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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과 넷플릭스의 공통점

넷플릭스 홈페이지 캡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캡처
ⓒhuffpost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하네 마네 이야기가 돌던 2009년 무렵,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아이폰을 깎아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국내 제조사들은 아이폰은 배터리가 일체형이라 갈아 끼울 수 없다고 조롱하고, 애프터서비스의 편리함을 들어 국산 제품을 이용할 것을 권장했다. 음원 사이트 무제한 이용이 불가능한데 뭐가 ‘스마트’하단 거냐고 묻고, 심지어 정전식 터치스크린은 손톱으로 터치가 안 되니 열등하다고 주장했다.

그 속내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1세대에서 전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뒤집어놓았던 아이폰의 2세대 모델이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 휴대전화 시장을 송두리째 내주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으리라. 그래도 그렇지. 데이터 요금제를 판매한답시고 와이파이 기능에 제한을 걸고 국내 출시 제품은 저사양으로 팔아왔던 과거에 대한 제조사의 반성을 기대했던 소비자들에게, 그런 거 없이 일단 아이폰을 깎아내리고 보는 모양새가 마냥 예뻐 보일 리 없었다. 결국 한국 휴대전화 시장은 아이폰의 국내 시판과 함께 일대 격변을 맞아야 했다.

이와 비슷한 기분을 2016년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할 때에도 느꼈다. 한편에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나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강력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앞세운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 타격이 클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어떻게든 넷플릭스는 국내 시장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며 그 잠재력을 낮추어 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내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한국 예능이나 한국 드라마도 없는데 한국 시장에서 무슨 위력을 발휘하겠는가” 같은 말이나, “미국 드라마를 즐기기 위해 매달 돈을 내는 건 일부 마니아들이나 할 만한 일”이라는 말들이 시장을 둥둥 떠다녔다.

물론 국내 넷플릭스 가입자 증가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회원 숫자나 지표를 공개하지 않는 넷플릭스의 특성상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진출 3년차인 2018년 7월 현재 국내 가입자 수는 최대 30만명 선으로 추정된다.

2017년 6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넷플릭스에 풀리면서 추정치는 35만명 선까지 증가했지만, 신규 유입된 가입자 중 1개월 무료 프로모션으로 <옥자>만 본 뒤 결제를 유지하지 않고 다시 빠져나간 수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넷플릭스의 인기 요인

하지만 수치를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과연 안도할 만한 상황인지 의문이다. 2016년 8월, 6만명으로 시작한 국내 넷플릭스 가입자 수 추정치는 2017년 초에는 12만명으로 늘었고, <옥자>가 공개될 무렵에는 35만명까지 솟구쳤다. 1개월 무료 프로모션만 이용하고 이탈하는 수를 고려하면, 유재석이 선보인 예능 <범인은 바로 너!>의 시즌 1 방영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가입자 수 추정치가 30만명 선을 유지하고 있는 건 유의미한 수치다. 원래 보려고 했던 국내 콘텐츠들을 다 소비한 뒤에도,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오리지널 콘텐츠와 사용자 경험에 매료되어 꾸준히 넷플릭스 멤버십을 유지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니까.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활약하는 드라마나 예능을 기다렸던 이들에게는 넷플릭스가 탈출구와도 같았다.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나 <그레이스 앤 프랭키> 같은 시트콤들, 여성 히어로물 <제시카 존스>나 첼시 핸들러가 호스트를 맡은 <첼시> 같은 토크쇼가 주는 해방감이란.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나 <퀴어 아이>처럼 성 소수자 친화적인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준다는 점은 또 어떤가. 게다가 국내 예능이나 콘텐츠에도 일일이 한국어 자막을 제공하는 넷플릭스의 원칙은, 그간 한국 드라마나 예능을 실시간으로 소비하기 힘들었던 청각장애인들에게는 분명한 강점이다.

한국어 자막은 콘텐츠인 동시에 한국에선 전에 없던 사용자 경험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사용자가 보다 말았던 콘텐츠를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보겠느냐고 되물어봐주는 책갈피 기능, 사용자의 시청 패턴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큐레이팅하는 서비스 같은 사용자 경험도 압도적이다.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푹(POOQ)과 왓챠 플레이, 티빙(tving)은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 이후 자사 서비스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넷플릭스와 흡사한 방식으로 개편한 바 있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사용자 경험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IPTV 진출도 눈앞

가뜩이나 콘텐츠 경쟁력이나 사용자 경험도 강력한 마당에, 이제 정말 국내 동영상 서비스업체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생겼다. 이동통신업체 엘지유플러스(LGU+)가 콘텐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넷플릭스와 제휴에 나섰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유플러스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에 가입하면 3개월간 자사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벤트에 이어, 이제 유플러스의 아이피티브이(IPTV)와도 제휴를 타진 중이다. 성사된다면 케이블 방송업체 딜라이브와 씨제이(CJ)헬로비전에 이어 유료방송 중 세번째 사례이자 국내 아이피티브이 업계 중엔 최초 사례가 된다.

“찻잔 속의 태풍”이라 말하던 국내업계도 이제 불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사업자 비즈니스 전략 및 국내 시장 전망 세미나’에서는 급기야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땅 짚고 헤엄치기’ 같은 표현이 등장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의 다국적 정보통신 기업은 한국지사가 유한회사로 등록되어 있어 국내 매출이 공개되지 않고, 서버가 국외에 있어 과세가 불가능하며, 이동통신업체에 망 사용료를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공평한 싸움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데이터센터에 캐시서버를 두고도 망 사용료를 거의 안 내는 유튜브의 국내 동영상 콘텐츠 장악을 대표적인 사례로 든 한국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은 넷플릭스도 이와 같은 파급력이 없으리란 법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유튜브와 구글이 킬러 콘텐츠라 판단하고 스스로 빗장을 열어 유리한 조건으로 구글과 계약을 맺은 건 국내 이동통신업계였다. 유튜브에 한국 사용자가 몰리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도 따로 있다. 인터넷 방송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던 국내 업체는 유명 크리에이터들에게 불합리한 수준의 송출료를 상납할 걸 요구했고, 그에 질린 크리에이터들은 대거 국내 업체를 떠나 유튜브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안 그래도 다른 국내 동영상 서비스 업체와 달리 시청을 위해 따로 액티브엑스나 플러그인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던 유튜브는 크리에이터들을 우대하며 강력한 한국어 콘텐츠 확보에 성공했다. 결국 운동장을 기울게 만든 책임 중 상당수는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

물론 불공정한 경쟁 조건은 수정돼야 한다. 우리는 다국적 기업들에도 공정한 과세와 망 사용료 부가를 할 방도를 고민해야 하고, 국내 업체가 받는 규제 중 부당한 게 있다면 규제를 완화해주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선행돼야 하는 건 그간 국내 업체가 넷플릭스에 상응할 만한 사용자 경험이나 콘텐츠를 제공했는가 하는 반성이어야 하지 않을까? 청각장애인을 위해 한국어 자막을 제공하는 게 기술적으로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나? 여성이 주도하는 콘텐츠나 성 소수자를 비하하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어 충성도 높은 가입자를 확보하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나? 국내 업체의 규제를 완화하고 공정한 운동장을 만들어주면 정말 서비스 품질만으로 넷플릭스를 이길 자신은 있고?

아이폰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아이폰 이야기로 마무리해보자. 삼성이 애플의 공세를 이겨낸 건 대등한 경쟁이 가능한 품질의 스마트폰 시리즈인 갤럭시 덕분이었지, 아이폰이 자사의 제품보다 열등하다는 식의 네거티브 광고나 애플에 더 많은 규제를 해야 한다며 애국심에 호소한 결과가 아니었다. 넷플릭스의 공세에 맞서 국내 콘텐츠 생태계를 지키고 싶다면, 결국 답은 스스로 그럴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뿐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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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아이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