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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 성소수자 인권의 달을 축하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

동성애를 혐오하는 크리스천들이 읽어보길 바란다.

  • 김도훈
  • 입력 2018.06.04 15:28
  • 수정 2018.06.04 15:30
ⓒEndurodog via Getty Images

매년 6월이 되면 LGBTQ+ 커뮤니티와 동지들은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성소수자 인권의 달) 축하 행사를 연다. LGBTQ들의 온전한 모습을 주인공으로 하고, 평등을 향한 그간의 진전을 돌아보며, 축하와 포용이 예외가 아닌 표준인 세상을 상상해 보는 기회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비판과 비난을 담은 시선으로 프라이드 먼스를 보는 경우가 많으며, LGBTQ에게 독설을 퍼부을 기회로 삼곤 한다.

프라이드는 LGBTQ 커뮤니티가 축하할 기회일 뿐 아니라, LGBTQ가 아닌 사람들이 뉘우치고 보다 예수에 가까운 존재가 될 기회이기도 하다.

프라이드 먼스가 필요하게 된 큰 이유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크리스천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통일 그리스도 교회, 성공회 등 보다 넓은 포용을 위해 노력해 왔던 교파들이 있긴 하나, 크리스천들(특히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역사적으로 LGBTQ를 배제하고, 학대하고, 피해자로 만들고 타자화하는 맥락의 상당 부분을 만들었다.

본질적으로 동성애 혐오적인 가짜 과학 회복 ‘세라피’의 도입부터 가족이나 친구, 교우가 LGBTQ로 커밍아웃할 경우 버리고 배척하는 것까지, 크리스천들은 역사적으로 신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라고 한 사람들에게 벌을 주고 외면해왔다. 교단 연설의 동성애 혐오 언어를 정상화하고 신학적 ‘순수함’이라는 이유로 학대를 정당화함으로써, 기독교측은 LGBTQ에 대한 정치적과 영적으로, 인간 관계에 있어서 비인간화에 기여해 왔다.

이러한 정상화를 통해 기독교는 LGBTQ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했다. 예수의 십자가는 사랑, 자기 희생, 급진적 포용의 십자가다. 그러나 기독교는 LGBTQ에게 배제, 괴롭힘, 거부, 우울, 고립, 자살 충동, 억압, 비판의 십자가를 지게 만들었다. 기독교는 죽음, 노숙, 고립의 문화를 만드는 것을 방조한 책임이 있다. 이는 결코 신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따서 만들어졌으나, 성서와 예수의 이미지는 이들에 대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기독교는 한 커뮤니티 전체의 인간화와 치유에 대해 자신들이 멋대로 해석한 신학 이슈를 갖다붙였다. 사람들을 비판하는 예수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이 진짜 예수다, 신의 의지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이 신을 본따 만들어졌으며 신은 모든 인간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늘 참이다. 제도가 부여한 신학 학위가 이를 결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성경 말씀은 어떻게 하고?”라고 따질 크리스천도 있을 것이다. 나는 누가 ‘옳은가’를 판단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들먹이며 싸울 생각은 없다. 그건 요점을 놓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율법을 엄청나게 중시하는 바리새인들은 끊임없이 성경을 무기로 삼아 사람들의 인간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공격을 일삼았다. 예수는 그들에게 늘 똑같은 감정을 품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생기를 주라고 권하며, 그들이 만든 억압적 종교 관행의 짐을 벗게 해주라 했다. 예수의 리트머스 시험은 해석학적 분석이 아니었다. 연민이었고, 소외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신의 자세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서구 기독교 신학의 결말은 죽음, 우울, 노숙, 배제다. 기독교는 LGBTQ가 안전하게 크리스천 커뮤니티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LGBTQ에게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신의 형상이 덜 남아있다고 믿게 만들려 한다.

크리스천들은 이번 달에, 그리고 앞으로도 매일, 기독교가 LGBTQ를 해쳤던 사실을 보고 뉘우치며 개선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 퀴어의 목소리가 이끄는 길이고, 우리를 예수에 더 가까이 데려다 줄 길이다. 이번 달은 우리가 압제자라는 것을 명확히 볼 기회이며,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고치고, 우리가 내리눌렀던 목소리들을 높이게 하고, 차별적 법률에 반대하고, 우리 자신의 동성애 혐오를 뒤집고, 회복력이 강하며 역동적인, 다양한 LGBTQ 커뮤니티라는 보물을 기릴 기회이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본다면 기독교는 프라이드 먼스가 우리의 동성애 혐오를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신학이나 전통 뒤에 숨지 말고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LGBTQ에게서 배우고, 반 LGBTQ 정서, 정책, 행동이라는 전통적 성향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급진적 사랑과 포용을 만드는, LGBTQ를 중심으로 하고 옹호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

기독교는 LGBTQ가 연단에 서게 해야 한다. 함께 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론과 신학적 연구를 거부해야 한다. LGBTQ를 교회와 조직들의 최고위층에 일부러라도 앉히면 가능하다. LGBTQ 커뮤니티는 늘 목소리를 내왔지만, 교회는 역사적으로 귀를 막은 채 똑같은 성경 구절만 외쳐왔다. LGBTQ 크리스천들은 이미 적대감, 신앙에 대한 문제 제기, 커뮤니티 내의 거부에 맞서오며 이를 이끌어왔다. 우리 모두의 해방을 위해 우리는 그들을 따라야 한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기독교는 나아질 수 있다. 나아져야만 한다. 이대로 가다간 위험하다.

크리스천인 우리는 연민을 버리고 사람들을 경멸이나 폭력의 대상으로 다루기 시작할 때 완전한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프라이드는 우리가 보다 온전한 인간이 되게 해주는 동시에 억압적 관행과 사상을 끝낼 기회를 준다. LGBTQ 안에 있는 신의 형상에서 배워야 한다. 신이 젠더와 섹스에 있어 얼마나 다양한지를 가르쳐 주는 형상, 기꺼이 사랑을 추구하며 회복력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형상, 우리 모두의 인간성을 위해 싸우는 법을 알려주는 형상이다. 이번 달, 그리고 앞으로도 쭉, 크리스천들은 우리가 LGBTQ에게서 빼앗은 것들을 돌려주어야 한다. 목소리, 공간, 존엄, 안전, 그들의 전적인 인간성의 확인이 바로 그것이다.

프라이드는 크리스천들이 우리의 압제적 역사를 분명히 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번 달의 축하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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