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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차 ’계약결혼’ 부부가 말한 가장 중요한 계약조건은 ‘동침’이다(인터뷰)

"그냥 같이 자는 게 너무 중요했어요."

  • 강병진
  • 입력 2018.06.08 12:27
  • 수정 2019.07.08 10:56

지난 2016년 일본 TBS가 방영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일본 사회에서 하나의 현상을 일으킨 드라마였다. 연애 경험이 없는 남자와 직업이 없던 여성이 ‘고용 관계’ 하에 계약 결혼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지금 일본에는 일반적인 연애나 결혼생활을 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가운데 계약결혼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세가와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여성이다.

ⓒNONOKA SASAKI

하세가와와 (계약 결혼상) 남편인 에조에는 현재 4년 째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이 결혼을 앞두고 합의한 계약조건은 아래와 같다.

1. 혼인 관계는 1년마다 갱신한다.

2. ‘이혼할 자유’를 갖는다.

3. 이혼 제기 조건

(1) 흡연하면 이혼한다(남편이 아내에게 제기할 수 있는 조건)
(2) 불법 약물을 사용하면 이혼한다(아내가 남편에게 제기할 수 있는 조건)
(3) 사전에 말하지 않고, 피임을 게을리해서 다른 사람을 임신시키면 이혼한다.(아내가 남편에게 제기할 수 있는 조건)
(4) 이 조건은 앞으로 늘어날 수 있다.

4. 서로를 성적으로 독점하지 않는다.

양쪽의 성적인 자유를 보장한다.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5, 제3자와 성관계를 갖는다면

(1) 성병 예방을 철저히 한다.(서로에게 꼭 알린다.)
(2) 생식의 의향이 있으면 미리 이야기한다.

6. 기본적으로 맞벌이를 하며 돈은 따로 관리한다.

7. 집안일은 기본적으로 분담한다.

8. 동거도 가능하고, 별거도 가능하다.

9. 결혼 예식은 없다. 반지도 나누지 않는다.

이들은 왜 ‘계약결혼’을 한 걸까? 계약결혼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거듭했을가? 그리고 기존의 결혼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가? 이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샤브샤브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잘맞는 방식이 ‘계약결혼’ 이었다

- 두 분은 어떤 계기로 계약결혼을 하게 된 건가요?

하세가와 : 저는 원래 쉐어하우스에 살고 있었습니다. 계약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후, 한 집에 살던 몇몇 사람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조건들을 이야기하며 동참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에조에도 그 중 한 명이었죠. 우리는 서로에게 요구하는 계약조건이 딱 맞았어요. 그렇게 계약결혼을 하게 됐고, 올해 4년째가 됐습니다.

- 일반적인 결혼 대신 계약결혼을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하세가와 : 저에게는 인간관계를 구축한 후, 일반적인 결혼을 하는 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연애라는 게 생산적이지 않더군요. 설명하기 어렵기는 한데, 연애관계에서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아지다보니 내 안의 균형이 깨지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보니 상대방과 계속 관계를 이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상대방도 불행해지는 것 같았죠.

- 연애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그냥 결혼을 포기합니다. 그런데 하세가와씨는 왜 결혼을 포기하지 않고 ‘계약결혼’을 결심했는지 궁금해요.

하세가와 : 연애는 나에게 잘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모습은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하면서 하기 싫은 것을 하나씩 제거하다보니 결국 ‘계약결혼’이란 방법이 남더군요.

- 하세가와씨의 제안을 받았을때, 에조에씨는 어떤 생각을 했나요?

에조에 : 하세가와는 나한테 “나는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라고 하지 않았어요. “나는 이런 결혼을 생각하고 있어”라는 식으로 대화를 했어요. 그때 나는 “좋은 사람을 찾으면 좋겠네”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죠.

하세가와 : 나도 눈치를 보고 있었어요. 대부분의 반응이 좋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에조에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어요. 부정도 긍정도 안했죠. 그래서 나중에 다시 “어떠냐?”고 물어봤어요. 그리고는 즐겁게 이야기를 했어요.

에조에 : 저도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었던 일이 거의 없었어요. 어렸을 때는 돈도 없었고, 연애를 할 만한 환경도 아니었죠. 그래서 연애관계로 사람을 좋아하게 된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하고 싶었어요.

ⓒNONOKA SASAKI

- 그때 왜 결혼이 하고 싶었던 거죠?

에조에 : 아마도 일상에 질려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쉐어하우스 생활도 좀 질렸을 때였어요. 그때 하세가와가 계약결혼을 제안한 거죠. 이미 난 이 생활에 싫증이 나 있었기 때문에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죠. 또 하세가와가 바로 앞에 있으니까 ‘한 번 도전해볼까?’란 느낌이 생기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우리 사이에서 계약을 조율해 준 사람의 역할이 컸습니다.

- 일종의 중매가 있었던 건가요?

하세가와 : 쉐어하우스에 자주 놀러오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중간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요구하고 싶은 조건들을 정리해줬어요. 서로에게는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걸, 그 친구를 통해서 말할 수 있었죠. 덕분에 각자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드러내놓고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연애결혼이 아니기 때문에, 더 침착할 수 있다

- 계약결혼생활이 이제 4년째 입니다. 지금 두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하세가와 : 우리 둘 다 직장인입니다. 나는 평일에는 오후 6시면 일이 끝나지만, 에조에는 근무시간이 불규칙해서 밤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지요. 일주일에 2, 3일 정도는 같이 저녁을 먹는데, 그 정도면 좋은 것 같아요. 에조에가 요리를 많이 만들어놓기 때문에 남은 걸 제가 식사때 먹는 경우도 많아요.

- 에조에씨가 요리를 자주 하는군요. 가사분담은 어떻게 하나요?

하세가와 : 처음에는 누가 설거지를 할거냐를 가지고 다투기도 했어요. 저는 다른 사람과 함께 식탁에 앉아 먹는 게 좋아서 먼저 요리를 하는 일이 많았죠. 그래서 에조에에게 ‘설거지 정도는 당신이 해라’라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에조에가 일 때문에 집에 늦게 오는 일이 많다보니, 나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가 또 많아졌죠. 그래서 점점 요리를 하지 않게 됐어요. 그랬더니 나중에는 에조에가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설거지는 제가 담당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싸울 일은 없어졌어요.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가치관의 차이로 부딪히는 건 있을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연애관계가 없었던 계약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별한다고 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래서 오히려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그래도 계약결혼 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하세가와: 아주 어려운 점이라고 할 건 아닌데, 주위 사람들의 이해를 얻기는 어렵네요. ‘결혼’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 누구나 먼저 일반적인 결혼을 먼저 떠올리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결혼은 이러이러한 형태다’라고 갑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렵고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을 소개해줄게”라고 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1000엔짜리 패션 반지를 하나 사서 왼손 약지에 끼고 있어요. 제가 직접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아요.

- 부모님에게도 ‘계약결혼’에 대해 이야기했나요?

하세가와: 양가에 인사도 갔죠. ‘계약결혼’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사실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친구로 지내던 사람에게 결혼하자고 했고, 그도 좋다고 했으니 결혼하겠다”고 말했어요. 부모님은 “네가 결정한 거면 됐다”라고 납득하셨어요. 계약결혼 후에는 자주 뵙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행을 가는 길에 방문할 때는 있어요.

 

애인도 아니고, 섹스를 하지도 않지만 같이 잘 수 있는 이성

 

- “내 조건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았다”고 했지만, 이미 두 사람은 4년을 함께 했어요. 본래 궁합이 좋았던 거 아닐까요?

하세가와 : ‘누구라도 상관없었다’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제 조건 중에 하나는 ‘같이 잘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 조건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지만, 에조에는 그걸 받아들였죠. 그래서 계약결혼을 할 수 있었어요.

- ‘동침’이 조건 중 하나였다라는 건가요?

하세가와 : ‘동침’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죠. 나한테는 정말 중요했습니다. 연애 관계가 없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자는 거요.

-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하세가와 : 상대에게 제 자신이 함부로 다뤄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 성적인 피해를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어요. 그래서 여성의 신체로 태어난 걸 약점으로 여기게 됐습니다. 무엇이 결정적인 계기냐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런 여러가지가 얽히면서 자신의 몸을 긍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육체적인 접촉을 할 수 없게 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연애 관계가 아닌 남자친구와 같이 자게 된 일이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내 몸을 좋아하게 됐고, 다른 사람과 몸이 닿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때는 20살이었죠. 그 이후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 에조에씨는 그런 조건을 받아들였군요. 그런데 같이 잘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은 어떻게 했나요?

하세가와: 옆에 있어도 안심하고 잘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이 크죠. 그래서 공식적으로 계약결혼을 하기 전에 쉐어하우스에서 같이 잠을 잔 적이 있어요.

- 시험적으로 같이 자 본 거군요. (웃음)

하세가와 : 그때 중매 역할을 했던 친구도 옆에서 같이 잠을 잤어요. 놀랄 만큼 나와 맞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과의 만남을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에조에 :  이전에 만났던 사람한테도 그런 부분을 적절하게 말했으면 좋았을텐데.

하세가와 : 그런 미묘한 뉘앙스랄까, 그게 잘 전해지지 않을때가 있어서 답답하기도 해요.

같이 잠을 자는 게 성적인 관계로만 끝나버리면 많은 사람과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저는 저에게 맞는 함께 잘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거죠. 그런데 그게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렇게 찾았던 사람이 20살때 만난 그 남자친구랑 에조에 밖에 없었죠.

솔직히 저는 에조에와 공통의 취미도 없어요. 우리 서로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아주 자세하게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내가 안심하고 같이 잘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지금은 그런 생활이 안정되어 있어서 행복해요. 

ⓒNONOKA SASAKI

 서로의 파트너까지 4명이 한 집에 사는 꿈

계약조건 중 하나는 ‘성적으로 구속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건 각자 다른 사람과 연애하거나, 섹스를 해도 좋다는 내용이에요. 두 사람이 서로 각자의 연애이야기도 나누는 편인가요? 두 사람 사이에 연애관계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질투도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하세가와 : 우선 각자 밖에서 다른 사람과 섹스를 했다면, 그건 서로에게 말하기로 했어요. 계약조건에 있죠. 왜냐면 혹시라도 성병의 위험이 있으니까요.

저는 연애관계와 신체관계를 별개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연애 이야기를 숨기는 건 싫어요. 그걸 말할 수 없다면 함께 살 수 없어요. 에조에는 내가 연애이야기를 해도 슬퍼하거나 질투하지 않을 것 같아서 안심하죠.

다만, 저는 질투심이 좀 있어서 에조에가 자기 연애이야기를 하면 불끈할 수도 있어요. 그게 좀 불리하기는 한데(웃음), 그래도 에조에의 포용심을 존경하기 때문에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노력은 하고 싶어요.

에조에 : 무리한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네요.

하세가와 : 노력하겠습니다.(웃음) 하지만 서로 파트너가 생기면 어떨까요? 우리는 지금 호적까지 함께 등록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파트너와 함께 입적해서 동거를 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 서로의 파트너와 입적해서 동거를 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하세가와: 일단 합리적이니까요. 우리는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부양관계가 아니에요. 하지만 서로의 파트너는 직업이 없거나, 학생일 수 있죠. 그러면 입적을 한 다음에 에조에와 함께 사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에조에 : 일반적인 결혼생활은 한 사람이 돈을 벌고, 다른 사람이 살림을 하는 상황에 맞춰 제도화되어 있어요. 그래서 돈을 버는 배우자의 수입에서 공제가 발생하고, 그의 건강보험과 연금에도 살림을 맡는 배우자가 포함될 수 있죠. 또 돈을 벌던 배우자가 사망하면 연금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입적을 하는 게 장점이 더 크죠.

- 일반적인 혼인제도를 활용하는 거군요.

하세가와 : 혼인제도는 따져보면 합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제도를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적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지금 에조에와 저에게는 법률적인 결혼이 가져다주는 장점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필요에 따라 결혼환경을 맞춰서 갈 수도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하세가와는 ‘사용자 정의’란 말을 자주했다.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나오는 옵션 항목 중 하나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을 설계한 자가 그려놓은 그림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그림으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 옵션을 선택한다. 하세가와 또한 기존의 결혼제도를 아예 부정한 게 아니다. 그는 그런 제도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해, 결혼제도를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사용자 정의’는 이들의 삶 자체를 구현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취재 佐々木ののか 편집 笹川かおり

*허프포스트일본판의 ‘私たち、契約結婚しました」一番大切にした条件は、恋愛ではなく◯◯でした’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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