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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생쥐가 연구자를 데리고 놀 때

한국마사회 관리는 문체부가 맡아야한다

  • 최현우
  • 입력 2018.02.12 14:07
  • 수정 2018.02.12 14:08
ⓒhuffpost

″야! 이제 저 초록색 고리 당기자!”

유리 상자 미로 속에 생쥐 두 마리가 뛰고 있다. 미로 끝에는 빨강, 파랑, 초록 고리가 달려있고 백색 가운의 박사급 연구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관찰한다. 연구원 한 사람은 타이머를 들고 초조하게 시간을 재고 연구자는 마주 보며 난감한 표정을 교환한다. 초록색 고리를 당기면 땅콩이 나오지만 다른 색깔 고리는 당겨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확률적인 상황에서 생쥐는 학습한 내용을 기억하는지 확인하는 연구다. 앞서 뛰던 생쥐가 뒤따르는 생쥐에게 은근히 묻는다. ”쟤들 표정 봤어? 너무 초조해하잖아? 이제 고리 당기자” 다른 생쥐가 답한다. ”아냐! 조금 더 헤매는 척하다가 고리 당기면 쟤들 되게 좋아해!”

ⓒTASS via Getty Images

 필두는 내 말이었다. 지난 경주에서 12마리 중 10등으로 골인했다. 말이 1800미터 경주를 좋은 성적으로 뛰려면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한데 이놈은 그걸 할 줄 몰랐다. 훈련자는 페이스 조절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과속하면 고삐를 당겨 속도를 줄이고, 빠른 속도로 가야 하는 구간에서는 고삐로 힘껏 목을 민다. 그런데 필두는 속도를 낮추려고 훈련자가 고삐를 당기면 고개를 하늘로 쳐들며 반항했다. 말이 고개 들고 앞을 못 보는 상태에서 뛰면, 앞서가던 말과 부딪힐 염려가 있어 기수는 고삐를 늦추어야 한다. 그러면 필두는 다시 자기가 뛰고 싶은 속도로 뛴다. 훈련에서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 기수가 말을 가르치고 있는지, 말이 기수를 가르치는지 구분할 수 없다.

이렇게 관리하거나 가르쳐야 할 사람이 오히려 관리받고 가르침 받아야 할 사람에게 관리받는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이라고 부른다. 기관을 관리하고 규제할 역할과 권한을 가진 정부가 대상기관에 관리받는 상태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런 규제포획 상황이 만연하면 그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 또는 국민에게 심각한 불이익을 준다. 나라 꼴도 말이 아니다. 그 폐해의 대표적 사례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마사회에서 볼 수 있다. 생쥐가 연구자를 가지고 놀고, 말이 훈련자를 훈련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현실에서는 얼마나 일어날까?

ⓒwildpixel via Getty Images

현대사회에는 거의 모든 경우 규제포획 현상이 일어난다. 사실 정부가 제정하는 법안을 공무원이 만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많은 법안이 관리받는 산하 단체나 기업이 법안 초안을 만들고 이를 부처 공무원에게 들고 가면 담당 공무원은 대충 수정한 다음 자기가 만든 법안인 양 부서장 결재받고, 국무회의에 보고해서 국회로 넘긴다. 정상적인 정부에서도 다수 발생하고, 이명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런 현상이 만연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젊은 날, 내가 그 짓을 십수 년 했기 때문이다. 규제포획은 규제받는 사람이 규제자에게 금전적,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경우, 다시 말해 뇌물 먹어서 약점 잡힌 상태에서 일어난다. 장충기 사장으로 대표되는 삼성이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방송국, 언론사 모두를 장악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또 다른 경우로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서 규제자가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하거나, 규제할 책임을 방기할 때 일어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마사회의 관계다. 먼저 규제포획으로 인한 부작용부터 보자.

2017년 5월과 8월, 한국마사회 부산‧경남지역본부 마사회를 비난하며 두 명의 말 관리사가 자살했다. 10월 9일과 10월 12일, 사흘 간격으로 두 명의 마사회의 간부직원이 직장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자살했다. 2018년 1월 10일에는 한국마사회 제주경마장에서 조교사가 자살했다. 짧은 기간 동안 한 기관에서 다섯 명의 종사자가 자살하는 사건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2013년 10월 이전 신축한 용산 화상경마장은 주변 학교장과 학부모의 5년, 1710일간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서울시장과 여당 원내총무가 나서도 해결이 어려웠고 촛불 시민혁명 후 정권이 바뀐 뒤에야 해결되었다. 정유라 최순실의 마사회 게이트 수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말 관리사의 산업재해율은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일상적인 경주마 확대, 동물 학대가 일어난다. 무엇보다 한국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5.1%로 세계 최고 수준이고, 마사회가 시행하는 경마는 그 중심에 있다. 홍콩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경마로 인한 도박중독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한국마사회는 어떤 실적도 내놓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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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이 마사회를 관리 감독해야할 농림축산식품부가 마사회에게 규제포획 당해 마사회의 일부 경영층에게 오히려 관리를 받은 결과다. 규제포획의 결과는 이렇게 심각하다. 관리해야 할 농림부가 한국마사회의 실질적인 관리를 받는 이런 규제포획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첫 번째 원인은 전문성 부족이다.

2013년 여름, 마사회 간부직원과 맛집으로 소문난 족발집에 앉았다. 모임을 주선한 사람이 나를 소개하며 말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경마를 알기 위해 한국마사회 도서관 책을 전부 대출해서 읽는 사람이라고 과장해서 말했다.

″몇 년도에 마주 되셨어요?”

마주는 경마장에서 뛰는 말의 주인이다.

“2009년입니다. 5년째 됩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자 이 간부는 간단하게 내 위치를 정해주었다.

″아직 초보구먼!”

​당시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했다. 지금은 그의 말을 이해한다. 올해로 승마한 지 15년, 마주 된지 9년이며, 승마에 대한 책까지 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초보로 자리매김한다. 말은 그렇게 어려운 분야이고, 경마는 더욱 복잡하고 전문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분야다. 말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다 해도 다음에 만나는 한 마리 말로 인해 지금까지 가졌던 지식과 이론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이런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마사회를 관리‧감독하려면 감독기관은 대단한 전문성을 보유해야 한다. 농림부 관리의 말과 경마에 대한 전문성은 어느 정도일까?

몇 달 전 농림축산식품부 전직 차관의 말산업 육성법 강의를 들었다. 축산국장 시절에 자신이 이 법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분, 말의 종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조랑말과 경주마만 알고 있었고 경마와 승마의 구분도 어려워했으며 경주마인 더러브렛종이 식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실제 한국마사회를 관리하다 은퇴한 공무원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말이요? 몰라요. 저는. 경마는 더 모르죠. 농림축산식품부 업무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마사회 활동의 근거가 되는 법안, 농림부의 관리영역을 정하는 경마와 마사회, 말산업 법안은 첫 글자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마사회가 만든다. 내가 만난 농림부 관리의 지식으로는 만들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마사회 일부 경영층을 위한 법 제정과 관리방안이니, 도박중독에 신음하는 국민과 고객, 자살에 내몰리는 말 산업 종사자, 학대받는 말은 안중에 없다.

두 번째 원인은 규제와 관리할 책임의 회피다. 한국마사회는 농축산식품부 축산국 축산팀에서 관장한다. 담당 이사관은 그 일을 맡기 전에 경마가 뭔지도 몰랐던 사람이다. 말도 모르고 경마장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알 이유도 없다. 어쩌다 보니 이 일 맡았지만 1-2년 뒤에는 다른 부서에서 일한다. 평생 경마와는 담쌓고 살아도 문제없다. 게다가 이사관의 일은 소, 닭, 돼지, 특수 동물 등 축산과 관련된 일이다. 사고 나면 대통령부터 전 국민이 관심을 둔다. 실제 이 일 맡았던 분에게 물은 적 있다.

“업무의 몇 퍼센트나 마사회 관리에 할애했나요?”

“전혀요. 2퍼센트? 그것도 안 될걸요?”

전문성도 없지만, 관리할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이다. 업무시간의 2 퍼센트?

정리하자. 마사회법, 말산업 육성법을 비롯한 경마 관련 법은 모두 마사회가 만들고, 관리는 없다. 그래서 앞에서 이야기한 직원 자살과 높은 도박중독률, 동물 학대가 일상으로 일어난다.

정부가 관리하는 기관의 폐해와 비리를 감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언론과 국회 국정감사지만 한국마사회만은 예외다. 일간지 기자는 경마에 대한 지식도 없을뿐더러 한국마사회에 관심이 없다. 국회 국정감사는 있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경마에 대한 지식이 없을 뿐 아니라 지극히 짧은 시간에 끝나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기댈 곳은 마사회를 관리하는 정부 부처 뿐이다. 정부 부처가 제대로 관리해서 선량한 시민의 도박중독과 직원의 죽음, 권력형 비리, 동물 학대를 감시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5년 동안 이런 기능을 수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실험용 생쥐에게 농락당하는 박사급 연구자, 훈련시켜야 하는 말에게 훈련받고 있는 멍청한 말 관리사처럼, 관리해야 할 마사회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농림부다.

유일한 방법은 2008년 이전, 한국마사회를 관리했던 문화체육부가 관리하는 조치다. 사실, 농림축산식품부가 마사회를 관리해야 할 논리적인 근거가 없다. 말이라는 동물로 경주하기 때문에 농림부가 관리해야 한다면 야구, 축구, 농구 스포츠 토토는 사람이 하는 경기이므로 교육인적자원부가 관리해야 한다. 강원랜드는 전자기기로 도박을 하므로 산업자원부가 맡아야 한다. 마사회법에 경마는 레저스포츠라고 규정하고 있다. 레저스포츠를 관장하는 부처는 문화체육부다. 농림부가 관장한다는 것은 경마를 축산업으로 간주한다는 것으로 논리상으로 맞지 않는다.

주말마다 경마장에 모이는 경마팬도 국민이다. 살을 에는 겨울 혹한에 말을 관리하는 조교사, 말 관리사도 국민이다. 이들을 도박중독에서, 자살에서, 산재에서 해방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한국마사회 관리를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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