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8월 26일 10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26일 19시 49분 KST

미국 공화당 원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애리조나)이 25일(이하 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81세.

Brian Snyder / Reuters

유족이 25일 밤 공식 성명을 통해 매케인의 사망 소식을 전하자 미국 정치계에서는 조문이 밀려들었다. 

 

가슴이 찢어진다. 이 훌륭한 남자를 지난 38년간 사랑하며 여정을 함께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그는 그가 살아온 방식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에서 숨을 거뒀다. - 아내 신디 매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애도를 표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유족에게 깊은 연민과 존경을 전한다. 우리의 마음과 기도가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신디와 그의 가족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며 매케인을 추모한 바 있다.

매케인 의원은 지난해 7월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왼쪽 눈 근처의 혈전을 발견했다. 의료진은 혈전 제거 수술 전 조직검사에서 악성 뇌교종으로 알려진 원발성 뇌종양을 발견했다. 그는 이후 매케인은 회복에 전념하던 중 지난 19일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매케인은 치료 중단 선언 후 상원으로 복귀해 중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존 매케인은 1936년 8월 29일 파나마 운하의 미 해군 항공기지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전투기 조종사 교육을 이수했다. 그 후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던 그는 1967년 하노이 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비행기가 격추되어 북베트남군에 5년여 동안 포로 생활을 했다. 그는 당시 당했던 고문 후유증으로 머리 위로는 팔을 들어 올릴 수 없게 된다. 매케인은 1973년 3월 14일 북베트남군으로부터 풀려났고, 베트남전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매케인의 군 생활은 2016년 대선 기간 중 다시 언급된 바 있다.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매케인은 포로로 붙잡혔기 때문에 전쟁영웅이라고 한다. 나는 붙잡히지 않은 사람이 좋다”라고 말했다. 매케인은 이 발언에 대해 트럼프에게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매케인은 1986년 처음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6선에 성공해 상원 상무위원회, 상원 군사 위원회 등에서 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는 또한 ‘8인 위원회(Gang of Eight)’의 일원으로서 불법체류자들에게 시민권 취득 기회를 주는 이민법 개혁안 초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 법안은 상원에서 통과했으나 결국 하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SAUL LOEB via Getty Images

1999년에는 생애 처음으로 후보 경선에 도전했지만 조지 W. 부시에게 밀려 낙선했다. 2008년 대선은 조금 더 성공적이었다. 그는 당시 마이크 허카비 아칸소 전 주지사,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을 꺾고 공화당 후보로 선정됐다. 

그는 당시 노련한 공화당 의원으로 자신을 포장했지만, 정치 신인이었던 사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하면서 지지율 하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매케인은 결국 변화를 약속한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상대 후보, 버락 오바마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삶이 끝날 무렵에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매케인은 자서전 ‘들썩이는 파도(The Restless Wave)’에서 이번 임기가 생애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냐는 질문에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항상 옳지도 않았고, 실수도 여러 번 했지만 국가에 명예롭게 이바지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신디와 7명의 자녀가 있다.

 

허프포스트US의 ‘John McCain, Senator And Former Republican Presidential Nominee, Die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업데이트: 2018년 8월 26일 오전 11시 30분 (기사 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