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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편견을 이용할 때

지방선거와 개헌을 앞두고 '성평등'에 대한 공격이 심하다. 성차별을 줄이자는 의미에서 국제적으로 합의된 용어인 '성평등'에 대한 무지와 억지의 소산이라고 할 만한 유언비어지만, 당장의 민원만 피하고 보려는 정부 관계자들은 그들이 만들지 말라는 법은 폐기하고, 그들이 쓰지 말라는 용어는 삭제한다.

2014년 미국의 휴스턴 시의회는 평등권 조례를 통과시켰다. 성, 인종, 피부색, 장애, 유전적 정보, 임신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례는 일명 '영웅법'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1년 뒤 영웅법은 주민투표에 의해 폐지되었다. 주민들이 갑자기 평등을 원하지 않게 된 것일까?

투표에서 여론이 뒤집힌 이유를 분석하자면, 조례 폐지를 원했던 이들의 '법안에 오명 씌우기' 전략이 먹힌 탓이다. 그들은 조례를 '화장실법'이라고 바꾸어 불렀다. 피켓의 구호는 "여자화장실에 남자는 안 돼!"와 "아무 남자나 언제든지"였다. 즉 이 조례가 남자들이 여자화장실에 들어와 성폭행을 저질러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텔레비전 방송으로 나가는 폐지 투표 독려 캠페인 영상은 성범죄자가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10대 여성에게 위협을 가하는 내용이었다. '평등'이 마치 기본적인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성폭력을 조장하는 것처럼 포장되었다.

이들은 조례에 있는 많은 내용 중에 단 하나,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자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구절만 붙잡고 늘어졌다. 이 조항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자화장실을 사용하려다 사람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포함되었다. 남성이 범죄를 목적으로 화장실에 들어오는 것은 이 조례와 상관없이 여전히 금지되고 처벌 사항임에도 마치 조례가 제정되면 성범죄가 늘어날 것처럼 과장했다. 이와 유사한 법이 있는 다른 곳에서 법 제정 이후 성범죄가 늘어났다는 통계나 근거가 없음을 밝혔지만 이런 설명보다는 화장실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남기 마련이다. 즉 기존의 편견과 혐오, 두려움을 자극해서 본질을 보지 못하도록 시야를 흐려버리는 것이다.

이런 식의 거짓 선동의 폐해는 한국에서도 되풀이된다. 올해 대구 달서구에서 청소년노동인권조례의 제정이 무산되었다. 반대파들이 내세운 이유는 '동성애 조장'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들이 월급을 떼이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구청이 돕겠다는 것인데 어찌하여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인지는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사람들의 편견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어디든 동성애 조장이라는 딱지만 붙이면 된다.

차별금지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법이 만들어지면 교회에서 목사님이 동성애는 죄라고 설교만 해도 잡혀가고 벌금을 내게 된다며 반대한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그래서 반대파들은 그럴싸하게 믿게 하려고 미국 오하이오주 목사가 동성애자의 주례를 거부해서 벌금형을 받았다는 사례를 주로 인용한다. 그러나 주례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그가 운영한 곳이 교회가 아니라 웨딩홀이란 점이 문제였다. 손님을 가려 받겠다는 것이니 차별이 명백했다. 그 목사는 웨딩홀을 종교법인으로 바꾸었고 법의 적용 대상에서 벗어났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본질을 흐리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례로 유포되고 있다.

가장 큰 걱정은 미국부터 한국까지 평등을 실현하려는 조처에 반대하는 핵심에 극우 개신교가 있다는 점이다. 종교시설과 신앙생활이 편견과 공포, 유언비어가 확산되는 통로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사회적 불행이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와 개헌을 앞두고 근래엔 '성평등'에 대한 공격이 심하다. 성평등이나 젠더라는 용어는 좌파가 만들어냈고, 동성애자 인권을 내세우는 것은 빨갱이들의 전략이라고 주장하며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던 성평등위원회 설치 반대, 헌법 조문 내 성평등 용어 사용 반대, 여성가족부 해체까지 요구하고 있다.

성차별을 줄이자는 의미에서 국제적으로 합의된 용어인 '성평등'에 대한 무지와 억지의 소산이라고 할 만한 유언비어지만, 당장의 민원만 피하고 보려는 정부 관계자들은 그들이 만들지 말라는 법은 폐기하고, 그들이 쓰지 말라는 용어는 삭제한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조심한다. 모든 것은 나중으로 밀린다.

유언비어가 사람들을 움직이고, 유언비어가 정치를 움직이는 나라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헌법 20조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 자들이 개헌을 논하는 현실에서 어떤 민주주의를 꿈꿀 수 있을까. 평등의 정확한 의미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혐오와 폭력을 양산하는 정치를 하게 될 뿐이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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