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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03일 16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03일 16시 19분 KST

누구도 잘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다

커피피커, 거꾸로 해도 커피피커 ①

huffpost

가족 중 누구도 카페가 잘 될 거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은 카페로 용돈 벌이나 하게 하면서 여차하면 부동산 중개업 공부를 시키려고 하셨다. 나는 부산에 평생 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기껏해야 일 이년, 시범 삼아 카페를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어느덧 2년이 흘렀고 나는 카페를 오히려 확장하려고 마음먹었다. 나조차도 지난 2년을 천천히 정리하고픈 생각이 들어 이 글들을 쓴다.

회사를 그만두고 1년 간 놀았다. 창업 준비를 하면서 딱 50억에 엑싯하자는 꿈도 꿔보고 남아도는 시간 동안 드라마 시나리오 공모전에 도전해서 짜잔 하고 작가의 꿈도 얼른 이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고민은 제자리였다. 딱 먹고 살 정도로만 돈 버는 일을 하면서 글을 쓰고 싶었다. 모두들 꿈꾸는 일상일 거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그런 삶이 불가능한 도시에 우리는 살고 있었다. 반도체 업계로 돌아가지 않는 한 생산적인 기술이라곤 일도 없는 서른 살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게 몸을 쓰는 아르바이트밖에 없었다.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인 카페는 혼자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왔다. 좋아하는 것일수록 눈이 높아져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 핫하다는 경리단길 근처에 5년 정도 살았고 주말엔 1시간이 넘게 웨이팅을 하는 핫한 카페의 평일 단골이었다. 10년 넘게 커피만 해왔다는 그 바리스타 앞에서 나는 감히 내가 직접 카페를 하고 싶다는 말조차 하면 안 됐다. 누군가의 평생의 업을 부럽다고 쉽게 말하는 건 그 사람의 10년을 우습게 보는 일이지 않는가. 거기다 커피든 차든 술이든 마시는 건 다 좋아하는 나는 유명한 카페며 바를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했다. 잘 나가는 예쁜 카페 주인들의 높은 안목들을 따라갈 자신도 능력도 없었다.

아예 책 만지는 일을 할까 싶어서 도서관 사서에 대해 알아보는 중이었다. 아, 이거 관련 과를 나와야 하고 경력도 있어야 정직원이 될 수 있는 일이구나. 돈은 좀 있으니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면서 사서 대학원을 다녀볼까 하던 참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카페 차려주면 해볼래?”

아직도 그 전화를 받은 길이 생각난다. 요가를 하고 오던 길이었던가,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던 길이었던가. 가벼운 복장으로 좁고 오래된 골목을 지나 집에 가던 중이었다. 오른쪽으로는 막 오픈한 모던한 한식집의 돌 담벼락이 참 예뻤다. 나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당연하지!”

 

 

솔직히 차려주신 건 아니다. 내 돈으로 내가 차렸다. 이건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여하튼 나는 망설이기만 하고 결코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일을 부모님이 도와주셨다. 부산 해운대에서도 그 삐까번쩍한 센텀시티에서 공인중개업을 5년 간 하시던 부모님이 제안하신 건 부동산을 2층에서 목이 더 좋은 1층으로 이사하면서 공간 일부를 잘라서 나에게 세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21층인 우리 건물에만 이미 몇 백 명이 근무를 하고 상가들의 크기가 다 커서 혼자서는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점을 하기 힘든 건물이었다. 1층에 엔젤리너스가 있고 4층에 바리스타 학원 겸 카페가 있었지만 나와는 타겟층이 달랐다. 한마디로 부모님이 아주 목이 좋은 곳을 나에게 시세보다 싼 월세로 세 주시겠다는 거였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음회에 계속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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