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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년 전에도 성추행범의 혀를 깨문 여자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 강병진
  • 입력 2017.04.21 14:01
  • 수정 2017.04.21 14:09

4월 20일, 강제로 입맞춤을 시도한 남성의 혀를 깨물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50대 여성 A씨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사실이 보도됐다. 혀를 깨물린 남성은 혀 앞부분의 6㎝가량이 절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재판에서 “얼굴을 때린 후 멱살을 잡고 강제로 키스하려 했다. 혀를 깨문 건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은 전원 유죄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입은 상해의 정도가 중하고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사건이 약 30년 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당시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는 원미경이었고, 혀가 잘린 성추행범을 연기한 배우는 김민종이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는 이후, ‘약속’(1998)과 ‘와일드 카드’(2003), ‘신기전’(2008)등을 만든 김유진 감독이었다.

과연 30년 전에는 그녀에게 어떤 판결이 내려졌을까?

김형민 SBS CNBC 프로듀서가 지난 2016년 ‘시사인’에 기고한 칼럼에는 이 실제 사건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그때는 1988년이었다. 32살의 주부 변월수씨가 두 남자에 의해 골목길로 끌려갔다. 두 남자는 성추행을 시도했고, 변씨는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한 남자의 혀를 깨물었다. 그런데 이 일로 혀를 잘린 성폭력 가해자의 가족들이 이 주부에게 배상금을 요구했던 것. 이에 변씨는 남자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재판에서 공방이 이어진 결과, 1988년 9월 21일, 법원은 변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당시 한겨레가 보도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을 통해 ‘범행장소가 상가가 밀집돼 있고, 범인이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변 피고인이 당황하거나, 공포에 떨어 혀를 깨물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과잉방어를 인정하고 이같이 판시했다.”

이때 강제추행 치상혐의로 구속된 가해자 2명은 각가 2년 6개월과 3년형이 선고됐다.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변씨의 남편은 항소했고, 1989년 1월 21일 대구고등법원은 원심을 깨고 정당방위를 인정,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재판부의 결정은 아래와 같았다.

“한밤중 골목길에서 건장한 젊은이들이 달려들어 양팔을 붙들고 강제로 키스를 하며 속옷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강간하려는 위기에서 혀를 물어뜯은 것은 성적 순결과 신체안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무죄판결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변월수 씨는 “재판정에서 사건 당시에 내가 술을 마셨다는 부분을 계속 추궁하면서 ‘강간당해 마땅한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 검사와 가해자쪽 변호사들의 태도가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이 사건아 여성 인권회복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7개월 후, 검찰의 상고로 인해 대법원에 가서야 변월수씨의 무죄가 확정되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있는 대구고등법원의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있다.

“피고인 1이 당시 술을 먹었다거나 식당을 경영한다거나 밤 늦게 혼자 다녔다거나 하는 등의 사정이 정당방위의 성립을 저해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김형민 SBS CNBC 프로듀서는 시사인 칼럼에서 "여자가 술을 먹고 밤늦게 다닌다는 것이 성폭행의 빌미가 되어서도 안 되거니와, 성폭행범에 대한 응징의 정당성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판결은 그제야 대한민국의 판례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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