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8월 31일 18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31일 18시 22분 KST

미국을 숙연하게 만든 조 바이든의 존 매케인 추도사의 명장면들

소속 정당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깊은 우정을 나눴다.

Pool via Getty Images

″제 이름은 조 바이든입니다. 저는 민주당원입니다.”

30일(현지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북피닉스침례교회에서 엄수된 고(故)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당, 애리조나) 추도식에서 연단에 오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렇게 운을 뗐다. 

추도식에 참석한 청중들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조 바이든이고, 민주당 소속으로 정치 경력을 쌓아온 거물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뒤에 이어진 바이든 전 부통령의 한 마디는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저는 존 매케인을 사랑했습니다.”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25일 별세한 매케인에게 보내는 바이든의 추도사는 모두를 감동시켰다. 소속 정당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정치 인생 초기부터 수십년 동안 우정을 쌓아왔다. 바이든은 추도사에서 매케인의 삶과 그의 유산을 회고했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와 같은 사람을 우리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바이든의 추도사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들을 모아봤다.

 

MATT YORK via Getty Images

 

말 없이 공유했던 아픔에 대해

매케인과 바이든은 젊은 나이에 고난과 상실의 아픔을 겪었다. 매케인은 해군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때 포로로 체포돼 고문을 견뎌내야 했다. 바이든은 델라웨어에서 상원의원에 처음 당선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자동차 사고로 아내와 어린 딸을 잃었다.

두 사람은 각자 개인적 비극을 겪은 뒤 얼마 뒤 처음 만났다. 해군 소속이던 매케인이 상원 연락 담당을 맡게 되면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러 주제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각자가 겪었던 개인적 고통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바이든은 회상했다.

″(업무차 전 세계를 같이 돌아다닐 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 우리는 비행기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알아갔습니다.” 바이든이 말했다.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국제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약속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는 (매케인의) 억류와 당시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났던 내 아내와 딸의 죽음을 빼고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바이든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은 건 오직 그 두 가지 뿐입니다.” 

William Thomas Cain via Getty Images

 

처음 우정을 쌓아갔던 시절에 대해

바이든은 정치인생 초기 매케인을 알게된 시절을 회상하며 당시 두 사람이 ”죽이 잘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매케인이 자신의 아들과 두번째 부인 질 바이든과 맺은 우정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젊은 시절 그는 우리 집에 와서, 윌밍턴으로 오곤 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우정을 키워나갔습니다. 그 때나 이후에 형성된 정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우정은 계속됐습니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우리는 똑같은 것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정치는 개인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정치는 신뢰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인생에서 존을 신뢰했습니다.” 

POOL New / Reuters

 

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해 

바이든의 아들인 보 바이든은 2015년 교모세포종(glioblastoma)으로 세상을 떠났다. 매케인이 지난해 진단 받았던 것과 똑같은 병이다. 바이든은 보편적인 주제, 즉 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해 솔직히 언급했다. 

″당시 우리 둘 다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 삶이 매우 잔인할 수 있고, 극심한 고통으로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바이든이 말했다. ”존의 생명을 앗아간 병은 9년 전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알던 친구인 테디 케네디의 삶을, 3년 전에는 내 훌륭한 아들 보의 생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것은 잔혹하고, 매정하고, 무자비합니다. 이 병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Brian Snyder / Reuters

 

‘모두가 절절하게 느끼는’ 매케인의 죽음에 대해

추도사에서 바이든은 매케인의 부재를 ”모두가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고 묘사하며 비탄의 느낌을 담아냈다. 바이든은 매케인의 가족들이 느끼고 있을 감정에 대해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가슴 안에 있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고, 이건 무섭기까지 합니다.” 바이든이 말했다. ”불행하게도 저도 제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누구의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도 지금의 그 고통을 덜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평생동안 존을 우리 모두와 나눴기 때문에 이제 전 세계가 존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여러분과 나누고 있다는 사실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Kevin Lamarque / Reuters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최한 여야 회담에 참석한 조 바이든 부통령(왼쪽)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오른쪽)의 모습. 2009년 6월25일.

 

서로 조언을 주고 받던 시절에 대해

바이든은 이 감동적인 추도사에 약간의 ‘경박함’을 포함시켜냈다. 두 사람이 무참히 솔직한 표현을 써가며 서로 조언을 주고 받았던 시절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다.

″내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면 언제든 존은 제일 먼저 그 곳에 있었고, 저도 존에게 그랬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조언을 건네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바이든이 말했다. ”그가 선거운동 도중 전화를 걸어와서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대체 그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야? 조, 당신은 지금 망친거야.’”

두 사람은 언제나 서로 든든하게 의지하는 관계였다고 바이든은 말했다. 

Brian Snyder / Reuters

 

왜 온 나라가 슬퍼하는지에 대해

최근 며칠 동안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서 존 매케인을 추모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바이든은 매케인의 죽음에 따른 슬픔이 울려퍼졌던 이유는 국가에 대한 매케인의 애정이 미국인들에게 ”용기”를 심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존은 미국의 정신(soul)을 깊이, 열정적으로 신뢰했습니다. 이 나라의 핵심 가치에 대한 그의 믿음은 모두가 스스로 이것을 진정으로 느끼게 해줬습니다.” 바이든이 말했다.

″하나의 국가로서, 세계 곳곳에서 자유와 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수 세대에 걸친 선조들의 희생을 우리가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미국인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미국은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고, 어떤 것이든 견뎌낼 수 있으며, 어떤 것이든 달성할 수 있다는 그의 이 깊은 신념은 지칠줄 모르는 것이었고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ROBERT GIROUX via Getty Images
사진은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이 상원의원(민주당, 메사추세츠)이던 시절 존 매케인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1992년 12월4일.

 

1980~90년대 상원에서의 ‘긴 토론들’에 대해

버락 오바마에 의해 부통령에 지명되기 전까지 바이든은 만 29세에 상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35년 동안 상원에서 활동했다. 바이든은 1980~90년대 매케인과 함께 목격했던 상원에서의 논쟁에 대해 언급했다.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던, 그 모습에 대해.

″제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날들은 미국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던 시절입니다.” 바이든이 운을 뗐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상원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한탄했습니다. 1980~90년대에 상원에서 긴 토론들이 벌어지던 동안, 저는 존 옆 자리에 앉곤 했습니다. 아니면 그가 민주당 쪽으로 와서 제 옆에 앉기도 했죠. 농담이 아닙니다. 우리는 거기 앉아서 서로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가 회상했다.

″그 시절이 어땠냐면, 언제나 다른 상원의원들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으나 그의 의도(motive)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부적절하게 받아들여지곤 했습니다.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일이 진행되기란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논쟁의 본질이 아니라 상대편의 의도를 공격합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 내리막길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존이 의사당에 섰던 마지막 날, 그가 뭘 위해 싸웠습니까? 그는 ‘정상적인 질서(regular order)’를 회복시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대하자고 말입니다.”

 

  

* 이 글은 허프포스트US의 7 Of The Most Heartbreaking Moments From Joe Biden’s Eulogy For John McCain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