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8년 10월 01일 10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01일 10시 44분 KST

협력적 비핵화의 성공조건

Carlos Barria / Reuters
huffpost

남북 정상회담으로 교착을 풀었고, 한-미 정상회담으로 이해를 높였다. 남·북·미 모두 ‘완전한 비핵화’의 목표를 재확인했고, 북한은 ‘트럼프 정부 1기 임기 내’라는 시한을 제시했다. 이제 목표를 향해서 달리면 된다.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으리라. 우선순위를 조율하고 기술적인 방법을 합의하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다만 그에 앞서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인식의 전환이다. 비핵화, 이제는 강압에서 협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북·미 양국이 다시 협상을 재개하면서, 지난 교착국면의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정상 합의와 실무협상의 차이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협력적 비핵화’를 합의해 놓고, 여전히 ‘강압적 비핵화’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강압의 관성이 협력의 뒷다리를 잡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비핵화를 실현하고 한반도의 냉전질서를 해체할 수 있는 이 역사적 기회를 ‘철학의 빈곤’으로 잃을 수는 없다.

협력은 전술이 아니라 전략이고,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협력은 일방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상호 관계로 이루어진다. 적대 관계에서는 지속가능한 협력이 불가능하다. 북한의 비핵화는 다른 국가의 비핵화 사례와 다르다. 핵 개발 수준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비핵화에 필요한 신뢰의 양이 차이 날 수밖에 없다. ‘협력적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미 양국이 관계 변화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행동도 달라져야 한다.

협력은 주고받는 것이다. 주지 않고 받을 방법은 없다. ‘퍼주기’를 비판하는 ‘안주기론’의 핵심은 알고 보면 ‘협력의 거부’다. 상호 관계의 변화를 부정하는 일방적인 힘의 논리요, 냉전질서를 지키자는 현상유지의 논리다. 비핵화의 방법론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이미 ‘비핵화의 실천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극히 초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초보적이라면 초보적인 상응조치로 협력의 수준을 높이면 된다.

무엇을 할 것인지도 마찬가지다.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은 협력의 기초다. 물론 주고받는 과정이 반드시 ‘같은 값’일 필요는 없다. 기계적 상호주의는 불신의 반영이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유연한 상호주의’가 필요하다. 현재의 제재 상황에서도 한·미 양국이 취할 신뢰의 실천적 조치는 얼마나 많은가? 아낄 이유가 없다.

강압에서 협력으로 전환하는 입구에 ‘제재’가 서 있다. ‘제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전략물자의 유입을 막고, 확산을 방지하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최소한 ‘유엔 결의안’에서 제재는 ‘외교의 복원’을 위한 수단이었다. 지금은 외교의 시간이 아닌가? 제재의 목적을 달성했으면, 제재의 강도도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도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제재의 목적이 다르다는 뜻이다.

미국은 ‘제재의 역설’을 생각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제재의 유지가 협상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더욱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물론 제재가 북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무역의 감소가 왜 국내 경제에 부정적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제재의 강화와 북한의 비핵화 결정은 다른 문제다.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핵무장’을 시도했고, 핵무장을 완성하자 협상에 나섰다. 제재의 강화와 비핵화의 결정 시기가 겹치지만, 인과관계가 부족하다.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제재의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 미국이 제재를 계속 유지하면, 결국 북한은 미국의 의도를 의심할 것이다. 의심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비핵화의 속도를 늦춘다. 강압적 비핵화의 ‘실패한 가정’이 ‘협력적 비핵화’의 성공을 가로막고 있다. 제재의 명분이 약해지면 당연히 국제적인 공조도 약화된다. 유엔에서는 이미 대북 제재를 둘러싼 입장 차이가 벌어졌다. 과연 앞으로 국제사회의 합의를 유지할 수 있을까?

북한은 핵에서 경제로의 전환을 선택했다. 전환의 촉진 요소가 바로 제재 완화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에 문을 열어야 한다. 개혁과 개방은 동전의 양면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결단을 환영하고, 이를 한반도 냉전질서의 해체 기회로 삼아야 한다. 북한과 미국 모두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이제 강압의 논리에서 벗어나자. 과거의 실패와 과감히 결별할 때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