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8월 20일 10시 30분 KST

김지은씨가 ‘안희정 재판’서 한 비공개 진술이 알려주는 것들

"이 소굴에서 나와야겠다. 안 그러면 계속 부를 테니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10가지 성폭력 혐의를 받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1심 무죄가 선고되면서, 주말인 지난 18일 재판부를 비판하는 대규모 도심 집회가 열리는 등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폐회로텔레비전’(CCTV)이나 ‘녹음파일’ 등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재판부가 피해자의 진술 대부분을 ‘신빙성이 없다’며 배척한 점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심리 당시 재판부는 검찰의 재판 전체 비공개 요청을 거절하고 안 전 지사 쪽 증인 7명의 증언을 모두 공개했다. 반면 전임 수행비서 등 피해자 쪽 핵심 증인들의 증언은 ‘2차 가해’ 등을 우려한 피해자 쪽 요청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언론에 보도된 ‘안희정 사건 재판’ 관련 정보가 대부분 안 전 지사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겨레21은 피해자 쪽 동의를 받아 피해자의 검찰 진술조서와 사건이 공개되기 전 피해자로부터 피해 사실을 전해 들은 전임 수행비서 ㄱ씨, 전전임 수행비서 ㄴ씨의 비공개 법정 증언 녹취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1심 재판부의 무죄 판단 때 배척됐던 피해자 쪽 비공개 증언은, 그동안 정보의 불균형으로 여론이 편향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1심이 인정하지 않았던 ‘위력 행사’와 관련해 항소심 과정에서 벌어질 논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① 안 전 지사와 피해자는 ‘애정관계’였을까?

판결 선고문을 보면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해 “위력 관계는 맞지만, 위력을 행사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네번째 피해가 있고 나서 하혈 증상이 나타나자 산부인과를 찾았다. 법원에 제출된 당시 진료기록부에는 “비정상적인 자궁 및 질 출혈”이라고 기록돼 있다. 피해자는 의사에게 “원치 않는 성관계 후 출혈”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당시 피해와 관련해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끔찍한 기억”이라고 진술했다.

지금까지 피해자와 안 전 지사가 연인 사이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진이나 문자메시지, 메신저 기록은 확인된 게 없다. 안 전 지사 쪽에서조차 한 번도 제출한 적이 없다. 피해자의 변호인인 정혜선 변호사는 “안 전 지사 역시 영장실질심사가 있던 3월28일 법정에서 ‘피해자와 교감하거나 단둘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② 피해자가 상화원에서 부부 잠자리 쳐다봤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추가적 주요 정황 검토’ 부분에서 이른바 ‘상화원 사건’을 별도로 설명하면서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했다.

상화원 사건은, 2017년 8월18~19일 충남 보령시의 전통 휴양시설인 상화원에서 열린 중국 대사 접대 행사 때 있었던 일이다. 안 전 지사의 부인 민주원씨는 7월13일 법정에 출석해 “상화원에서 새벽에 자는데 ○○○(피해자)이 부부 침실로 들어와 3~4분가량 지켜보다 나갔다”고 증언했다.

피해자를 ‘이상한 여자’ 프레임에 가둬버린 이 사건의 배경에는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은 제3의 인물 ㅊ씨(재판부 보도자료에도 등장)가 있다. 민주원씨는 피해자가 부부 침실에 들어왔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는 침실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피해자는 ‘(ㅊ씨 일로) 사모가 있고, 중국 대사까지 참석한 일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2층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안 전 지사의 휴대전화는 피해자 휴대전화로 ‘착신전환’ 된 상태였다. ㅊ씨가 행사 뒤 안 전 지사에게 ‘옥상에서 2차를 기대한다’고 문자를 보냈고, 이를 보고 놀란 피해자가 불미스러운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섰다고 설명한다.

피해자 전임으로 일했던 수행비서 ㄱ씨의 법정 증언 녹취서에는 피해자가 ㅊ씨 문자에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지사가 ㅊ에게 스킨십을 하려고 해서 제가 자연스럽게 어깨를 중간에 밀고 들어가며 남들이 오해를 삼지 않게 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검사가 ‘그런 스캔들을 막는 것도 수행비서 업무 중 하나냐’고 묻자 ㄱ씨는 “그렇다. 후임 수행비서(피해자)에게도 (이런 사실을) 인수인계했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당시 사건과 관련해 “세부적인 내용에서 피해자의 증언에 모순, 불명확한 점이 다수 있고, 피고인의 아내인 민씨의 증언이 상대적으로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법정에서 ‘새벽에 난데없이 수행비서가 침실에 침입했다’는 민씨의 증언과 관련해 △민씨가 다음날 1층에 있는 피해자 방에 가서 눈썹펜슬을 빌렸고 △‘왜 새벽에 침실에 들어왔느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민씨는 법정에서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렇다” “제가 상황 판단이 됐으면 여기까지 와 있지도 않았을 것”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③ 성폭행 다음날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 식당 찾아서 문제?

피해자는 수행비서 발령이 난 2017년 7월3일 이후 채 한 달이 되기 전인 7월30일 러시아 출장 수행 중 성폭행을 당했고, 이튿날 평상시처럼 수행비서 업무를 했다.

재판부는 “간음 피해를 잊고 수행비서로서 열심히 수행하려고 한 것일 뿐이라는 피해자의 주장이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하는 식당을 찾아 아침 식사를 하려고 애쓴 점 △피해 당일 저녁에 피고인과 와인바에 간 점 등을 근거로 봤다.

하지만 재판부가 인정한 ‘순두부’ 관련 진술은 당시 출장에 동행한 충남도청 공무원의 공개 증언에서 나온 것으로, 피해자는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혜선 변호사는 “순두부 식당을 검색해서 찾았다는 건 피고인 쪽 증인의 증언일 뿐이다. 피해자한테는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확인한 적이 없다. 아침에 식당을 찾는 과정에서 순두부를 제안한 것은 도청의 다른 공무원이었으며, 결국 햄버거로 아침 식사를 했다는 게 피해자 얘기”라며 “설사 순두부를 검색했다고 해도 성폭행 여부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는 와인바 역시 안 전 지사의 공식 ‘업무 지시’였고, 일행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안 전 지사는 러시아 대사가 마련한 발레 공연을 거부하고, 대사가 제안한 다른 일정도 재차 ‘싫다’고 했다고 한다. 이후 피해자에게 “와인바 등을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와인바에는 안 전 지사와 피해자 외에 현지 교민이 계산 때까지 함께 있었다고 주장한다. 안 전 지사와 피해자 둘만의 개인 일정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한 범죄심리학 전공 교수는 1심 판결 뒤 “재판부는 순두부 등 ‘피해자답지 못함’을 입증하는 정황적인 진술을 제시하는데, ‘피해자성’에 룰이 있는 게 아니다. 피해자성이 사건 즉시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한 달 후에, 수년이 지나서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 이정아 기자
1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 집회’ 참가자들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휴대전화 조명으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④ 담배 가지고 오랄 때 거절할 수 있지 않았나?

재판부는 밤에 담배와 맥주를 구실로 호텔 객실로 부르는 안 전 지사의 지시를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선고문과 보도자료는 피해자가 전임 수행비서 ㄱ씨에게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도 자발적으로 호텔 방에 들어간 것처럼 서술돼 있다. 그러나 전임 수행비서 ㄱ씨는 재판부 앞에서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들어가지 말라’는 말밖에 없었고, 실제로 전임 수행비서로서 (지사가) 불렀는데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회피용으로 그렇게 답변했다”는 등 자신의 ‘본심’은 달랐다고 증언했다.

발령 두달째 되던 2017년 9월3일 발생한 스위스 출장 성폭행 혐의도 재판부는 선고문에서 “의문이 가는 사정”이라며 “ㄱ씨에게 피해 사실을 호소했고, ㄱ씨도 피고인의 객실에 들어가지 말라고 조언했음에도 피고인의 객실로 들어가 간음에 이르게 된 점” 등을 ‘의문’의 이유로 들었다.

실제 ㄱ씨는 피해자에게 “들어가지 말고 (문) 앞에 두고 텔레그램으로 ‘앞에 두었다’라고 답장을 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ㄱ씨는 법정에서 재판장의 질의에 “문 앞에 걸어두고 가는 것은 사실상 저는 해본 적이 없다” “지사님이 찾는 물건을 바닥에 두고 가는 것은 일반적으로 저희 태도에 맞지 않는다”며 당시 자신의 조언이 무의미했다고 시인했다.

⑤ 씻고 오라 했는데, 씻고 온 게 피해자답지 않았다?

재판부는 2017년 8월13일 강남 호텔 성폭행과 2018년 2월25일 마포 오피스텔 성폭행을 서술하면서 특별히 “씻고 오라”는 표현이 있었다고 강조한다. 재판부는 마포 오피스텔 성폭행과 관련해 “피고인이 ‘씻고 오라’고 하자 샤워를 하고 왔다. 수행비서도 아니고(정무비서이고) 달리 당시 심리적으로 제압을 당한 상황이라 볼 만한 정황도 없으며…,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피해자의 그러한 언행은 없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당시 피해자의 심리 상태는 검찰의 피해자 신문조서로 짐작해볼 수 있다. 피해자는 마포 오피스텔에서 들었던 “씻고 오라”는 말을 “지시”라고 표현했다. 이날 있었던 안 전 지사의 ‘지시’는 “씻고 오라”는 것만이 아니었다. “안으라”고 했고, 폭행이 끝난 뒤에는 다시 “씻으라”고 했다.

피해자가 일련의 과정을 서술한 내용은 마치 업무 지시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과 같았다. “관계가 끝난 후 본인이 씻더니 저보고도 씻으라고 해서 씻었고, 그 후에 또 침대 위를 청소하라고 청소도구 위치를 알려줘서 ‘돌돌이’로 청소를 했고, 빨리 나가라고 해서 당시 갖고 있던 돌돌이 테이프 뜯은 거를 ‘휴지통 어디 있어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이 급해서 그냥 가지고 나왔다.”

그는 휴지통이 어디 있냐는 질문조차 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지사에게는 뭘 물어볼 수 없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반문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안 전 지사는 검찰에서 ‘○○○(피해자)이 밀회를 즐기는 마음으로 오피스텔에 왔고, 함께 맥주 한잔을 했고, ○○○이 먼저 ‘저 씻고 올게요’라고 하며 샤워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돼 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안 전 지사의 진술을 인정했다.

피해자가 당한 성폭행 4차례 중 3차례는 2017년 7월3일 수행비서 발령을 받은 뒤 9월3일 스위스 출장까지 2개월 안에 생긴 일이다. 12월 정무비서로 발령이 난 뒤 마음을 추스르던 피해자는 2018년 2월25일 마포 오피스텔에서 약 6개월 만에 또다시 네번째 성폭행을 당하면서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난 여기 못 있겠구나. 이 소굴에서 나와야겠다. 안 그러면 계속 부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