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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은 어떻게 영화를 찍었을까?

전통과 근대의 갈림길에 선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첨예하게 다룬 영화 '미망인'

  • 강병진
  • 입력 2017.04.10 12:42
  • 수정 2021.03.07 19:29

1955년 영화 ‘미망인’을 연출해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남긴 박남옥 선생이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여성영화인모임은 4월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그녀가 지난 4월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1923년 경북 하양에서 태어난 박남옥 선생은 이화여전 가정과에 입학해 문학과 영화등에 심취했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그녀는 당시 결혼을 강요하는 집안에 맞서 학교를 중퇴한 후 대구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이후 친구의 남편이었던 윤용규 감독의 소개로 조선영화사 촬영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일을 시작했다. 국방부 촬영부 소속으로 종군영화를 만들었는가 하면 여러 영화의 편집과 스크립터를 맡기도 했다.

종군영화를 만들면서 만난 극작가 이보라와 결혼한 후, 박남옥은 1954년 6월 첫딸을 출산했다. 그녀의 첫 연출작인 ‘미망인’은 출산 후 몸을 추스리지도 못한 채,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다니며 직접 스태프들에게 밥을 해먹여가며 만든 영화였다. 제작비는 언니에게 빌렸는데, 그래서 이 영화의 크레딧에 적힌 제작사 이름은 ‘자매프로덕션’이 되었다.

‘미망인’은 제목 그대로 전후 미망인들의 현실적인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변재란 순천향대 영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여성영화인사전’에서 ‘미망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당시 사회적 문제로까지 제기 되던 전쟁과부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 영화는 전통과 근대의 갈림길에 선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첨예하게 다루고 있었다. 주인공 ‘신’이 여성으로서의 욕망과 딸에 대한 모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라든지 혹은 남편 친구로부터 경제적 도움은 받지만 그와의 관계에서 비굴하거나 사소한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 점이라든지 하는 것은 주인공 신을 근대적 여성주체로서 자리매김하게 한다.”

‘미망인’은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박남옥은 지난해 11월,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1960년 제7회 동경 아시아영화제 당시 촬영된 사진 때문이었다. 일본의 영화배우 미후네 도시로가 박남옥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상황이다.

이 사진은 2015년 6월, 영화평론가 김종원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기고한 박남옥 감독에 관한 글에서도 볼 수 있다. 김종원 평론가는 실제 그녀가 “소주 2~3병은 눈 깜짝할 새에 마시는 주량과 ‘골초’라는 말을 들을 만큼 대단한 애연가였다”고 적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운동신경 덕분에 투포환 선수로서도 기록을 남긴 바 있다고 덧붙였다.

“경북여고 재학 중일때 단거리 달리기와 높이뛰기 선수로 뽑혀 경기에 나가 입상했고, 1939년 제2회부터 41년까지 투포환 선수로 조선신궁봉찬체육대회에 참가해 3년 연속 우승, 한국최고기록을 보유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여성영화인모임은 2001년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임순례 감독)을 통해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의 영화 인생을 조명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박남옥 감독은 “'미망인'을 찍을 때 죽을 만큼 고생했지만 눈물이 나도록 그 당시가 그립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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