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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니, 혀의 요람

먼지야, 먼지야. 진찰대에 누워 눈을 껌벅이는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다. 오른쪽 송곳니를 제거한 먼지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앙다문 입 사이로 핑크빛 혀가 비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수의사는 마취가 덜 풀렸다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가끔은 혀를 내민 채 돌아다니는 먼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고양이의 송곳니는 사냥만을 위한 무기가 아니며, 혀가 제 몸을 뉘는 휴식처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수의사들은 송곳니를 혀의 요람이라고도 불러요."

먼지야, 먼지야. 진찰대에 누워 눈을 껌벅이는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다. 오른쪽 송곳니를 제거한 먼지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앙다문 입 사이로 핑크빛 혀가 비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수의사는 마취가 덜 풀렸다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가끔은 혀를 내민 채 돌아다니는 먼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고양이의 송곳니는 사냥만을 위한 무기가 아니며, 혀가 제 몸을 뉘는 휴식처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수의사들은 송곳니를 혀의 요람이라고도 불러요."

송곳니 발치 수술. 부러진 이빨의 염증이 날로 심해져서 내린 선택이지만, 먼지 입장에서는 앓던 이라도 그냥 간직하고 싶었을까. 집으로 돌아온 먼지는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었다. 아픈 몸을 아무렇게나 펼쳐놓고 거친 소리를 내며 앓았다. 먼지의 혀는 송곳니 자리의 안과 밖을 드나들며 요람이 사라진 쓸쓸함을 재차 확인했다.

다음날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난 먼지는 어색한 표정으로 집을 순찰하고 다녔다. 야무지게 다문 입을 보니 마취는 완전히 풀린 듯했다. 조심스럽게 약간의 사료를 먹고는 방석에 엎어져 나를 불렀다. 천천히 쓰다듬자 먼지는 배를 드러내며 게슴츠레한 표정을 지었고... 혀를 내밀었다. 중년의 고양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온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눈엔 눈물이 고였다.

신중한 고양이에게도 겁 없던 시절이 있었으니, 어린 시절의 먼지는 가상의 적을 쫓아 제 한 몸 불사를 줄 아는 날렵한 고양이였다. 내 손은 장난감보다 흥미로운 사냥감이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내게 남긴 상처들은 작은 포식자의 공격성을 전시했고, 내가 인형 아닌 동물과 함께 살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민첩하게 덤벼드는 먼지의 모습을 볼 때면, 고양이 청춘의 목적은 오직 송곳니의 위력을 보여주는 데 있는 것만 같았다.

요정 같은 모습이 사라지고 제법 고저씨(고양이 아저씨)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자 먼지는 더 이상 나를 물지 않았다. 아까울 것 없는 시간을 줄줄 흘려보내며 전투 없는 묘생을 즐겼다. 온화한 짐승은 늘 쉼표처럼 잤다. 현대무용 추듯 기지개를 켜고, 조각처럼 창가에 앉아 산란한 풍경을 조용히 구경했다. 인간답게 넘겨짚자면, 어른이 된 먼지는 부드럽고 연약한 내면을 지키는 법을 배우기 위해 날카로운 청춘을 보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먼지에게 있어 송곳니는 포식자의 상징이 아니었다. 평화를 즐기는 혀의 요람이었다. 때때로 유순한 본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상투적인 비유에 송곳니를 등장시키는 이유는 송곳니의 본질을, 따스한 별명을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새 가을, 공상가 집사는 의미와 추억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송곳니 하나 잃은 고양이는 어제, 오늘, 내일이 없는 꿈을 꾼다. 인간이 모르는 고요로 작은 몸을 가득 채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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