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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종교'처럼 믿는 이들

맹신의 결정판 같은 방언이 터져 나온 것이다. '자신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곳에 전쟁이 났다고 젊은이들이 달려온 나라한테....' 한국전쟁이 그렇다면 베트남 전쟁 역시 베트남을 구하겠다고 미국의 젊은이들이 자원해서 뛰어든 전쟁인가? 미국 행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정치 현실 외교적 실리를 고려해 반대가 심한 청년들을 먼 정글로 보낸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도우러 왔던 은공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벌어지기 전 일제 강점과 분단을 가능케 한 미국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애치슨 라인은 왜 거론하지 않나?

  • 이여영
  • 입력 2017.07.20 08:30
  • 수정 2017.07.20 09:59

*이 글은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 소장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공개합니다.

지금 미국은 종교다. 그 앞에서는 함부로 불경스럽게 굴어선 안된다. 심지어 그런 상상도 하지 말라고 한다. 공산주의가 붕괴한 지 30년 가까이 돼 가고, 21세기 접어든 지 15년을 넘어선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다.

미국이라는 종교 앞에서는 사제마저 맹신의 대상이다. 그를 조금이라도 언짢게 해서는 안된다. 그 사제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머지않아 그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사제가 종교를 충실히 대변하는 이 인지조차 관심 밖이다.

사드를 둘러싼 논란은 이 같은 종교논쟁이 돼 버렸다. 보수 언론과 기득권 세력은 주권 국가를 자처하면서도 갑작스러운 사드 배치 합의의 배경이나 추가 배치 사실을 신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경위를 따지는 것을 불온한 언행으로 몰고 간다. 기왕에 배치된 것도 아니고,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추가 배치에 대해 정당한 법 절차를 밟겠다는 주장은 딴 꿍꿍이로 덧칠한다. 북한이 핵도발을 중단하면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축소 할 수 있다는 발상은 급기야 매국 수준의 상상력으로 비하되고 있다.

급기야 이 논쟁은 막장에 이르렀다. 맹신의 결정판 같은 방언이 터져 나온 것이다. '자신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곳에 전쟁이 났다고 젊은이들이 달려온 나라한테....' 한국전쟁이 그렇다면 베트남 전쟁 역시 베트남을 구하겠다고 미국의 젊은이들이 자원해서 뛰어든 전쟁인가? 미국 행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정치 현실 외교적 실리를 고려해 반대가 심한 청년들을 먼 정글로 보낸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도우러 왔던 은공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벌어지기 전 일제 강점과 분단을 가능케 한 미국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애치슨 라인은 왜 거론하지 않나? 이것들이야말로 외교는 현실에 기반해 자국의 실리를 극대화 하기 위한 국제 정치 활동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예들 아닌가?

사드 배치가 논란이 된 후 보수 언론과 기득권 세력은 정치 현실이나 외교 실리는 아예 제쳐두었다. 트럼프는 격노했고, 미 의회 아래 소위 위원장은 황당해 했다. 심지어 대선 후보였던 매케인이 우습게 볼 정도라는 주장만 거듭하고 있다. 미국 정치인들의 심기 살피기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양 여기고 있다.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에는 숫제 분풀이를 하듯, 새 정부의 사드 외교를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라거나 불손한 의도의 꼼수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아예 미국이라는 종교의 현 사제들을 향해 소리치는 격이다. '저 불신자들을 가만히 두어서 어쩌겠다는 것입니까?'

문정인 특보의 발언은 정치 현실의 토대 위에서 외교 실리를 극대화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북의 핵 도발과 한미 합동 군사훈련 축소를 연계한 것은 사드 문제와 핵 이슈로 파국으로 향하고 있는 북한 문제를 협상 테이블로 되돌릴 수 있는 나름의 합리적 대안이다. 게다가 문 특보는 이 모든 것을 미국과의 협의라는 전제하에 거론했다. 우리와 미국이 공통의 목표로 하고 있는 비핵화 협상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솔직히 문 특보가 이 발언을 해준 것이 정말 고맙다. 그는 미국의 정치 현실과 국제 외교 무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이다. 17년간 미국에서 정치학 교수를 했고, 국제정치학의 임원을 지냈던 이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누구라도 반미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그는 친미도, 반미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용미(用美)'다. 무조건 미국을 따르는 것도, 반대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고 믿는다. 오히려 미국이라는 세계적 패권 국가를 잘 알고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이 정도의 작은 몸짓조차 불손하다고 한다면 국제정치의 현실이나 외교적 실리를 모두 포기하자는 것이다. 그저 미국과 트럼프 행정부에 모든 것을 맡겨두자는 것이다. 미국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할 것 이란 믿음이 있는 것일까?

유사시 우리를 다시 구원할 나라인 만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지 말자는 태도도 역력하다. 북에 대화를 구걸하지 말자고도 한다. 그렇게 북과의 관계를 끊고 미국의 전략적 인내에 의탁한 지난 8년여 우리가 얻은 거은 무엇인지도 고민 해봐야 한다. 사드 추가 배치에 대해서도 미국 측과 밀약하고 이를 차질 없이 이행하는 것이 신임 행정부에 정확히 보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외교는 정치와 마찬가지로, 현실이란 제약요소하에 모색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아예 처음부터 옴짝달싹 할 여유가 우리가 낄 여지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외교나 국익은 물론 국가이기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적어도 미국이라는 종교, 트럼프 행정부라는 사제의 뒷전으로 나랏일을 제쳐두자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닉슨과 키신저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외교에 관한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시 둘은 미국의 '적의 적'과 손잡은 깜짝쇼를 통해 냉전이라는 극한 대치 상태의 활로를 뚫었다. 지금처럼 상상력이 제한된 상황이라면 둘은 그 깜짝 놀랄 만한 상상을 말로 옮겼다는 이유만으로도 중형을 살고도 보호관찰 대상으로 전락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미국이라는 종교와 트럼프라는 사제 외에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다는 이들에게는 평소 그들의 말투를 흉내 내 한마디 해주고 싶다. 당신들이 속하고 싶은 나라, 따르고 싶은 정부로 전쟁이 아니라 평화만 얘기해도 종북 세력 이라며 북으로 떠나라던 당신들이 아니던가?

이여영 yiyoy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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