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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억의 죄, 정몽구의 죄

ⓒhuffpost

8월30일 아침, 기아차 비정규직 김수억 지회장의 사진이 페이스북에 걸렸다. 그는 플라스틱공장 10미터 난간에서 굵은 밧줄을 목에 감고 있었다.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하라는데 강제로 쫓아내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쓴 펼침막이 걸렸다. 그가 입을 앙다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농성을 벌이자 범퍼 생산이 멈췄다. 범퍼가 장착되지 않은 자동차가 야적장에 쌓이기 시작했다. 회사는 관리자 300명을 투입해 농성자들을 끌어냈다. 이동우 조합원은 12번 척추뼈가 부러져 전치 10주, 조정우 조합원은 팔목 골절로 전치 8주가 나왔다. 목에 밧줄을 맨 채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하면 뛰어내리겠다고 하자, 그때서야 강제해산을 멈췄다고 김수억 지회장이 전했다.
다음날 회사는 “비정규직지회, 프라스틱부 생산현장 불법 점거”라는 제목의 <노사저널>을 뿌렸다. 회사는 “우리의 소중한 일터와 고용은 우리 스스로 지키자”고 했다. 9월3일엔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2007년 여름의 악몽이 떠올랐다.

김수억은 2003년 기아 화성공장 신성물류에 입사했다. 정규직이 쓰던 안전화를 신고, 버린 장갑을 골라 써야 했던 시절. 그는 비정규직노조를 만들다 업무방해로 5개월 감옥살이를 했다. 2007년 노조지회장을 맡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9일 동안 점거파업을 벌였다. 공장이 멈추자 회사는 “우리 일터를 우리가 지키자”고 선동했다. 조·반장 등 정규직 조합원들이 ‘구사대’가 되어 비정규직은 물론 연대 온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각목을 휘둘렀다. 정규직이 비정규직 파업을 파괴한 사건을 ‘831 사태’라고 불렀다. 회사는 김수억을 업무방해로 고소했다. 두번째 구속, 그는 2년6개월을 감방에서 보냈다.

9월3일 아침, 비정규직을 비난하는 정규직 유인물이 쏟아졌다. 조·반장과 주임들이 플라스틱공장을 봉쇄했다. 뒤에서 관리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정규직 손으로 비정규직을 끌어내는 작전이 임박한 모양이다. 형의 손에 아우를 내리칠 칼을 쥐여주는 아비와 무엇이 다를까? 회사가 김수억을 고소하면 그는 세번째 감옥을 가야 한다.

그러나 김수억은 파업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다. 기아차도 2014년 1월 서울중앙지법, 2017년 2월 서울고법에서 플라스틱 공정을 포함해 모두 정규직을 인정받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지난 8월1일 고용노동부 행정개혁위는 현대·기아차 불법파견을 노동부가 부당하게 처리했다며 직접고용 명령을 내릴 것을 권고했고, 김영주 장관도 권고안을 이행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기아차는 일부만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남은 비정규직은 다른 곳으로 쫓아내겠단다.

김수억은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또 감옥에 가겠다고 했다. 대신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 부자에게도 죄를 물어달라고 했다. 정규직 자리에 불법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범죄는 파견법 위반이면 징역 3년, 근로기준법 중간착취 위반이면 징역 5년이다. 2010년 대법 판결 이후 8년 넘게 불법고용 갑질을 멈추지 않는다.

정몽구·정의선 고발장은 검찰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유성기업에서 확인된 부품사 노조와해 갑질, 3대 세습을 위한 글로비스 일감 몰아주기,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공정거래법 위반 원청 갑질…. 김수억은 정몽구·정의선의 죄도 법대로 처벌해달라고 했다. 김수억과 정몽구, 누구의 죄가 더 큰가?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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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기아차 비정규직 #불법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