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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6일 10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26일 10시 37분 KST

‘김정은 서울 답방’ 따뜻하게 맞고 싶다

뉴스1
huffpost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두고 두 흐름이 맞서고 있다. ‘백두칭송’과 ‘백두청산’이다.

백두칭송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는 ‘백두 혈통’을 칭송하자는 건가 했다. ‘백두 혈통’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가계를 일컫는다. 김일성 가계를 대놓고 칭송하겠다니, 일반 대중 정서를 고려하면 지나치게 대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김수영 시인이 1960년에 쓴 ‘김일성 만세’라는 시가 떠올랐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58년 전 시인이 꿈꾼 ‘언론자유’ 마당이 드디어 서울에서 펼쳐지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13개 단체가 결성했다는 백두칭송위원회 쪽의 설명은 좀 달랐다. 칭송 대상은 백두 혈통이 아니라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산 결의”라고 한다. 듣고 보니 있을 수 있는 설명 같다. 다만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생경한 용어를 왜 굳이 택했나 싶긴 하다.

백두청산 주장은 이런 이해와 대척점에 있다. 백두칭송위에 반대해 반북, 보수 단체들이 결성한 백두청산위원회 박결 대표는 맞불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적 수령의 이름을 말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나라가 됐구나. 국가보안법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칭송을 반국가단체인 북한 지도자 찬양 행위로 본 것이다. 이 집회에선 김 위원장의 독재와 인권침해 등을 들어 서울 답방 자체를 반대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어느 하나만이 정답일 수는 없는 사안이다. 공과에 대한 평가를 떠나 ‘김정은 만세’를 외칠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원칙에 공감한다. 동시에 만세를 부를 자유만큼, 청산을 외칠 자유 또한 인정돼야 한다. 두 주장 다 일정한 정당성을 갖는다. 결국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두 목소리가 다 울려 퍼질 것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그렇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생각해봤다. 잠정적 결론은 이렇다. 나라면 서울에 온 김 위원장을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맞고 싶다. ‘따뜻한 환영’인데, 몇 가지를 고려한 절충이다.

먼저 부정적 요인들이다. 김 위원장은 3대 세습의 굴레를 쓰고 있다. 북한 노동당 결정 절차를 밟았다고 하지만, 20대에 사실상의 ‘전제 군주’ 지위에 올랐다. 체제 구축 걸림돌을 다수 처단했다.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도 피해가지 못했다. 탈북자 처벌도 강화했다.

긍정적으로 볼 점도 있다. 선대의 전쟁 및 도발 책임에선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내부적으로 경제개혁 조처를 취했다. 북한 주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는 꽤 나아졌다. 핵을 대외 관계개선·경제와 바꿀 수 있다는 뜻을 거듭 확인했다. 핵실험장 폐쇄 같은 선제조처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 주민을 상대로 연설하는 기회를 안겨줬다. 선대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파격이다. ‘조기유학’의 좋은 사례 아닐까 싶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취했던 대북 협상 원칙이 이른바 ‘상호주의’다. 북이 한 만큼(만) 우리도 하겠다는 거다. 이에 비춰서도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받은 만큼은 서울에서 김 위원장에게 돌려주는 게 맞다. 하나 더 보태자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최근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에서 “‘좋은 행동엔 적절한 보상’을 하라는 행동심리학자 스키너의 권고를 상기하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을 비핵화와 평화 쪽으로 한발 더 끌어오기 위해 지금 필요한 건 따뜻한 격려일 것 같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