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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과 예술, 그리고 아방가르드

한국 사회는 외설적인(?) 예술을 규제해왔다. 멀리는 1950년대 정비석의 〈자유부인〉에서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 염재만의 〈반노〉, 가까이는 장정일의 〈아담이 눈들 때〉와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외설적인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고발 내지는 사법적 처벌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외설적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예술을 탄압하는 것은 예술과 사회의 경계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예술은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서는 안되며,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불온한 것은 예술에서도 표현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주류 예술관이다.

  • 최범
  • 입력 2017.02.03 06:58
  • 수정 2018.02.04 14:12

〈자유부인〉 (정비석 지음, 정음사, 1954년)

한국 사회는 외설적인(?) 예술을 규제해왔다. 멀리는 1950년대 정비석의 〈자유부인〉에서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 염재만의 〈반노〉, 가까이는 장정일의 〈아담이 눈들 때〉와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외설적인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고발 내지는 사법적 처벌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외설적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예술을 탄압하는 것은 예술과 사회의 경계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예술은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서는 안되며,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불온한 것은 예술에서도 표현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주류 예술관이다.

정반대로는 예술과 사회를 완전히 분리하는 태도가 있다. 이는 예술은 세속적 현실과는 전혀 다른 일종의 초월적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여기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반칙과 일탈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서구의 낭만주의와 예술 지상주의적 태도가 그렇다. 다만 이 경우에는 예술과 사회 사이에 날카로운 경계선이 그어져 있기 때문에 사회가 예술을 간섭해서도 않되지만, 반대로 예술도 사회적 현실에 개입하면 안된다. 이런 예술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불온하지만, 그것은 안전하게 격리된 영역 안에서의 불온이기 때문에, 실제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아방가르드는 위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불만에서 나왔다. 아방가르드는 예술이 사회의 간섭을 받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예술과 현실의 분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방가르드는 오히려 예술과 현실이 적극적으로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들이 생각하는 예술과 현실의 일치는 현실에 예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현실을 맞추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방가르드는 현실 같은 예술이 아니라, 예술 같은 현실을 꿈꾼다. 현실 같은 꿈이 아니라 꿈 같은 현실! 초현실주의의 목표가 그것이었다. 이것이 아방가르드가 꿈꾸는 혁명이었다.

과연 아방가르는 성공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아방가르드의 꿈 역시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실제로는 예술로 금 그어진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아방가르드는 현실의 영역으로 나오는 순간 탄압 받게 된다. 물론 서구의 경우 아방가르드에 대한 탄압은 정치적이기보다는 주로 경제적이었다. 아니 서구 부르주아지는 아방가르드를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대신에 경제적으로 굶어죽도록 만들거나 아니면 거꾸로 수용해버리는 방식으로 무력화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아방가르드의 딜레마'이다. 죽거나 또는 무력해지거나.

오늘날 예술은 현실에 순응할 수도, 순수하게 격리된 영역 안에서의 고독한 유희를 즐길 수도, 그렇다고 해서 아방가르드의 관념적 급진성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것들은 모두 진정성을 가진 예술의 진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술에게 남겨진 유일한 가능성은 현실 순응도, 고독한 순수 유희도, 철없는 아방가르드적 충동도 아닌, 바로 예술과 사회 사이에 그어진 경계, 바로 그것에 대한 사유와 탐색, 그리고 메타인식이다.

오늘날 예술은 그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면서 도발하고 교란하고 실험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그 경계 이쪽이나 저쪽에 투항하거나, 또는 그 경계를 관념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어리석거나 순진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계 위에 서지 않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에게 안정된 세계란 불가능하다. 예술은 세계의 흔들림 속에서 세계와 함께 흔들리면서 추는 춤이다. 이것만이 오늘날 예술에게 허용된 유일한 태도이자 아방가르드의 정신을 역설적으로 전유하는 길인 것이다. 외설과 예술은 그 수많은 흔들림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 어느 한 쪽으로 떨어지는 예술에게 화 있을진저!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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