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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X 합의에 한국이 없다

우드로 윌슨 센터의 국제안보연구소장 로버트 리트웍은 2월에 낸 『북한 핵 돌파 방지』라는 소책자에서 트럼프 정부가 핵과 체제 교체(regime change)를 분리해 핵탄두를 20개의 현 수준에서 동결한 뒤 강압적 관여(coercive engagement)로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까지 가는 정책을 채택할 것으로 전망한다. 강압적 관여란 힘으로 압박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이다. 이 방안이면 북한은 핵탄두 20개의 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어 좋고, 중국은 한반도 전쟁과 북한 정권 붕괴를 막을 수 있어 좋고, 미국은 핵탄두 소형화와 미국을 타격할 ICBM 개발을 막을 수 있어 좋다. 한국은 전쟁이 안 나서 좋은 정도다.

ⓒJIM WATSON via Getty Images

미 해군의 칼빈슨 항모전단이 왔다. 항모 자체에만 전투기 60대와 하늘의 전투사령부 역할을 하는 E2C 조기경보기도 탑재됐다. 항모 전단을 구성하는 이지스급 순양함과 구축함에는 사정거리 500㎞의 SM-3 요격미사일이 실렸다. 가장 무서운 무장은 구축함의 토마호크 미사일이다. 2003년 이라크전쟁 때 초기에 전세를 결정지은 그 토마호크다. 핵잠수함 미시간도 토마호크 154발을 싣고 부산항에 들어왔다.

미 공군은 괌 기지에 F-22, F-35B, B-1B 같은 최신예 전투기들을 두어 2~3시간 안에 한반도에 전개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일본의 미군기지에 배치된 전투기와 전폭기들은 발진하면 바로 북한 상공에 이른다.

미국의 이런 고강도 군사적 압박 때문에 김정은은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에도, 인민군 건군 85주년인 25일에도 미국의 전문가들이 예고한 6차 핵실험을 할 수가 없었다. 북한의 '독종'이 미국의 '독종'을 만나 잠시 꼬리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군사적 압박이라는 미시적인 현상만 보고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공격한다 안 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 안 난다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칼빈슨·미시간·토마호크·SM-3 못지않게 김정은의 도발적 행동을 억제한 것은 'TX 빅딜'에 따른 중국의 전례 없이 강력한 대북 견제다. 타고난 승부사 T는 북·중 이간책에 성공했다.

중국의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연일 대북 경고를 쏟아낸다. 북한에 가장 무서운 경고는 중국이 미국의 대북 선제 타격에 반대하지 않는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중국은 대북 석유 공급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자. 중국이 미국의 대북 선제 공격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액면대로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그 말은 강도 높은 경고의 레토릭(修辭)이다. 선제 타격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보복 공격을 부르고 보복 공격은 한반도의 전면전쟁을 의미한다. 결코 중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4월 6~7일 TX의 플로리다 정상회담과 24일의 통화에서 합의한 것은 다음 세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1)미국은 전면전으로 이어질 선제 공격을 하지 않는다, (2) 중국은 석유 공급 중단을 포함한 대북 압박으로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탄(ICBM)으로 가는 미사일 발사 시험을 저지한다, (3)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들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강행한다.

TX 합의가 여기서 그쳤을 리 없다. 두 사람은 일단 북한의 6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이라는 급한 불을 꺼 놓고 핵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았을 것이다. 그들 앞에는 두 개의 옵션이 놓여 있다. 2017년 현재 추정되는 북한 핵탄두 20개 정도를 동결하고 외교적 해결을 모색할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의 임기 중인 2020년까지 북한이 100~200개의 핵탄두를 갖는 걸 방치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난폭하고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라도 선제 타격의 옵션은 테이블에서 내린 것 같다. TX는 미국은 중국의 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할 환율조작국 지정을 하지 않고, 중국은 그 대신 김정은 견제에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빅딜을 한 것이다. X는 중국이 원하지 않는 한반도 전쟁을 방지하는 중요한 성과를 올렸다.

우드로 윌슨 센터의 국제안보연구소장 로버트 리트웍은 2월에 낸 『북한 핵 돌파 방지』라는 소책자에서 트럼프 정부가 핵과 체제 교체(regime change)를 분리해 핵탄두를 20개의 현 수준에서 동결한 뒤 강압적 관여(coercive engagement)로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까지 가는 정책을 채택할 것으로 전망한다. 강압적 관여란 힘으로 압박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이다. 이 방안이면 북한은 핵탄두 20개의 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어 좋고, 중국은 한반도 전쟁과 북한 정권 붕괴를 막을 수 있어 좋고, 미국은 핵탄두 소형화와 미국을 타격할 ICBM 개발을 막을 수 있어 좋다. 한국은 전쟁이 안 나서 좋은 정도다. 27일 미 국무·국방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이 낸 "최고의 압박과 관여" 선언도 결국은 동결→힘을 앞세운 협상으로 미국 본토를 북핵 위협에서 보호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이 정책에 한국은 없다.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한국 왕따)이라는 심각한 사태다. 문제는 왕년의 네오콘 보수·강경론자를 제외한 많은 전문가도 전쟁을 하지 않는 한 이것이 유일한 현실적 해결책이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TX가 북핵 문제 해결에 노심초사하는 건 고맙지만 한국 왕따는 결단코 안 된다. 대선후보들은 이런 사정엔 깜깜한 채 구호 수준의 유치한 안보 구상만 남발하니 참으로 걱정된다. 차기 대통령은 제발 TX 방식에 반영시킬 한국 전략을 철저하고 정교하게 준비하라고 국민의 이름으로 촉구한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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