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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연애 이유로 권고사직 시킬 수 있을까

'사내 연애 해고'는, 밥을 빨리 먹지 않는다고 혹은 회식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고하는 것만큼이나 부당한 것이다. 사내 연애권이라는 명문의 기본권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지만, 회사원이 다른 회사원과 사랑을 할 자유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권에 포섭되는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할 수도 있다.

  • 양지훈
  • 입력 2017.11.22 08:33
  • 수정 2017.12.07 07:03

[모르면 바보되는 노동법②]

불과 30여 년 전에는 같은 회사 구성원끼리의 연애를 금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취업규칙이나 인사규정에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내용을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사내 구성원들에게 불문율로 적용되던 시절이었다. 물론 용감한 일부 회사는 사규로 사내 연애를 퇴사의 원인으로 적시한 경우도 있었다. 임신하거나 출산을 하게 된 여성 사원이 있으면 퇴사가 당연하던 시절이었으니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실제로 내가 근무했던 한 대기업 역시 입사하고 보니 정규직 여자 부장은 회사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 있던 분들도 사내 정치에서 맥없이 나가떨어지던 것을 눈으로 목격했으니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니다.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전근대적인 규정은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었다. '실화'는 더 있다. 공장에 위장 취업을 했다가 학교에 복귀한 전설의 80년대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노동자들의 폭력적인 작업장 문화도 놀라웠다. 산업 현장에서는 상사들의 욕설과 폭행이 일상화되어 있었고, '쪼인트 까기' 같은 군대식 폭력도 빈번하게 행해진다는 것이었다. 폭력 행위나 강도가 달랐지만,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억압적 회사 문화가 만연해있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

사내 연애와 근무 기강

그런데, 최근 사내 연애를 한 사원에게 '근무 기강'을 다잡기 위해 사직을 권고하며 사실상 징계 해고를 했다는 한 회사의 '실화'를 접했다. 물론, 그 회사는 취업규칙이나 사내 규정으로 연애를 징계 사유로 정해놓지는 않았다(만약 이를 명시했다면 소송에서 무효인 규정으로 다툴 수 있을 것이다). 소규모 회사 대표인 사장이 개인적 판단을 통해 해당 근로자의 연애를 이유로 사실상 해고를 단행한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회사에서의 징계란 근로계약상 의무나 기업질서 위반 등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음을 이유로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행하는 불이익한 처분을 말한다. 회사는 비위 정도에 따른 징계 종류로 통상 견책, 감봉, 정직, 해고 등을 정해둔다. 이 때, 징계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그 사유가 정당해야 하고, 절차가 적법해야 하며, 최종 처분인 징계의 양정이 적정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요소(사유-절차-양정) 중 단 한 가지라도 하자가 존재한다면, 그 징계는 위법하여 취소되거나 무효가 된다.

사내 연애를 이유로 사실상 징계 해고를 하는 경우는 징계 사유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사내 연애 해고'는, 밥을 빨리 먹지 않는다고 혹은 회식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고하는 것만큼이나 부당한 것이다. 사내 연애권이라는 명문의 기본권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지만, 회사원이 다른 회사원과 사랑을 할 자유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권에 포섭되는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백 번 양보해서, 어떤 사업장의 경우에는 사내 연애가 복무기강을 어지럽히고 특수한 근로내용상 사내 연애 해고를 하는 것에 어떤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가정해보자. 매우 우습지만, 그 회사에서 연애를 시작한 A과장과 B대리가 빌딩 계단에서 키스를 하다가, C부장에게 들켜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장면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 경우 회사 징계위원회는 'A와 B는 네 죄를 알렸다'고 호통 치며 거룩한 연애에 대한 합당한 징계로 해고를 명할 수 있겠다.

징계 사유의 입증책임은 사용자가 부담

A와 B가 징계위원회 위원들 앞에 불려나가 소명을 해야 할 때, 이들의 가장 합리적인 대응은 무엇일까? 회사를 다니기로 결심했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연애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징계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은 징계를 하려는 자인 사용자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근로자에게 어떠한 징계사유가 존재한다고 하여 징계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징계사유의 존재를 입증할 책임이 사용자에게 있다'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2. 8. 14. 선고 91다29811)가, A와 B의 사랑과 일자리를 보호해 줄 것이다. 입증책임이란 쉽게 말해 소송법상 어떤 사실을 '먼저' 입증하지 않으면 그 불이익을 입는 당사자의 위험을 말한다. 입증책임을 사용자가 부담한다는 의미는, 징계 사유인 연애 사실을 회사가 입증하지 못하면 연애는 없던 것처럼 되어 소송상 불이익을 사용자가 진다는 뜻이다.

법적 다툼을 가정해보면 '사내 연애의 정의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진지하게 따져볼 수도 있다. C부장의 증언은 그들의 연애를 응원하는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지만, 썸만 타고 있던 A와 B가 갑자기, 불현듯, 무의식에 이끌려 계단에서 키스를 했다면 이를 사내 연애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약간 궁색한 항변을 해볼 수 있다. 곧바로 사내 연애를 어떻게 포섭할 것인가 하는 착잡한 법률문제가 이어진다. 사내 연애란 "사내 구성원이 진지하게 만남을 3개월 이상 지속하고 있는 실질적 애정 관계를 말하며, 해당 기간 동안 1회 이상의 키스 또는 이에 준하는 관계를 가진 역사적 사실이 있음을 요건으로 한다"라고 황당한 정의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내 연애를 사실상 해고 사유로 정하거나 권고사직의 이유로 하는 것이 희극적인 이유다. 강조하자면, 회사의 징계 사유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타당성이 인정되어야만 적법하고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사실 실무에서 더 문제되는 것은 징계 사유 보다 징계 절차이다. 징계를 당할 위험이 있는 회사원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다음 글에선 정당한 징계의 두 번째 요소인 징계의 절차적 적법성에 대해 살펴본다(계속).

[모르면 바보되는 노동법①] 회사에서 징계란?

https://www.huffingtonpost.kr/jihoon-yang/story_b_18499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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