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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3 여학생은 그때 정말 '쿨'했을까

그저 쿨했다고 표현되어지는 그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의 이야기가 나오니, 갑자기 눈이, 가슴이, 몸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술집 여자가 되어 나타난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였던 친구의 얼굴과, 성폭행을 당한 뒤에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어울려 다니면서 행위 중에 오빠 너무 좋다고 이야기하던 빨간 스카프를 두른 여자아이와, 나오지 않으면 죽여버린다는 협박에 부를 때마다 번번이 나갔다고 하던, 그때마다 함께 나오는 남자 아이들의 인원이 늘어났다던 밀양 성폭행 사건의 여중생과, 얼마 전 있었던 예산 여고생 집단 강간 사건의 여자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 한승혜
  • 입력 2017.06.22 13:39
  • 수정 2017.06.22 14:06
ⓒjhorrocks via Getty Images

아무도 없는 방과 후 학교에서 화장실에 갇힌 채로 오빠들에게 맞았다고 했다.

1.

초등학교 6학년 때 제법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집이 가까웠고 주로 우리집에서 놀곤 했다. 옥상에서 내가 썼던 글이나 시조반에서 쓴 시조(;;;) 같은 걸 보여주기도 하며, 같이 소설도 쓰고, 드라마 얘기도 하고 뭐 그랬었던 것 같다. 잘은 기억 안 나는데, 그런 드라마나 소설 같은 이야기 와중에도 간간이 아빠가 싫고, 엄마도 집에 거의 안 계시고, 할머니가 엄마 괴롭히고, 집에 가기 싫고, 그래서 우리 집에 놀러오는 게 좋다고 뭐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도 같다.

졸업하고서는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음에도 반이 달라져 자주 같이 놀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머리도 깻잎 모양으로 하고, 치마는 어설프게 집에서 꿰맨 티가 나게 줄여서 입고. 주변에 어울리는 아이들도 달라졌다. 소위 말하는 날라리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오다가다 마주치면 어색하게 '안녕-' 하고 말게 되었지만.

그런데 그 애는 날라리 아이들 사이에서도 잘나가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다른 아이들의 심부름을 하는 걸 자주 보았다. 가끔씩은 한 학년 위(중2)의 오빠들과도 몰려다니는 걸 보기도. 학년이 바뀌고 어느 날인가는 갑자기 학교를 관두었다고 들었다. 아무도 없는 방과 후 학교에서 화장실에 갇힌 채로 오빠들에게 맞았다고 했다. 단순하게 헐, 남자들한테 맞았으면 아팠겠다, 하고 넘기고 말았지만 사실은 사이가 소원해진 지 오래되어, 또 나랑은 안 맞는 날라리라고 생각하여,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맞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당시에는 잘 몰랐고.

어느 추운 겨울날에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 애가 정류장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허리까지 치렁치렁한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하고, 어른처럼 아주 두꺼운 화장을 하고, 뾰족구두에 아래 위 검은색 정장 투피스를 입은 모습이었다. 술집 다닌다더니 진짠가 보네라는 생각을 하고만 지나갔다. 조금은 경멸했던 것도 같다. 그러게 왜 이상한 애들이랑 어울려 가지고선. 눈이 마주쳤던가 아니던가. 내가 16살 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 애도 16살.

당시 비디오 속 여자아이가 목에 빨간색 스카프만 매고 있어서 빨간 마후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2.

한편으로는 내가 중학생 때 '빨간 마후라'라는 비디오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두 살 위의 오빠 셋과 성관계를 하였는데 남자애 셋 중 한 명이 그걸 비디오로 촬영한 뒤 학교 아이들과 돌려보고, 그게 복사되고 복사되어, 어느새 전국으로 일파만파 퍼졌던 사건이다.

당시 비디오 속 여자아이가 알몸에 목에 빨간색 스카프만 매고 있어서 빨간 마후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아이들답지 않은 대담한 체위와 행위 중간 중간 내뱉는 '오빠 너무 좋아' 뭐 이런 류의 대사로 유명해졌다. 그 비디오를 암암리에 구하기 위해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청계천 골목을 누비고 다니느라 난리였다던데.

당시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게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나랑 비슷한 나이의 아이가 어떻게 저런 걸 했을까? 완전 발랑 까졌네. 미쳤네. 걸레구만. 바보 아냐?라는 생각들을 했었다. 그 여자아이가 동영상 촬영 전에 그 '오빠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그러고서도 '오빠들'이랑 계속 어울려 다녔고, 나중에는 비디오로 인해 전학을 여러 차례 다녔고, 커서는 성매매 업소의 여성이 되었다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그저 쿨했다고 표현되어지는 그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의 이야기가 나오니, 갑자기 눈이, 가슴이, 몸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3.

탁현민의 또 다른 책이 이슈가 되면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첫 성경험을 친구들이 이미 거쳐갔던 한 살 아래의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을 통해서 했는데, 그 여자아이는 그런 면에 아주 '쿨해서' 자기 친구들뿐만 아니라 자기에게도 순순히 경험을 하게 해주었고, 심지어 그 여자아이가 아주 능숙하고 적극적이어서 좋았다고. 하지만 그 여자아이를 좋아한 건 아니었기에 별로 미안하지도 않고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고.

그 대목을 읽는 순간 이유는 모르겠으나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콘돔은 진정성이 없다고, 룸살롱 여자는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여자들은 자기를 가꿔야 한다고, 임신한 여자 선생님이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었다고, 온갖 발언들을 봐도 그냥 넘길 수 있었는데, 그래 일만 잘하면 됐지 뭐, 하고 말았는데 (물론 아주 아주 화는 났지만) 그저 쿨했다고 표현되어지는 그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의 이야기가 나오니, 갑자기 눈이, 가슴이, 몸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술집 여자가 되어 나타난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였던 친구의 얼굴과, 성폭행을 당한 뒤에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어울려 다니면서 행위 중에 오빠 너무 좋다고 이야기하던 빨간 스카프를 두른 여자아이와, 나오지 않으면 죽여버린다는 협박에 부를 때마다 번번이 나갔다고 하던, 그때마다 함께 나오는 남자 아이들의 인원이 늘어났다던 밀양 성폭행 사건의 여중생과, 얼마 전 있었던 예산 여고생 집단 강간 사건의 여자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난하고, 외롭고, 사회와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날라리라는 이름으로 또래에게서도 경원시 되고,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며 섹스를 하고, 때로 남자아이들이 시키는 다른 남자들과도 섹스를 하며, 그걸로 자기가 어디선가 필요시된다는 실날 같은 만족감을 얻고, 가끔씩은 폭행을 당하기도 하다가, 그럼에도 스스로는 벗어나지 못하며, 어느 순간에는 버려지고 마는. 육체와 정신이 착취되는 아이들. 어른들이 바라볼 땐 발랑 까진 아이들. 남자아이들이 볼 땐 '쿨하게' '개방적인' '열려있는' 아이들. 그 여자아이들은, '쿨하다'고 말해지는 그 순간에 정말 쿨했을까. 그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악의가 없다는 미명 아래 너무나 쉽게 스포츠처럼 자행되고 마는, 남자들 사이의 흔한 허풍쯤으로 묘사되고 마는 그런 행동들을 그저 덮고 지나갈 수만도 없다고 생각한다.

4.

탁현민을 쓰레기, 인간말종, 강간범 등으로 묘사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탁현민이 첫경험의 상대였던 여자아이를 친구들과 윤간을 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 글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구라여서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사실은, 탁현민 따위는 절대 청와대 행정관을 해서도 안되며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버려야 한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이 너무나 싫은 것과는 별개로 사람들의 행동은 사회의 인식을 따라가기 마련이고, 또래집단마다 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규율과 범주가 다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탁현민 역시, 어쩌면, 그래, 어쩌면 그냥 무심결에, 그저 어른들 몰래 골목길에 숨어 담배 피우듯이, 그러한 첫경험을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아니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알고도 그랬다면 진짜 나쁜 놈에 범죄자이고. 근데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악의가 없었다고 하여, 어린 시절의 일이라 하여, 그에 대해 과거에 쓴 글이라 하여,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하여, 일을 잘한다고 하여, 그의 청와대 내 직책이 정말 말단에 불과하다고 하여, 비록 악의는 없었을망정, 악의가 없다는 미명 아래 너무나 쉽게 스포츠처럼 자행되고 마는,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아도 남자들 사이의 흔한 허풍쯤으로 묘사되고 마는 그런 행동들을 그저 덮고 지나갈 수만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별생각 없이 넘겨왔던 어떤 행동들이 실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 엄청 문제라는 것을.

5.

이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그 누구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나 자신도 온전히 자유롭지 않다. 무엇이 여성혐오이냐 아니냐 이런 것도 실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그리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고 사람은 항상 변화하는 존재이기에 과거의 어떤 행동을 가지고 한 사람을 여혐종자로 낙인 찍거나 밥줄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하고.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탁현민이 행정관이 되고 아니고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아,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만 생각하고 말았던 사건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주는 것이다. 이제껏 별생각 없이 넘겨왔던 어떤 행동들이 실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 엄청 문제라는 것을. 그래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이전까지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앞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교훈이 생기는 것을.

탁현민의 책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을 여성혐오 종자라고 매도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탁현민의 청와대 입성을 결사 저지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정권에 태클을 걸기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털어 문책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학창시절에 혹시라도 저런 경험이 있었을 사람들을 강간범이라 비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그냥 '쿨' 한 줄로만 알고 넘어갔었던 우리 주변의 여학생들에 대해,그걸 '쿨하다'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소비거리로 삼는 것에 대해, 어린시절 치기 어린 경험담으로 쓰는 행위에 대해, 그냥 술자리 잡담처럼 쓴 건데 뭐 어떠냐는 것에 대해, 그 정도 허풍은 많이들 떤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씩만 생각해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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