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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쟁점으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

첫번째로 논의해야 할 것이 생산체제의 변화와 그에 따른 기술실업 문제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전통적인 복지국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단순한 일자리를 대체하겠지만, 고급 일자리는 많이 만들어진다"고 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에 대해서는 실업인구 재교육과 평생교육 등 사회안전망 강화로 대응하는 방안을 말했다. 이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기본소득론 진영의 현실인식과 다른 점이 많다.

  • 이일영
  • 입력 2017.02.09 11:24
  • 수정 2018.02.10 14:12
ⓒGettyimage/이매진스

'4차 산업혁명'이 대선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2월 1일 4차 산업혁명 선도전략을 공개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의 전략에 대해 '박정희식 패러다임'이라 비판하면서 "4차 산업혁명은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대선주자들도 앞으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정책을 계속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단 문재인 전 대표가 발표한 전략을 통해 그간 한국에서 나온 4차 산업혁명 담론의 대강의 골격을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몇가지 주요 정책 논점을 점검해보자.

'4차 산업혁명', 기술발전이 전부가 아니다

우선,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과 데이터기술이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되면서 경제와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고, "신성장을 이루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과제로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할 국가 컨트롤타워, 초중등 소프트웨어교사 양성, 사물인터넷망, 스마트고속도로, 전기자동차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기술혁명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전형적 패턴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안철수 의원의 '박정희식 패러다임' 비판에 대해서는 "관치경제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는 인프라망을 구축하자는 것"이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인프라망을 다시 강조한 것 역시 기술적 영역을 본질적인 요소로 여기고 있음을 다시 확인해준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 방식은 매우 낯익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4차 산업혁명 담론에서는, 과학기술 영역이 독자적인 발전의 논리를 지니고 있고 이러한 발전이 과학기술 영역 외부의 사회적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고틀이 일반적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을 확산시킨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인공지능, 머신러닝, 로봇, 사물인터넷, 3D프린팅, 바이오기술 등의 발전에 기반한 기술혁명을 언급했다. 이 담론의 전도사라 할 수 있는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 교수는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 등 3개 분야 융합 신기술이 주도하는 경제·사회체제 변화를 4차 산업혁명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 담론은 전형적인 기술결정론의 틀에 입각해 있다. 이는 경제발전이 선형적 또는 단계론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명·개발을 독립변수로 여기고, 전문가와 경영자의 활동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반면 과학기술을 사용하고 혁신활동에 개입하는 다양한 참여자는 잔여적 위치에 놓는다. 2000년대 초 정보화혁명 담론이 유행할 때도, 전문가들과 기업가들은 디지털사회의 완성과 제조업의 종말을 예언한 바 있다. 예언자들은 종종 사회 밖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예언은, 베버가 말한 카리스마 권위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사회변동이 기술이라는 단일한 요소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역사와 경제에서는 다양한 환경요소에 의해 형성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 존재하고, 기술 요소가 단일한 영향력으로 사회변동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과학기술과 사회변동 사이에는 정치, 법·규칙, 제도·조직, 민주주의, 관료제, 생태계 등 여러 요소가 개입될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야 한다"거나 "과학기술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고 말하는 것은 실현되기 어려운 약속이 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은 거대한 사회적·제도적 전환의 과제를 발생시킨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과 사회의 사회작용 속에서 진행되는 일대 사회혁명이다. 이는 기존의 생산체제는 물론 국가 및 법 체계가 변화하는 과정이다. 국가와 시민사회는 기술변화와 제도변화가 사회구성원들에게 바람직하거나 또는 사회를 유지·재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루어지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첫번째로 논의해야 할 것이 생산체제의 변화와 그에 따른 기술실업 문제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전통적인 복지국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단순한 일자리를 대체하겠지만, 고급 일자리는 많이 만들어진다"고 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에 대해서는 실업인구 재교육과 평생교육 등 사회안전망 강화로 대응하는 방안을 말했다. 이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기본소득론 진영의 현실인식과 다른 점이 많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제 대량생산·대량소비시대의 전통적인 일자리는 사라져간다고 본다. 물론 현실정치인으로서 4차 산업혁명의 기술폭발론과 복지국가 무용론을 당장 전면 수용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사회안전망과 함께, 실업자, 비정규직, 자영업자가 혼재하는 노동시장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의 거버넌스에 관한 문제가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와 관련이 깊다. 4차 산업혁명을 구성하는 핵심 키워드로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되면 4차 산업혁명에는 그것을 추진하고 육성할 거버넌스가 필요하게 된다. 문재인 전 대표가 제시한 전략에 의하면, 대통령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책 총괄 국가 컨트롤타워 등이 산업정책의 추진 주체가 된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특정한 기술이나 산업에서 찾는 대신 연결·융합·네트워크·플랫폼 등과 같은 키워드에서 찾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안철수 의원이 지적한 민간주도론 역시 불완전한 것이 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과정인 '연결'을 국가가 주도하는 것도 문제지만, 시장에 방임해 특정 기업이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도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거버넌스의 독점은 네트워크의 집중과 다수 시민의 고용·소득·생활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플랫폼기업, 플랫폼정부를 만들어갈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사회적·제도적 전환의 비전을 만들어가는 계기로

셋째,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하는 법체계를 형성하는 문제다. 1차 산업혁명으로 지칭되는 영국 산업혁명은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시민혁명 과정과 겹쳐 진행되었다. 2차 산업혁명에서 성립된 대량생산체제는 수정자본주의의 재산권 체계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역시 새로운 부가 대량으로 창출되면서 생산 및 소비 체제가 변경되는 과정이다. 이때 새롭게 형성되는 부에 대한 재산권을 새롭게 규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제도경제학에서 말하는 바는, 재산권이 완전하면 권리보호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재산권이 불완전하면 개인은 기존 재산권 유지 및 새로운 재산권 설립 시도를 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기존의 재산권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 누군가는 다른 개인의 재산을 훔치거나 공공영역의 재산을 사유화하는 일이 일어난다. 기존의 규칙을 잘못 변경하면,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적재산 또는 공공재산의 약탈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산업혁명은 이른바 '무주공산'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시기다. 이때 경제주체들이 협력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새로운 협약을 통해 새로운 부를 분할하는 법과 규칙을 만들어내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자멸적 붕괴로 대선이 앞당겨져서 국가비전에 대한 토론과 정책경쟁이 실종될까 걱정스러웠던 터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은 단순히 과학기술 또는 비즈니스 차원의 문제에 국한되는 이슈가 아니다. 이는 거대한 사회적 전환과 관련된 논쟁이 필요한 문제다. 이러한 점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정책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향후 더 심화된 연구와 논쟁을 통하여 수정·보완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대선과정을 통해 사회적·제도적 전환의 비전과 개혁방향에 관한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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