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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조끼’에 맞선 마크롱

ⓒBarcroft Media via Getty Images
ⓒhuffpost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집권 1년6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는 ‘노란 조끼(gilet jaune·질레 존)’ 시위가 3주째 이어지면서 폭동 수준으로 격화하고 있다. 지난주 말 파리 샹젤리제 거리는 ‘전쟁터’로 변했다. 복면을 쓴 청년들의 차량 방화로 거리가 화염에 휩싸였다. 상점 유리창을 부수고, 보도블록을 뜯어 경찰에게 던지기도 했다. 개선문이 훼손되고 낙서로 얼룩졌다. 마크롱은 폭력 시위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천명하고 강경 진압을 지시했다. 비상사태를 검토 중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화가 난 시민들이 차량 사고 때 착용하는 노란색 형광 조끼를 입고 집단 항의에 나선 것이 3주 전이다. 전국 각지의 고속도로 진입로나 교차로, 교량 등을 막아 차량 통행을 제지했다. 마크롱 정부가 꿈쩍도 하지 않자 ‘노란 조끼’ 시위대는 파리로 몰려갔고 그때부터 시위는 과격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에는 일부 극단주의 세력이 가세하면서 본격적인 폭력 시위로 변질했다. 지금까지 시민 2명이 사망하고 경찰을 포함해 약 700명이 부상했다. 시위 과정에서 500여 명이 연행됐다.

기름값 인상을 통해 차량 운행을 억제함으로써 대기 오염을 줄인다는 배기가스 저감 정책에 따라 마크롱 정부는 올해 들어 경유와 휘발유에 부과하는 세금을 각각 23%와 15% 인상했다. 내년 중 3~5% 추가 인상 방침을 밝힌 것이 ‘노란 조끼’ 시위를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생업이나 생활 여건상 차량을 운행하지 않을 수 없는 대도시 외곽이나 중소 도시, 농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특히 심하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만을 공유하면서 삽시간에 전국적인 연대망을 결성했다. 주동자도 없고 정당이나 노조와 무관한 평범한 시민들의 자생적 시위라는 점에서 마크롱 정부는 더욱 곤혹스럽다.

‘노란 조끼’ 시위에는 ‘두 개의 프랑스’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파리 같은 대도시에 사는 1등 국민은 기름값 인상에 신경 쓰지 않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지만, 대도시에 살지 않는 2등 국민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유류세 인상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크롱은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 사정은 안중에도 없고, 잘사는 1등 국민만 생각하는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것이 이들의 인식이다.

ⓒSOPA Images via Getty Images

시위 사태에도 불구하고 마크롱은 ‘직진’을 선언했다. 지난주 대(對)국민 연설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의 불만을 이해하지만 정책을 바꿀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국제유가를 반영해 3개월 단위로 조정하긴 하겠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유류세 인상을 통한 차량 운행 억제가 옳은 정책이고, 필요한 정책이기 때문에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류세 인상은 기폭제일 뿐 그동안 마크롱이 추진해 온 개혁정책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이번 기회에 폭발했다고 봐야 한다. 취임 이후 마크롱은 친(親)기업 정책을 밀어붙였다. 돈 가진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규제와 조세 부담을 완화해 줘야 투자가 활성화돼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소신에 따라 부유세를 폐지하고,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했다. 산별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해 개별 기업 노조가 회사 측과 근로 조건과 임금을 직접 협상할 수 있게 했다. 철도 노조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영철도(SNCF) 개혁도 밀어붙였다.

역대 프랑스 정부 모두 개혁을 시도했지만 시민들의 저항에 굴복해 다 실패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요지부동이다. 반드시 개혁에 성공해 고비용·저효율의 ‘프랑스병(病)’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70%의 국민이 ‘노란 조끼’ 시위에 공감하고 있음에도 마크롱은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25%까지 추락한 지지율은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는 지지율에 신경 쓰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보고 가겠다며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개혁정책의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에 그칠 전망이다. 실업률은 9.1%로 여전히 높다. 청년실업률은 25%에 달한다. 개혁은 쓴 약이다. 약효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걸린다. 마크롱은 앞으로 18~24개월 후면 효과가 나타날 테니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정치인은 미래를 내세워 집권하지만 정책은 현실이다. 마크롱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걱정하지만, 서민들에게는 당장 이달 말이 걱정이다. 마크롱이 프랑스병을 고친 용기 있는 정치가가 될지, 아니면 실패한 개혁가가 될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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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유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