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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2일 17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12일 17시 44분 KST

나는 장사가 아니라 사업을 하고 싶었다

커피피커, 거꾸로 해도 커피피커 ②

huffpost

에이스하이테크21, 인공지능 로켓이라도 만들 것 같은 번쩍번쩍한 이름의 건물이다. 처음에 부모님의 부동산 주소를 듣고 깔깔 웃었는데, 나도 같은 건물에 카페를 차릴 줄이야. ‘에이스‘나 ‘하이테크‘가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이름 그대로 건물은 21층이고 한 층에 20명만 일한다 쳐도 500명의 유동인구를 보장했다. 부모님이 부동산 중개업을 하면서 5년이나 지켜보고 ‘카페 하면 잘 되겠다’라고 딸에게 제안한 자리였다. 같은 1층 옆에 엔젤리너스가 있었고 4층에는 바리스타 학원 겸 카페가 있었지만 커피 가격만 괜찮다면 절대적으로 내가 유리했다.

처음에 장난처럼 떠올린 카페 이름은 ‘반차‘였다. 하루의 반만 휴가를 낸다는 뜻이지만 갖다 붙이기에 따라 ‘차에 반하다‘, ‘반한 차‘라 말해도 그럴듯했다. 무엇보다 직장인들을 주 타깃으로 하는 카페 이름으로 마음에 쏙 들었다. 반차, 모든 직장인들의 꿈과 희망인 반차! 그렇게 이름부터 ‘카페 반차’로 정해졌다.

 

 

″어떤 카페를 할 건데?”

″으응...? 테이크아웃 전문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해 본 적 없는 내가 카페를 차릴 거라고 했더니 디자이너 친구 백양이 나를 불러냈다. 이것저것 두꺼운 책들을 보여주면서 브랜딩이라는 걸 설명해줬다. 우와, 하고 눈만 껌벅거리는 내게 백양은 핀터레스트라는 어플에서 마음에 드는 카페 이미지부터 차근히 모아보라고 했다. 아아, 커피만 내릴 줄 안다고 카페가 차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맛있는 라떼를 만드는 것보다 창업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일은 백 배정도 복잡하고 많고 어려웠다.

 

핀터레스트
당시 모아뒀던 카페 이미지들

 

재밌는 것은 카페를 준비한다고 하면 다들 한 마디씩 거든다는 것이다. 카페 한 번 안 가본 사람은 없으니까. 자기는 이런 데가 좋더라, 이런 느낌은 어떠냐, 커피는 이래야 한다, 저런 게 중요하다, 등등. 심지어 당시 한 달째 사귀던 남자 친구의 조언을 무시했다가 나는 차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결국 나에게 진짜 도움이 되었던 건 디자이너 백양과 커피를 가르쳐 준 장쌤밖에 없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서 커피를 배울 것인지부터 큰 고민이었다. 정부 지원금을 받고 저렴한 비용으로 바리스타 학원을 다닐 수도 있었고 카페에서 직접 일하면서 실무를 익히는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카페 자리가 정해진 이상 나에겐 시간이 곧 돈이었다. 커피뿐 아니라 창업 컨설팅까지 한꺼번에 배울 수 있다고 해서 BAOK(한국바리스타협회)에서 1:1로 커피를 배우기기로 했다. 수업료는 비쌌지만 지나고 보니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 두어 달 가량 커피를 배우고, 카페 콘셉트를 정하고, 인테리어를 고민하고, 장비들에 대해 공부했다. 재밌고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큰돈을 잘 모르는 곳에 써야 한다는 건 신경 쓰이고 머리 아픈 일이었다. 정답 없는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모든 결정은 혼자 해야 했고 결과도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그렇게 일을 진행하다 보니 모기향처럼 욕심이 피어났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는데 ‘장사’만 하기엔 아깝달까. 좀 더 벌일 만한 일이 없을까? 장사와 사업의 차이는 이견이 많겠지만, 내가 생각한 사업은 투자한 시간에 따른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 사장이 일일이 손을 대지 않아도 저절로 굴러가는 지점이랄까 포텐셜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두 정기배송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유명 카페나 스타 바리스타의 원두를 매주 정기배송해주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가입 기간에 따라 핸드드립 세트나 핸드밀을 무료로 보내줌으로써 고가의 장비 구입으로 인한 심리적 구매 장벽을 낮추는 아이디어도 그럴듯해 보였다.

이렇게 온라인 사업을 구상하다 보니 카페 반차라는 이름이 적당하지 않았다. 오픈한 것도 아닌데 정이 든 이름이었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사업을 할 거니까! 새 이름도 쉽게 지을 거라 생각했는데 두 번째 이름은 한 달 가까이 고민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들은 하나같이 죄다 전국 어딘가에서 쓰이고 있었다. 그때 체리피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커피콩을 체리라고도 하고, 좋은 혜택만 골라 쓰는 소비자들을 체리피커라고 한다. 좋은 원두만 골라 보내주는 의미라는 ‘커피체리피커‘를 만들어낸 것이다. 체리피커는 일반적인 용어라 상호명으로 쓸 수가 없었고 커피체리피커는 너무 길었다. 그렇다면 체리를 빼고 ‘커피피커‘로 할까, 고민하는데 아무래도 체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서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때 동생이 ‘커피피커’는 거꾸로 해도 같은 말이네, 그래서 지은 거야? 하길래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네! 커피피커는 거꾸로 해도 커피피커네!

 

 

그렇게 커피피커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반차에서 커피피커까지 오는 데엔 나름 창업가의 신중한 고찰이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지금 나는 사업을 포기하고 장사만을 하고 있다. 내가 유명한 바리스타도 아니고 로스팅을 직접 하는 것도 아닌 이상 원두 정기배송은 말만 그럴듯했다. 핸드드립 세트와 핸드밀을 보내주면서 매력적일 만한 가격을 책정하다 보니 규모가 몇십 명 수준으로 커지지 않는 이상 남는 것도 별로 없었다. 도와주겠다는 친구 몇 명이 정기배송을 신청해준 덕분에 매주 일일이 원두를 포장해서 부치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란 것도 깨달았다. 생전 처음 해보는 카페 일에 적응하는 데만도 힘이 부치는데, 온라인 마케팅이나 고객관리를 할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내 역량을 정확히 모르고 일만 크게 벌인 것이었다.

다행히 큰 손해 없이 스스로 중요한 것을 깨우친 기회였다. 처음부터 내 한계를 깨달아서인지 그동안 제일 많이 한 소리가 ‘안돼, 귀찮아’였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열심히 하자. 그게 메뉴 개발이든 손님 접대든 운영시간이든, 나 자신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지난 2년은 그렇게 나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적응하는 시간들이었다. 새로운 메뉴를 만들 때도, 아르바이트생을 새로 뽑을 때도,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마다 나 자신의 가치를 가장 앞에 두고 결정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카페를 해올 수 있었고, 2년이 다가오는 새해, 커피피커는 확장을 준비하려고 한다.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