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2018년 08월 29일 12시 02분 KST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의 감독이 말하는 실패의 기억들

영화감독 우에다 신이치로 인터뷰

디오시네마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방문한 관객들로부터 입소문이 난 작품이다. 좀비 영화를 찍는 현장에 진짜 좀비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한편의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페이소스를 함께 담고 있다. 일본에서는 소규모로 개봉한 후, 상영관이 확대되면서 흥행을 기록했고 지난 8월 23일에는 한국에도 개봉했다. 8월 29일, 현재 기준으로 전국 58개의 스크린에서 약 6천 명가량의 관객을 동원했을 뿐이지만, 본 사람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지난 8월 9일, 허프포스트일본판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연출한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과 나눈 대화를 여기에 옮긴다.

HUFFPOST JAPAN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약 300만 엔(약 3천만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 일본 극장가에서는 진격의 흥행을 보이고 있다. 이 영화의 감독과 각본, 편집을 맡은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20대 초반 때는 빚더미에 빠져 노숙자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만들 때까지 어떤 일들을 겪어왔을까? 또 그런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그의 인생관과 철학에 관해 들었다.

 

‘그만해’라고 말하면 더 하고 싶은 성격

 

디오시네마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는 약 37분 동안 원씬 원컷으로 촬영된 장면이 있습니다. 달려드는 좀비로부터 탈출하려는 소동을 그린 장면이죠. 이 장면을 찍겠다고 했을 때, 여러 사람들로부터 “그건 무리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좀비물을 만들 때는 여러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컷을 나누어서 찍어야만 합니다. 그게 상식이죠. 저희 촬영 스태프들도 한 컷으로 찍는 건 무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만두자”라고 말하면 더 타오르는 성격이에요.

학창 시절 때부터 그랬습니다. 고등학생 때였는데 호수를 뗏목으로 건너는 일이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다들 나한테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니까 또 더 하고 싶었죠.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해왔던 일 중에는 그처럼 “그만해. 그건 무리야. 그건 불가능해”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들이 저에게는 ‘장작’이 되어서 더 타오르게 된 거죠.

HUFFPOST JAPAN

노숙자로 살았던 시절

20살 때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도쿄에 왔지만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나쁜 어른들에게 속고 다단계에 빠졌다가 1백만엔 정도 빚을 졌죠. 책을 출판하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일을 했다가 또 200만엔의 빚을 져서 노숙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중학생 시절에는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인터넷이 생겨난 이후에는 블로그에 글을 썼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매일 블로그에 쓰는 게 습관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도 그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고 재미있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나쁜 일이 발생하거나, 슬픈 상황에서도 그게 모두 나에게 재료가 될 거라 생각했죠. 그러니 나쁜 일이 일어나도 일어날 수 없는 거죠. “아이고 실패했네. 그럼 이걸 블로그에 써보자”하는 식이었어요.

그때부터 제 나름대로 코미디에 대한 시각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찰리 채플린도 “멀리서 보면 비극으로 보이는 것도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 된다”고 했잖아요. 저도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디오시네마

“나는 왜 도쿄에 왔을까?” 통곡했던 날 

20살부터 25살까지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빚을 지고 친구를 잃고, 집이 사라졌죠. 그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면서 ‘웃음’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25살 때의 어느 날 밤. 갑자기 “나는 무엇을 위해 도쿄에 온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울었습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영화만으로 승부하는 게 무서웠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만 하다가 잘못되면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걸 들킬 것 같아 두려웠던 겁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일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하고 있던 겁니다. 그때서야 영화만 해보자는 각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스튜디오 메이즈’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그전까지는 캠코더만 사용했지만, 그곳에서 큰 카메라와 마이크를 이용해 영화를 만드는 법을 3개월 정도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독립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나왔습니다. 그때 건방졌던 거죠.

HUFFPOST JAPAN

실패도 있었지만, 성공경험도 많았던 기억들

학창 시절에는 어려운 걸 성공시킨 경험이 많았습니다.

중학교 국어수업 시간이었습니다. 각 반별로 연극을 해야 했습니다. 일본 전설의 영웅인 ‘모모타로’(桃太郎)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게 되어있었는데, 저는 하고 싶은 다른 게 있다고 하면서 직접 극본을 썼어요. 그게 인생에서 처음 쓴 각본이었습니다. 국어 선생님이 그걸 인정해주셔서 전교생 앞에서 연극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축제에서 영화를 만들어 상영했습니다. 그 영화들로 3년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후 학교 내 연극부에 들어갔죠. 제가 이야기를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연극부를 입상시키기도 했습니다.

20살 때부터는 큰 실패를 많이 겪었지만, 그래도 그런 성공경험 때문에 건방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천재다!” 계속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주목받았던 곳은 시골 마을이었죠. 도쿄에서는 “너 따위 아무것도 아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것이 더해져 균형을 이룬 것 같습니다.

디오시네마

 

실패는 이자가 붙어 되돌아온다

25세까지 많은 실패를 했기 때문에 30대가 된 때에는 그때의 실패에 이자가 붙어서 돌아온 기분입니다.

저는 노숙자가 되기도 했지만, 여기까지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25세까지는 실패를 모으는 기분으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실패를 모은다는 기분이면 실패해도 너무 크게 낙담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또 저에게는 ‘실패’를 엔터테인먼트로 만든다는 게 좋았습니다. 그건 곧 코미디의 근간이니까요. 

ENBU

 

고민하기 전에 일단 찍어라 

영화를 만들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보고 편지를 보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에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콘티를 그렸나요?’라든지, “캐스팅할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이에요. 저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니, 일단 먼저 찍어!”라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성공하려고 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일단 많이 실패해본 뒤에 성공하지 않으면 ‘강도 높은 성공’이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아이폰을 이용해 친구와 가족을 찍고, 편집도 금방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찍은 것을 보고 ‘내가 못한 게 무엇인가’를 몸으로 배워야 합니다. 그게 저는 가장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보고 지식이 좀 생기는 것보다 더 빠릅니다. 제가 아직 잘난 척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패하더라도 계속 굴러가라”라고 말하고 싶네요.  

*허프포스트일본판의 글을 번역,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