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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5일 14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25일 14시 22분 KST

뭐죠, 결혼은 답답하고 헤어지자니 외로운 마음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Tzogia Kappatou via Getty Images
huffpost

Q 저는 1년 전 한국에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관심 있는 분야가 생겨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이미 경제적인 독립을 했습니다. 스포츠업계에서 고소득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생의 신분으로 나름 많은 돈도 벌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학생회 활동, 동아리 등 활발하게 활동하며 인생을 즐기며 살았죠. 졸업 뒤 아르바이트를 하던 업계에서 여러 인맥도 쌓았고요. 그러면서 제게 경제적 독립은 점차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2년 정도 잘 만나던 남자친구와 양가 인사도 드리며 상견례 직전까지 갔었지만, 저는 일에 대한 열정이 더 컸죠. 회사에서도 업계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자 저는 조금 더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도전하고 싶은 분야도 생겨 해외연수를 가기로 했습니다. 남자친구는 저의 이런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우린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연수를 준비하면서 연애는 저에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연애는 미뤘어요.

하지만 외국에 와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니 갑갑함도 많이 느끼고 생각처럼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그러던 중 종교 활동을 하면서 저를 많이 좋아해 주는 오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껏 연애하면서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좋아해도 봤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주는 사랑’보다는 ‘받는 사랑’에 익숙해지게 되더라고요. 그 오빠가 저를 많이 좋아해 주니 호감이 생겼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몇 달 전부터 정식으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빠는 어렸을 적 이민을 와서 바르게 잘 자란 사람입니다. 고소득의 직업을 갖고 있고, 부모님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분들이셨어요. 결혼할 사람으로는 그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름 20대 때 고생을 많이 하며 지내왔던 터라 오빠와 잘 지내면서 제가 하고 싶은 공부도 천천히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실 전 그 오빠가 저를 좋아해 주는 만큼 그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제 마음의 크기는 크지 않아요. 그렇다고 제가 마음이 없는 사람과 연애를 할 만큼 계산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전 천천히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의 크기도 키워가고 싶은데, 남자친구는 조급합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갖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요즘 트러블도 많아요. 한국인 지인이 한 모임을 소개해줬습니다. 그곳에서 네트워킹도 하고 여러 교육도 받았죠. 오빠는 그 모임에 좋지 않은 사람들이 여럿 있다며 제가 그곳에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기보다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고 해요.

제가 오빠를 제쳐놓고 그런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항상 오빠를 우선순위에 놓고 지냈는데도 말이죠. 일주일에 여러 번 만나 데이트를 합니다. 제가 이 모임에 간 건 2주에 한 번, 그렇게 세 번 정도입니다. 저는 오빠의 그런 말을 듣자마자 너무 답답했어요. 저는 한국에서도 사회 활동을 활발히 한 사람입니다. 그런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남자친구 이야기를 듣자니 감옥에 갇히는 기분이고 저를 잃는 느낌이었어요.

이 문제로 트러블을 겪는 와중에 오빠는 제 마음의 크기가 크지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가끔 토라집니다. “너는 내가 좋긴 하니?” 이런 질문을 해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너무 비참하고 답답하고 괴로워요. 제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엄마는 오빠와 제가 좋은 관계를 잘 이어나가기를 강렬하게 원하고 계십니다. 엄마 생각도 안 할 수가 없네요. 이 관계… 이어나가자니 답답함이 느껴지고 그만두자니 먼 타지에서 다시 외로워질까 두렵기도 하네요. _답답함이 커지고 있는 여자

A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까지, 사람은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고, 그것이 하루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삶에 대해 내리는 큰 선택들은 우리의 삶의 큰 구조를 세우는 데에 영향을 미치겠죠. 그래서 자신이 해왔던 선택들을 나열하고 그것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지향을 가지고 살았는지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알면 그와 앞으로도 비슷하게 혹은 다르게 살기 원하는지도 명료해질 것이고요.

당신은 경제적 독립과 자아실현이 삶에서 중요한 지향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키워나가고,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내가 성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산 것이지요. 돈을 벌다 보니 경제적인 독립이 중요한 부분이 된 것이 아니라, 당신은 애초에 ‘경제적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중시하는 의지가 강했기에 그런 선택들을 했던 겁니다. 그 선택들이 당신의 가치관을 더 강화시켰겠죠. 그래서 당신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외국까지 떠나는 용기 있는 선택도 감행할 수 있었을 거고요.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학생 신분으로 돌아와 버렸다는 것, 그리고 한국과는 여러 가지로 낯선 외국이라는 것, 당신은 경제적 사회적인 자아가 확장되길 원했겠지만 당신이 외국에 가기로 한 결정이 오히려 당신에겐 힘든 상황을 마련한 거죠. 미래에 대한 불안,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던 가족과 친구들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이 당신에겐 자리 잡았을 겁니다. 생각만큼 즐겁진 않았기에 ‘그냥 한국에 있을 걸 외국까지 괜히 온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겠죠.

그런데 이런 감정이 들었다면, 우리는 또 선택해야만 합니다. 이 감정을 스스로 ‘알아봐 주고, 느껴주며, 수용하는’ 삶을 살지, 이 감정을 ‘불편해하고, 회피하고, 사라지게 하려는’ 선택을 할지를 말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알아봐 주고 수용하려는 쪽을 택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마인드 풀니스‘(mind fullness), ‘마음 챙김‘이라고 부르는데, 그 과정 자체가 이런저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많은 이들이 그 불편한 감정에 휩싸여 파괴적인 행동을 하거나 일단 그 감정을 외면하거나 회피한 채 눈앞에 보이는 다른 선택을 해버리지요. 편지의 마지막에 당신은 ‘관계를 이어나가자니 답답하고 그만 사귀자니 다시 외로워질까 두렵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습니다. 이 문제는 이 남자의 손을 잡을까 말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이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제 다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로 돌아와 봅시다. 일찌감치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미래를 위해 용감한 선택을 내린 나, 대외활동과 성장에 관심이 많은 나, 그래서 결혼 생각을 했던 사람과 이별까지 감행했던 나. 네,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다. 얼른 결혼해서 아이를 갖고 싶고 격주에 한 번 나가는 모임조차 불쾌하게 생각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을 때 어떻게 살게 될지, 당신의 존재 깊은 곳에서 이미 느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불편한 감정을 외면한다는 것은, 내 존재 깊은 곳에서 오는 사이렌 소리를 외면하는 것과 같은 일이 되어 버립니다.

외국에 간 뒤 외로움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나니, 답답함도 외로움도 둘 다 견디기 힘든 것 같으시죠. 하지만 당신에게 그 둘이 비슷한 무게인 것이 맞습니까? 감옥에 갇히는 기분이고 자신을 잃는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과 결혼해서(심지어 당신은 상대에 대한 마음이 그리 크지도 않은데요) 그 사람이 주는 사랑을 받으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외로움은 모두 해결될까요? 사람이 정신적인 감옥에 갇히고 나를 잃는 기분인데 어떻게 외롭지 않을 수 있지요? 겉으로는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 행복한 아내로 보일지 몰라도, 당신의 영혼은 지금보다 더 큰 외로움에 빠질 가능성은 정말 없나요?

당신은 자신을 위해 건강하고 좋은 선택을 해왔던 사람입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외국에서 지내는 시간 때문에, 당신이 누구인지를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외로움을 사라져야 할 감정이라 치부하지 않고, 지금의 외로움이 일시적이라는 걸 깨닫고 당신이 스스로와 함께 있어 줄 때 당신은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명료하게 선택할 수 있을 거예요. 차라리 더 많은 커뮤니티 활동을 하세요.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해도, 인간은 인간이기에 갖는 근원적 외로움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외롭지 않을 것 같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내리는 선택이 ‘결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이 혼란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 혼란을 통해 스스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