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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노화와는 다르다...치매국가책임제 활용법

ⓒ쇼박스

올해 70살인 남성 장순원(가명)씨는 최근 조금 전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술자리가 끊이지 않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은 스트레스가 많았다. 고혈압, 고지혈증 관리도 잘 안 됐다. 기억력도 나빠지는 것 같았다. 결국 5년 전 장씨는 대학병원에서 인지검사와 뇌 영상 검사를 받았다. ‘아직 치매는 아니지만 경도인지장애가 의심되니 뇌 영양제를 복용하며 지켜보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 치매로 진행될지 염려됐다. 치매를 막을 방법이 있을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치매예방프로그램이 있다면 참여하고 싶지만 주기적으로 병원을 가는 것 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본인이 치매가 의심된다면, 혹은 가까운 이들이 그렇다면 앞으로는 가까운 ‘치매안심센터’에서 검진과 상담, 관리를 받을 수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는지 안내받고 전담 관리사를 통해 지속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치매국가책임제를 실현하기 위해 오는 12월부터 전국 252곳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치매안심센터 안엔 치매단기쉼터와 치매카페가 만들어진다.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 가운데 치매 증상이 나타난 이들이 있다면, 치매와 치매국가책임제 활용법에 대해 알아보자.

치매! 노화와 다르다

치매란, 다양한 원인의 뇌 손상으로 기억력·언어력·판단력 등 여러 영역의 인지 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이 나타나는 상태를 말한다. 대표적인 초기증상은 기억력 장애다. 치매 노인의 기억력 장애는 경험한 것의 전체를 잊어버리고, 점차 심해지며, 판단력도 저하된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히 생기는 기억력 저하와 차이가 있다.

치매 증상은 기억력 장애 말고도 지남력(시간·장소·사람을 아는 능력) 장애, 언어능력 장애, 시공간능력 장애, 실행능력 장애, 판단력 장애 등이 있다. 또 망상과 의심, 환각과 착각, 우울, 무감동, 배회, 초조, 공격성, 수면장애 등이 생길 수 있다.

치매 증상은 단계별로 다르다. 초기 치매의 특징은 ‘최근 기억의 감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예전 기억은 유지되지만, 최근 있었던 일을 잊는다. 음식을 조리하다 불 끄는 것을 잊고, 미리 적어두지 않으면 중요한 약속을 잊는다. 조금 전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질문을 되풀이하고, 대화 중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거’ ‘저거’ 등으로 표현하고 머뭇거린다. 또 관심과 의욕이 없고 매사를 귀찮아한다.

초기 치매는 그래도 혼자 지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중기로 넘어가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중기로 가면 돈 계산이 서툴러지고 전화나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을 조작하지 못한다.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몇시인지, 어느 계절인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종종 잊는다. 평소 잘 알던 사람을 혼동하고 대답을 못 해 머뭇거리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대답을 하고 그저 ‘예’라고 답한다. 익숙한 장소인데 길을 잃거나 외모 치장에 실수가 잦아 외출 때에도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더러 집안을 계속 배회하거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도 한다.

조기발견, 지속치료가 중요

치매는 아직 완치 가능한 치료제가 없는 진행성 질환이다. 점차 심각한 인지기능 저하, 행동장애, 일상생활과 직업적·사회적 기능장애를 보이게 된다. 치매의 진행을 늦출 약물치료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초기에 약물을 사용하면 건강한 모습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중앙치매센터 자료를 보면, 전 국민이 치매를 조기 발견해 진행을 지연시킬 경우 20년 뒤엔 현재 10%가량인 치매 유병률이 8% 수준으로 낮아진다. 또 치매 초기 단계부터 약물치료를 하는 경우 5년 뒤 요양시설 입소율은 5분의 1로 준다. 약물치료를 지속하면 증상악화를 늦춰 치매 환자의 독립성을 연장하고 가족 돌봄의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치매는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병행하면 중증화를 지연하고 완치도 가능하다.

지난달 서울 강서구 화곡3동 치매센터의 치매예방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노인이 자신의 손바닥을 연습장 삼아 계산 문제를 풀고 있다. 류우종 기자

치매국가책임제 어떻게 활용할까

중앙치매센터는 현재 65살 이상 국민 중 약 72만명을 치매 환자로 추정하고 있다. 환자 수는 17년마다 2배씩 증가하는데, 2024년 1백만명, 2039년 2백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선진국에 견줘 4배나 빠른 고령화 탓이다. 지금도 80살 이상만 따지면 넷 중 한 사람꼴로 치매 환자다. 결혼한 부부의 양가 부모가 모두 80살이 넘는다면 그중 한 사람은 치매 환자라는 얘기다. 치매는 이제 국민 모두의 문제다. 국가가 치매를 책임져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 이미 어느 정도 치매에 대한 국가책임제가 시행 중이다. 2008년 이후 전국 어느 보건소에서나 60살 이상인 이들은 무료로 치매 검진을 받을 수 있다. 치매 진단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0%를 크게 웃도는 75% 수준에 이른다. 문제는 치료다. 치매는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효과를 만족할 만한 치료 약이 개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약물치료를 기본으로 하되, 다양한 인지훈련과 비약물치료, 유산소운동, 사회적 활동 같은 건강한 생활습관을 통해 약물의 효과를 강화하는 조처가 중요하다. 치매국가책임제 하에선 이런 관리를 국가가 돕는다.

치매국가책임제의 핵심은 전국 모든 보건소마다 설치되는 치매안심센터다. 치매 환자들은 이곳에서 맞춤형 서비스를 받게 된다. 치매 증상이 없어도 우려되는 경우 이곳에서 조기검진을 받을 수 있다. 치매가 아닌 것으로 확인된 경우에도 치매로 진행하지 않도록 다양한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조기 치료를 유도해 유병률을 낮추고 병의 진행도 늦춘다. 센터 내에 설치되는 쉼터에서 다양한 인지·신체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가족들이 머물 카페도 설치된다. 이사를 하더라도 상담·관리 내역이 ‘치매노인등록관리시스템’을 통해 공유되며, 센터가 문을 닫는 야간엔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를 통해 24시간 상담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미 치매와 싸우고 있는 이들의 부담도 줄인다. 그동안 경증 치매 환자들은 다른 신체기능이 양호하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복지부는 현재 1~5등급인 체계를 바꿔 6등급을 추가, 신체기능이 양호한 치매 환자들 모두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등급을 받으면, 신체기능 유지와 증상악화 방지를 위한 인지 활동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간호사가 가정을 방문해 복약지도나 돌봄 정보를 제공한다.

치매 환자의 가족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건 예상치 못한 환자의 이상행동증상(BPSD)이 급격하고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다. 이상행동증상은 치매에 동반되는 감정적, 정신적 증상을 의미하는데 환각이나 폭력, 망상 증상이 동반된다. 이런 중증환자 가운데 10~20%는 입원치료가 필요한데 아직까진 이런 증상이 와도 이를 해결할 전문 시설이 부족하다. 앞으로는 전국 공립요양병원(15개 시도에 79곳이 운영 중)을 중심으로 치매전문병동을 설치해 운영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돌봄이 힘들다는 이유로 요양원에서조차 꺼리는 중증 치매 환자들을 위해 치매안심형 주야간보호시설과 요양시설이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확충된다. 일반 시설보다 요양보호사가 많고, 치매 맞춤형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치매 환자와 가족의 비용 부담도 줄인다. 중증 치매 환자의 의료비 본인부담률은 20~60%에서 올해 10월부터 10%로 인하된다. 종합신경인지검사, 엠아르아이(MRI) 검사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상급종합병원 기준으로 100만원 정도였던 진단검사 비용이 40만원 이하로 준다. 중위소득 50% 이하 수급자에게만 적용되던 장기요양 본인부담금 경감 혜택도 대상을 늘려가고, 월평균 6만~10만원씩 들어가는 기저귓값도 장기요양 급여를 적용해 부담을 줄인다.

정부는 아울러 전국 350여곳 노인복지관에서도 치매 예방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인지기능이 약화된 노인, 75살 이상 독거노인 등 치매 위험에 노출된 이들이 대상이다. 66살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국가건강검진의 인지기능 검사도 5개 항목의 간이검사로 이뤄져 왔으나 15개 항목으로 늘린다. 검사 주기도 4년에서 2년으로 당기고, 치매 의심 판정을 받으면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지속적인 관리를 받게 한다. 아울러 치매가족 휴가제, 치매어르신 실종 예방사업, 치매노인 공공후견제도 등을 통해 치매 친화적 사회환경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치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새로 꾸려지는 국가치매연구개발위원회를 통해 국가치매연구개발 10개년 계획도 수립한다. 보건복지부 내에 치매정책 전담부서인 치매정책과도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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