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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삼성 반도체 노동자 '뇌종양'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 허완
  • 입력 2017.11.14 09:30
  • 수정 2017.11.14 09:33
A visitor is silhouetted standing in front of the Samsung Electronics Co. logo displayed at the Semiconductor Rider experience at the company's d'light showroom in Seoul, South Korea, on Tuesday, Jan. 27, 2015. Samsung, the world's largest producer of smartphones using Google Inc.'s Android, is scheduled to release fourth-quarter earnings results on Jan. 29. Photographer: SeongJoon Cho/Bloomberg via Getty Images
A visitor is silhouetted standing in front of the Samsung Electronics Co. logo displayed at the Semiconductor Rider experience at the company's d'light showroom in Seoul, South Korea, on Tuesday, Jan. 27, 2015. Samsung, the world's largest producer of smartphones using Google Inc.'s Android, is scheduled to release fourth-quarter earnings results on Jan. 29. Photographer: SeongJoon Cho/Bloomberg via Getty Images ⓒBloomberg via Getty Images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뇌종양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삼성전자 엘시디공장 노동자의 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지난 8월 대법원 판결에 이어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한 판결로, 하급심과 산재 행정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4일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반도체 노동자로 일하다 퇴직한 뒤 뇌종양에 걸려 숨진 고 이윤정(사망 당시 32세)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업무와 발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원고 패소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한 사례는 있었지만, 뇌종양을 산재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이씨는 6년2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벤젠 포름알데히드 납 비전리방사선 등 여러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며 “발암물질의 측정 수치가 노출 기준 범위 안에 있더라도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장기간 노출되거나 주·야간 교대근무 등 기타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에는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씨는 입사 전에는 건강에 별 이상이 없었고 뇌종양과 관련된 유전 요인이나 가족력도 전혀 없는데 우리나라의 뇌종양 평균 발병 연령보다 훨씬 이른 30살 무렵에 발병했다”며 “이 사건 사업장이나 비슷한 근무환경인 다른 반도체 사업장의 뇌종양 발병률이 한국인 전체 평균발병률이나 비슷한 연령대의 평균발병률보다 유달리 높다면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

이어 “이씨가 걸린 교모세포종 뇌종양이 빠르게 성장·악화한다지만 발암물질에 노출된 뒤 발병까지 이르는 속도 역시 빠르다는 의미는 아니어서 퇴직한 지 7년 뒤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점만으로 업무와 발병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과 관련한 역학조사는 이씨가 근무한 때부터 여러 해가 지난 시점에 실시됐고 발암물질로 알려진 포름알데히드 등에 대한 노출 수준이 측정되지도 않아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8월 반도체·엘시디 공장 노동자의 산재 사건에서 업무와 질병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하고 노동자의 산재 입증 책임을 크게 완화해, 희소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을 산재로 인정하는 판결을 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노출 허용기준 이하라고 해도 그런 유해인자에 상시로 노출되는 노동자에게 발병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질환이 발병한 경우에는 여러 유해 요인이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며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전향적으로 폭넓게 인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당시 판결과 같은 취지”라며 “아울러 뇌종양의 경우 발암물질에 노출된 뒤 상당 기간 이후에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여러 해를 지나면서 악성도가 높은 교모세포종으로 변화한 사례도 보고된 적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퇴직 후 7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이윤정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 5월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해 반도체 칩이 담긴 보드를 고온 설비에 넣고 불량품을 걸러내는 일을 했다. 2003년 퇴사해 자녀 둘을 낳았던 이씨는 2010년 5월5일 뇌종양 판정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하자 2011년 소송을 냈다. 이씨는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2년 5월 사망해, 유족들이 소송을 이어받았다.

1심 재판부는 ““발병의 원인과 기제가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근무하는 동안 유해 화학물질, 극저주파 자기장, 주·야간 교대근무 등과 같은 작업 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일정 기간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뇌종양이 발생하였으므로, 이러한 질병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산재로 인정했다. 그러나 2심은 “연장근무 등으로 인한 과로나 스트레스가 뇌종양을 유발했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고, 퇴사 후 7년이 지나 뇌종양으로 진단받은 점 등에 비춰 업무와 발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앞서 대법원도 2015년 2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튀직한 뒤 뇌종양에 걸린 한아무개씨가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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