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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12일 11시 2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12일 11시 22분 KST

한국적인, 너무나도 한국적인!!

2020년대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huffpost

5년 전쯤, 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어머니가 하시던 부대찌개 전문점을 물려받게 됐는데, 인테리어를 싹 다시 했다며 개업식에 꼭 와달라고 하기에 지인의 식당으로 향했다. 도통 주제를 파악할 수 없는 소품들과 내부장식이 가게를 채우고 있었다. 조롱박과 새마을기, 오크통과 LED 전광판, 아이언맨 피규어와 훈민정음 벽지가 모여 부대찌개 집을 이루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바깥의 풍경은 더 흥미로웠다. 나레이터 모델 둘과 키다리 삐에로, 바람에 흐느적거리며 반경 내에 있는 모든 것을 무작위로 위협하는 춤을 추는 인형, EDM 범벅의 음악과 LED로 만든 터널. ‘신장개업’이라는 글자는 금색으로 인쇄되어 빛나고 있었고 양쪽 옆에는 나팔을 불고 있는 조선 시대 복장의 풍선 인형이 있었다. 얼마 전, 지인의 그 부대찌개 집에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을 때 나레이터모델 대신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마네킹이 있었다는 것만 빼면 변한 게 없었다.

여기까지 지어낸 이야기다. 다만, 여기까지 읽으면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이 글은 절반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에는 그 사회와 시대의 정체성을 다루는 태도가 담겨있다. 이제부터는 어제 있었던 ‘실화’를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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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망의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식이 치러졌다. 늦은 시간까지 다른 일을 하느라 생중계를 보지 못한 나는 오늘 아침에야 파편화된 개막식의 이미지들을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압도적이었던 건, 늘어지게 늦잠을 자려던 나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든 존재, 시차를 감안해 지금쯤이면 전 세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법한 존재, 인면조였다.

고구려 벽화에서 2018년을 향해 날아왔다는 그 인면조는 낯선 모습만큼이나 충격적인 표정을 하고는 “똑똑히 기억해라, 내가 바로 코리아다!”라며 긴 목을 휘두르고 있었다. 인면조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보게 된 장고 퍼포먼스는 좀처럼 하나 되지 않는 군무로 음양오행의 조화를 설명하고 있었고, 각국 선수단이 입장하는 긴 시간 동안 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멈추지 않고 춤을 췄다.

 

Kim Kyung Hoon / Reuters

 

성화 점화를 앞두고 상영된 ‘모두를 위한 미래’라는 영상에서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미국산 미시시피 붉은귀거북을 방생하더니 4차산업혁명을 이룬 미래에 의사와 과학자, 예술가 등이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더니 어느새 촛불을 들고나온 이들이 모여 평화의 비둘기가 되었고, 하이라이트였던 성화 점화는 마치 사다리차의 사다리가 올라가 거대한 항아리에 불을 붙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달항아리를 그대로 옮겨온 성화대에 붙은 불은 마치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칠성신에게 무병장수, 소원성취, 자녀성장, 안과태평 등을 빌던 무속 신앙을 연상케 했다.

종합하면 이렇다. “생태계 교란종 거북이를 방생하며 불 뿜는 달항아리에 빕니다, 모두를 위한 미래에 우리도 끼워주소서! 우리가 누구냐면, 호랑이를 좋아하고 5천 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개중엔 인면조도 있습니다. LED와 춤을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의사 선생님 같은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이 염원을 모아 다 같이 주문을 외웁니다. 四次産業革命!”

앞서 묘사한 한국의 개업식 현장과 평창 올림픽 개막식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의 집합과 맥락 없는 옛것의 인용, 춤과 음악의 오용, 추한 시각 요소의 남용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개막식의 풍선 인형과 인면조가 다르지 않고, 나레이터 모델들의 춤 노동과 자원봉사자들의 춤 노동이 다르지 않다. EDM 범벅의 음악과 난사되는 LED 빛은 이제 없으면 허전하기까지 하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50년이 아니라 꼭 5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기대 본인들의 문화를 읊조리며 도무지 연결 지을 수 없는 것들을 뭉텅이로 가져와 맥락 없이 늘어놓는다. 이런 방식으로 정체성을 다루는 한국인의 태도는 건축, 디자인, 미술, 음악, 연극, 무용 등을 통해 다양하게 드러나며 확산된다. 이렇게 ‘한국적인 형식’이란,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 밑도 끝도 없는 사족을 주렁주렁 매다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태도가 형식이 되어버렸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이런 ‘한국적인 형식’을 집대성한 행사였다. 올림픽을 통해 생각보다 빨리, 2020년대가 이렇게 개막-개업했다. 2020년대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