 친구들이 라틴어나 그리스어 같은 ‘광이 나는’ 과목의 공부에 정력을 쏟는 동안 자신은 영어를 철저하게 갈고 닦을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지요. 그가 후일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된 비결이 아마도 그때의 철저한 영어 학습이 아니었을까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기사는 학생들을 교육시킬 때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교육시키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처칠 수상의 예를 보면 모국어를 철저히 공부하는 것이 더 나은 학습방법이고, 그렇다면 영어로 교육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 그 기사의 결론입니다. 나도 그 기사를 읽으면서 강한 공감을 느꼈습니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중에는 과연 어떤 언어를 통해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가 심각한 고민거리인 나라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모국어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고 수많은 토착어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그런 고민이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아예 영어로 교육하는 편법을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 기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영어를 통한 교육의 효과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국어로 배우는 경우에 비해 학생들의 학습량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 여러 사례에 의해 입증되었다고 말합니다.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관찰된 바에 따르면, 심지어 영어 과목의 경우에도 영어로 교육 받은 학생보다 모국어로 교육 받은 학생의 실력이 더 나은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MB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인수위원회에서 “영어몰입교육”이란 개념이 크게 관심을 끌고 있었습니다. 위원 중의 한 사람이 미국에서 생활할 때 “오렌지”를 현지인이 못 알아들어 “아륀지”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알아듣더라는 발언을 해서 우리를 포복절도하게 만든 일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미국화된 영어 교육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그런 우스꽝스러운 말을 했던 것이지요.

다행히 상식이 승리를 거두어 그 해괴망칙한 영어몰입교육이란 말은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머리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의 수학과목까지 중고등학교의 한국사과목까지 영어로 가르친다는 발상이 나왔는지 아직도 궁금할 정도입니다. 자칫하면 우리 교육의 암흑기가 찾아올 뻔 했던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영어사대주의’의 지긋지긋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작 걸음마를 시작하고 엄마, 아빠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어린애를 영어유아원에 보낸다고 극성을 떠는 부모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영어를 배워 뭐에 써먹으려고 비싼 돈 들여가며 애들을 혹사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칠 수상의 예가 증언해 주듯,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를 어중간하게 잘하는 사람보다는 한국어 하나를 최고의 수준으로 잘하는 사람이 사회생활에 훨씬 더 유리한 입장이라고 믿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소통능력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내가 며칠 전 인용한 워렌 버핏(Warren Buffet)의 발언에서도 글쓰기와 말하기 훈련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는데, 그 훈련이 모국어의 글쓰기와 말하기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버핏이 외국어를 잘해야 자신의 가치를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한 건 아니잖습니까?

미국 유학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우리말로 교육을 받았으면 얼마나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밀려올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 영어가 그리 부족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렴 우리말만 하겠습니까? 미묘한 뉘앙스 같은 것을 파악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요.

미국에서 공부하는 경우에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구태여 소통이 어려운 영어로 강의를 들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학생들에게 무조건 일정량 이상의 영어 강의를 듣도록 강제하는 대학이나 학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가 우리말 강의에 비해 학습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검증이나 해보고서 그런 강제규정을 만들었는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싱가포르나 홍콩의 대학들이 영어 강의 비중이 높아 세계 대학랭킹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알려진 비밀입니다. 그들은 어차피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쳤기 때문에 영어 강의가 자연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세계 대학랭킹이 탐이 나 교육효과가 열등할지도 모르는 영어 강의를 밀어 붙이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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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