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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민족·종교 ‘엉킨 실타래' 예루살렘은 누구의 땅인가

  • 김원철
  • 입력 2017.12.07 10:51
  • 수정 2017.12.07 11:00

인류사에서 정치·군사·종교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심각한 갈등의 무대가 된 도시를 꼽으라면 예루살렘에 필적할 곳은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 영유권 분쟁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본격화됐다. 1917년 영국이 오스만튀르크로부터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으면서 유대 국가 건설을 약속한 밸푸어선언이 이스라엘 건국의 도화선이다.

유럽과 중동 각지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에 국가를 세우면서 아랍인들과의 전쟁으로 예루살렘 서쪽을 점령하고, 요르단은 동예루살렘을 차지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 전면은 유대인들의 성소인 통곡의 벽이고, 뒤로는 무슬림들의 성소인 황금돔사원이 보인다.

이스라엘은 1967년에는 아랍국들과의 ‘6일 전쟁’으로 동예루살렘까지 손에 넣었다. 이스라엘은 1980년에는 이곳을 “이스라엘의 완전하고 통합된 수도”로 규정한 법을 제정했다. 대부분의 정부기관도 예루살렘에 설치했다. 예루살렘은 현실적으로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기능한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강점으로 규정하고 예루살렘의 수도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각국이 이스라엘의 2대 도시인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둔 이유다. 유엔은 1947년 예루살렘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해 이-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 특별관리지역으로 삼는다는 내용의 결의 제181호를 내놨다. 지금도 유효한 결의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자치정부를 수립한 팔레스타인인들은 동예루살렘을 자신들이 미래에 세울 정식 국가의 수도로 삼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국제사회도 이스라엘이 1967년 이전 영토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지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절대로 떼줄 수 없다고 고집한다.

예루살렘 안에서도 핵심은 동예루살렘에 있으며 넓이가 0.9㎢에 불과한 올드시티다. 우선 유대교의 성지로, 이스라엘왕국의 솔로몬왕이 만든 성전 터에 세운 통곡의벽이 있다. 이슬람 선지자 마호메트가 승천했다는 곳에 세운 바위돔사원(황금돔사원)과 알아크사사원도 맞붙어 있다. 예수가 묻히고 부활했다는 곳에 건립한 성묘교회와 그가 처형당한 골고다언덕도 있다. 아브라함을 선조 또는 선지자로 받드는 3대 종교의 핵심 성지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이슬람에서는 다른 아들 이스마엘이라고 설명)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는 곳이기도 하다.

예루살렘과 올드시티의 이런 성격은 화약고 역할을 해왔다. 예루살렘 인구의 30~40%를 차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점령에 항의하며 인티파다(봉기)를 일으켜왔고, 소규모 유혈 충돌도 꾸준히 발생한다. 1951년에는 올드시티의 알아크사사원에서 기도를 올리던 요르단 왕 압둘라 1세가 팔레스타인 과격파의 총에 사살되기도 했다.

예루살렘은 현대사로만 국한하면 이-팔 분쟁의 중심 무대이지만, 길게 보면 십자군전쟁을 비롯한 종교, 민족, 문명 간의 쟁탈전 대상이었다. 꼭 500년 전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오스만튀르크는 여러 종교의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자유롭게 오가게 했다. 올드시티를 유대교·가톨릭·이슬람·아르메니아정교가 지금도 분점하고 있는 것은 종교 간 공존을 위한 노력의 흔적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시도는 이런 예루살렘의 역사성과 종교 간 균형을 흔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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