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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꽃처럼 시들기라도 한다면 한결 쉬우련만

원룸에는 서재가 있을 자리가 없다.

  • 홀로
  • 입력 2019.02.25 21:30
ⓒhuffpost

지난 설을 앞둔 주말, 집 안의 수건을 몽땅 꺼내 삶았다. 내친김에 베갯잇들도 삶았다. 반나절 뒤 파삭파삭 잘 마른 빨래들을 걷어다 개키며, 무료 영화를 하나 골라 틀었다. 바우에르 감독의 <체 게바라: 뉴맨>. 기왕 시작한 집안일을 마저 해치우느라 꽤 듬성듬성 본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건 ‘독후감’이었다. 영화에선 생전의 체 게바라가, 인생의 중대한 순간들마다 책을 읽고 남겼던 감상문들이 여러 편 나왔다. 생사가 오가는 마당에 독후감이라니. 손걸레로 바닥을 닦으며 나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그의 평상심에 감탄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게릴라들은 서재도 없었을 텐데. 그리고 나의 상황을 돌아보았다. 연휴에 읽겠다고 사놓은 화사한 책들이 며칠째 방 안을 표류하고 있었다. 침대 머리맡, 좌탁 위, 방바닥 이쪽, 방바닥 저쪽…. 이미 몇달째 포화 상태인 책장엔 더 꽂을 자리가 없었다. 그 꽉 찬 책장을 한참 쳐다보았다. 꼭꼭 채워진 저 책들 중에, 몇줄이라도 감상을 기록해둔 건 몇권이나 될까. 내 삶의 어느 순간에 이 책이 있었다고, 혹은 이 책이 나를 어디로 이끌었다고 또렷이 기억할 수 있는 건 뭘까. 대충 본 영화 한편 덕분에, 1월이 다 가도록 미루고 있던 새해 목표의 운을 뗐다. 내 여섯평 원룸 안의 랜드마크인 책장 절반 비우기다.

온라인 중고 사이트에 둥지를 틀고

5년에 걸친 대학원 공부는 책으로 자취집 벽 한면을 바르고서 끝이 났다. 3년 전에 ‘미니멀 라이프’ 벼락을 정통으로 맞은 덕분에, 나는 그 전공 책들을 다시 집에서 걷어냈다. 지금 사는 원룸 살림에는 너비 70㎝ 남짓한 5단 책장 하나만 합류했다. 이렇게 지난 몇해 동안 책장을 줄이면서, 나는 인터넷서점인 알라딘의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200권이 넘는 책을 팔았다. 책 정보도 일일이 등록해야 하고, 팔릴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서 매입해주지 않는 전문 서적이라 다른 방법이 별로 없다.

처음 딱 한번, ‘중고도서 방문 매입’이라는 말에 속아서 폐지 장수에게 책 50권을 넘겼던 적도 있다. 책을 눈금 저울에 ㎏으로 달아 값을 매길 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무게를 달고 난 책들을 와르르 마대에 쓸어 담을 때야 비로소 나는 알았다. 지금 이 책들은 책이 아니라 폐지로 팔린 것이란 걸. 한시절 애지중지했던 책들이 때 묻은 자루에 담겨 내 집에서 질질 끌려 나갔다. 계단마다 쿵쿵 모서리를 찧으며 멀어져갔다. 그 모습을 목도하는 마음은 이상하게 서러웠다.

그래서 그 후로 나는 알라딘 중고사이트에 둥지를 틀었다. 귀찮아도, 시간이 걸려도 사진을 찍고 책 소개를 써서 한권 한권 등록을 하게 되었다. 채운 걸 비우는 일이 다 개운하지만은 않음을, 비우는 방식과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원하는 만큼 책을 품고 살 수 없는 나의 작은 집이, 그 작은 집에 살아야 하는 나까지 미워 보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고사이트에 올린 책이 팔리면, 나는 손바닥만한 종이에 손 글씨로 인사를 써서 책과 함께 보냈다. “○○○님, 좋은 책의 새 주인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하십시오.” 이건 소중하게 아끼던 책들을 떠나보내며, 미련을 털어내는 내 나름의 이별의식이었다.

이렇게 책을 팔다가 <TV쇼 진품명품>처럼 재미있는 경험을 한 적도 있다. 굴러다니던 책이 알고 보니 희귀본이라거나 하는. 영화 <싱글맨>의 원작 소설인 이셔우드의 <싱글맨>이 그랬다. 이 책을 중고사이트에 등록을 하자마자 나는 “시세 검색해보고 다시 올리세요ㅋ”라는 문의를 받았다. 앞뒤 없는 어리둥절한 이야기였지만, 일단 책을 판매중지 상태로 바꿔놓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때마침 영화 <킹스맨>이 히트하면서, 배우 콜린 퍼스에게 새로 ‘입덕’한 사람들이 절판된 이 책을 경쟁적으로 사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정가의 두세배 가격으로! ‘이게 팔리려나’ 하며 3000원에 내놨던 책은 한시간 만에 바로 3만원에 팔렸다. 댓글로 감사 인사를 전하자, ‘제가 어제 2만원에 샀는데 3000원에 올라오니까 억울해서요ㅋ’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어렵고도 어렵다.

밑줄투성이 낡은 책만 남았지만

책을 버리고 파는 일이 괴롭다면서도 나는 결국 책을 많이도 팔았는데, 대부분은 소위 말하는 호킹 지수(Hawking Index, 완독률)가 무척 낮은 책들이었다. ‘예술서적’이라고 불리는 그 값비싸고 아름다운 책들을, 나는 조심조심 발췌독만 하고 고이 모셔만 놓았었다. 책이 깨끗하니 장서가들도 얼른얼른 집어가 주었을 테지만, 적당히 아쉬워하며 떠나보낼 수 있었던 건 역시 나의 애착이 그리 깊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반면 이제 하나 남은 5단 책장에 등을 묻고 있는 책들은, 친구의 표현을 빌면 ‘500원에 준대도 살까 말까’ 하는 밑줄투성이의 낡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 오래 지닌 책들은, 내게는 같은 종이 위에 계속 겹쳐 그려진 지진계 기록 같은 것이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슥슥 밑줄을 겹쳐가며 두고두고 읽고 또 읽기 때문이다. 밑줄 모양에도, 즐겨 쓰던 볼펜 색에도 그 책을 읽을 때의 내가 있으니까. 10대 때의 두껍고 꼬불꼬불한 밑줄, 20대 때의 가늘고 느슨한 밑줄, 30대의 옅게 풀어진 일자 밑줄들이 한 페이지에 사이좋게 깃들어 있다.

어두운 밤에, 고요한 불빛 속에서 그 책을 다시 펼쳐 읽을 때, 나는 지금보다 어렸던 내가 쳐놓은 밑줄을 짚고 헤치며 나아간다. 예전과는 다른 지점에서 새롭게 감탄하고, 혹은 여전히 같은 부분에서 다시 감동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가끔 나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나 자신도 답하기 어려울 때, 나는 그 줄들을 따라 지금껏 나를 키워낸 생각들로 되돌아가곤 했다. 고향집 장롱을 열어, 내 몸에 착 감기는 낡은 이불을 꺼내 덮듯이. 하나 남은 책장 앞에 앉아, 비울 책을 고민하는 슬픔은 거기에 있다.

‘미니멀 라이프’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몇년째 내가 하고 있는 걸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건 ‘알맞은 살림’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스님의 선방 같은 텅 빈 공간을 구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집과 내 생활의 규모를 서로 호응하게끔 조절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때마다 책을 열어 밑줄을 되짚어 읽는 즐거움 역시, 지금 내가 굴려나가는 여기 이 방 안에서의 일이다. 끝내 나는 책을 덮고 종잇장보다 얇은 나의 현실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제 나는 인정한다. 2년에 한번씩 이사를 고민해야 하는 지금의 삶에, 천장까지 한뼘 남기고 솟은 이 5단 책장은 아직 어울리는 살림살이가 아니라는 것을. 게릴라의 텐트보다는 아늑하지만, 여섯평 원룸에는 서재가 있을 자리가 없다.

아, 책이 꽃처럼 시들기라도 한다면 한결 쉬우련만.

글 · 유주얼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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