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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9일 17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29일 17시 43분 KST

프랑스 도보여행길, 소설가 사강의 집에 들르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따뜻하겠지]

류승희
선명한 노란색의 수선화.
huffpost

이름 난 두 사람이 살던 곳

멀리 보이던 마을이 차츰 가까워졌다. 카약이었다. 아름드리 가꿔놓은 채소밭과 꽃밭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눈이 즐거우면 피로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싱그러운 노란 수선화가 자전거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보정된 잡지 표지처럼 색이 선명했다. 멋진 꽃밭 길을 지나 도착한 숙소는 만원 직전에 다행히 마지막 침대를 배정받았다.

대구와 감자를 섞어 만든 요리인 카약 명물 에스토피나드Estofinade를 먹고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낸 뒤 쑤셔오는 발의 통증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며 걸어온 거리를 확인해보았다. 31킬로미터나 되었다. 몸이 한계를 느낄 만한 거리였다. 발의 통증은 욕망도 정열도 한순간에 삼켰다. 머리는 문화를 향하고 있었으나 몸은 800그램의 침낭 속으로 빨려들고 말았다.

카약은 이름 난 두 사람과 관련 있는 마을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까지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파리 퐁피두 센터에 이름을 남긴 프랑스 전 대통령 퐁피두와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집이 있다.

류승희
프랑수아 사강의 집. 꽃병은 누굴 위한 걸까.

식탁 위의 검은 다이아몬드, 트뤼프의 마을

카약을 떠나기 전 《슬픔이여 안녕》을 집필한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생가를 방문했다. 그의 나이 열아홉에 쓴 이 소설은 데뷔작인데 작품 하나로 평생을 유명한 작가로 살았다. 물론 그런 말은 청춘의 상징이며 미소녀의 외모를 갖춘 작가가 싫어할 게 분명하니, 한 권 더 말해보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그의 소설이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혼 직후에 써내려간 자전적 소설로 유명하다. 그녀는 프루스트의 명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 ‘사강’을 따와 필명으로 썼다. 무엇보다 언제 봐도 코믹에 가까운 그녀의 영어 인터뷰 영상이 떠오른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프랑스 텔레비전에 종종 등장한다.

사강의 생가 입구에 놓인 탁자와 꽃, 산뜻한 하늘색 덧문이 인상적이다.

작가의 집뿐만 아니라 마을에는 정성을 다해 가꾸어놓은 예쁜 집들이 많다. 아기자기하게 장식한 골목길은 마을이라기보다는 우아한 산책로다.

카약은 마을 곳곳도 정교하지만 마을을 떠나면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또한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예쁜 꽃길과 과수원 길을 걸으며 출발하는가 하면 뱀처럼 꼬인 로트 강어귀와 마을과 산이 어우러진 파노라마가 기막힌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그냥 되진 않았겠지, 하며 출발한 순례자들은 길을 떠나지 못하고 멀리서 한참을 조망한다. 카약은 석회석 낭떠러지와 붉은 바위 사이 심연에 자리 잡아서인지 마치 바위 구멍을 뚫어 만든 도시 같기도 하다.

카약을 벗어나 드문드문 나타나는 작은 돌집들과 전나무 숲길을 달콤한 침묵 속에 걷다보면 작은 동물과 양 떼를 만나게 된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깜짝깜짝 놀라다보니 어느새 리모뉴 앙 케르시Limogue en Quercy 숙소에 다다랐다. 나는 참 순례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류승희
옥수수 밭길을 걸으며 카약을 빠져나가다.
류승희

세계 3대 진미

리모뉴Limogue는 ‘식탁의 검은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트뤼프 버섯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붉은색과 흰색으로 된 체크무늬 천을 깐 바구니에 우리나라에서는 송로버섯이라 부르는 트뤼프를 담은 상인들이 일렬로 서 있다. 그들은 마치 산삼을 캐는 심마니처럼 트뤼프를 채집하느라 개를 끌고 오랜 시간 쏘다닌 모습이 역력하다. 보통 겨울 트뤼프 시장은 12월 첫 번째 금요일 아침 10시 30분에 리모뉴 앙 케르시 교회 광장에서 시작해 3월 첫 주까지 열린다. 여름에는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매주 일요일 10시 여행 안내소 맞은편에서 열린다.

순례자들의 한 달 순례 비용이 보통 800유로에서 1000유로인데 페리고산 트뤼프는 킬로그램당 1000유로다. 특히 페리고산이 유명하다. 명절이 다가오면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트뤼프는 가격 때문에 크리스마스에나 식탁에 올린다. 요리에 관심이 있든 없든 세계 3대 진미라 불리는 트뤼프의 검은 향기를 리모뉴 장에서 맡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개그맨 브뤼노

낯익은 순례자들이 가득한 숙소에 도착하는 일은 점차 귀가처럼 일상이 되어갔다. 카약 숙소 이후로 다시 만나게 된 브뤼노와 대화를 나눴다. 그 사이 모여든 순례자들은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유머러스한 몸짓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인 그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길에서 인기가 있었다.

브뤼노는 개그맨이다.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를 다쳐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는 절망 속에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 길을 알게 되었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걷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체력이 많이 달리지만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바라보면 절망보다는 희망을 느낀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하며 끝까지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무려 1600킬로미터를 한 획으로.

남프랑스 툴루즈에서 활동하는 그의 소원은 파리로 가서 데뷔하는 것이다. 파리에 사는 순례자들을 향해 그런 날이 오면 자신에게 연락을 하라는 브뤼노의 몸 개그를 바라보며 우리는 슬픈 마음은 날려버리고 또 다시 한바탕 웃었다.

 * 프랑스 도보 여행 에세이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따뜻하겠지(꼼지락)’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