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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08일 14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08일 14시 40분 KST

지금 한국사회에는 '헬조선'을 넘어설 자유 3.0이 필요하다

Sergey Khakimullin via Getty Images
huffpost

한국 사회의 정책 패러다임을 다시 설계하자는 내용의 보고서를 전문가들과 함께 쓰던 중, ‘헬조선’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논의가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다.

우리 사회를 자조적으로 부르는 ‘헬조선’은 그동안 주로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해석됐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 힘들며, 막상 구한 일자리는 임금도 낮고 안정성이 너무 떨어지니, 청년들에게는 지옥과 같다는 이야기다. 책 <88만원 세대>는 이런 생각을 강화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전통적 해법은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기업은 규제를 풀어주면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정부는 최저임금이라도 올려서 임금을 높여보자고 한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보겠다고도 한다. 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게 다 되고 나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한 사회에 살게 되는 것일까?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는 지옥이고 4만달러는 천국일까? 최저임금 7500원일 때 ‘헬조선’인 사회가 1만원이 되면 행복해질 것인가?

‘헬조선’의 문제는 먹고사는 데 한정되지 않았다. 그러니 해법도 경제성장률이나 일자리나 임금에 그치지 않았다. 개인이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문제였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더라도, 적성이 맞지 않고 미래가 없는 일자리라면 머무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청년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손해를 보면서라도 시작하고 싶은 사업이나 창작활동, 봉사활동이 있을 수 있다. 무급이거나 처우가 낮더라도 본인에게는 가치 있는 일이라 뛰어들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사회적 지원이다. 그런 사회적 지원이 이들에게 자유를 준다.

한국 사회는 과거 두가지 버전의 ‘자유’가 있었다. 자유 1.0은 냉전 시기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뜻의 ‘자유’였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해체되면서 유통기한이 지났다. 자유 2.0은 시장주의를 강조한다는 뜻의 ‘자유’다. 자유 2.0은 최근의 공정성 담론으로까지 이어진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를 뒤덮은 신자유주의는 모두에게 끊임없이 이동하며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라고 몰아쳤다.

그런데 삶의 불안이 커지자, 사람들은 거꾸로 얼마 남지 않은 안전지대를 향해 전력질주했다. 공무원 시험에 인재가 몰리고 공기업이 대기업보다 나은 직장으로 여겨지며 교사가 최고의 직업으로 올라선 게 그 무렵부터다. 너무 작은 안전지대를 두고 모두가 경쟁하니 누가 들어갈지를 가려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고, 평가의 공정성, 진입의 공정성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말았다.

사회가 너무 많은 위험을 개인들에게 전가하니, 다들 안전지대를 향한 질주만을 하게 됐고, 그 결과 우리는 국민소득 3만달러에도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지 못한 나라에 살게 되고 말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 모두를 넘어설 자유 3.0이 필요하다. 사회가 개인에게 삶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그 안정성 위에서 사람들이 실질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게 자유로워진 개인들이 더 행복하고, 행복한 개인들 중에서 혁신가가 나오며, 결과적으로 사회가 새로운 동력을 찾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그때 우리는 헬조선을 벗어날 수 있다. 보고서를 같이 쓴 구교준 최영준 이관후 선생과 함께 나눈 생각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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