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얼굴이 명함인 셈.
“되게 시끄럽다고 하더라”며 아쉬워한 장윤정
하루 7명꼴로 산업재해 사망자가 나온다.
문제는 한국의 민족 형성이, 특권 계급의 해체가 아니라 이른바 '전 국민 양반되기'라는 형태의 신분 상승 욕구로 뒷받침된 것에 있다. 이점이 한국의 민족주의를 서유럽의 민족주의와 구별되게 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전통 신분사회가 식민지가 되면서 붕괴하는 과정에서 배태된 이른바 피해자 민족주의로서 서유럽 민족주의에서 볼 수 있는 공화주의적인 가치를 갖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오로지 핏줄에만 매달리는 배타적 민족주의이며, 물질적인 욕구와 신분상승의 차원에서만 평등한 민족주의이다.
멀리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구한말,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민중을 지켜주지 못했으며, 평소에 큰소리치던 지배층은 전쟁이 일어나면 먼저 도망을 갔다. 그래서 관군은 달아나고 백성이 맨몸으로 자신을 지켜내어야 했던 의병은 자랑스럽기는커녕 부끄러워 해야 할 역사인 것이다. 서양의 귀족계급은 호전적인 기사집단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들은 비록 무식했지만 집단을 지배하는 대신에 보호했다. 일본의 사무라이들도 민중을 지배하면서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 소녀상은 일종의 토템이다. 그것은 우리가 제국주의 지배자들에게 팔아버린 소녀들이며, 그 소녀들에 대한 죄책감을 씻기 위해 세운 우상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우상에 대한 어떠한 의심이나 문제 제기도 터부시된다.
나는 식민지 주체성이 제국에의 참여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반제 민족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제국으로부터의 분리와 '우리끼리'의 논리는 주체적이기는커녕, 우리를 특수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것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북한이 바로 그렇다. 물론 제국에의 참여는 곧바로 사대주의, 매판, 민족 반역자, 친일파, 친미파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하지만 제국에의 투항이나 협력과 주체적 참여는 구분되어야 한다.
나는 학교 조회든 군대 제식이든 대통령 취임식이든 간에 한국 사회에서 목도하는 각종 의례들에서, 그런 연극성이 보여주는 희극성보다는 오히려 학예회 수준의 유치함, 엉성한 형식, 제대로 된 권위와 엄숙함의 부재 같은 것이 더 우습게 여겨진다. 나는 인간 세상의 연극성이 갖는 부조리함보다는 제대로 된 연극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무능력이 더 불만스럽다. 어차피 인생은 연극이고 세상은 무대인데.
전철 출입문 기둥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일어난다. 옆에 앉았던 사람이 잽싸게 그 자리로 옮긴다. 심지어 좌석열 이쪽 저쪽에서도 조금만 널찍하고 편해보이는 자리가 눈에 띄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자리를 옮긴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전철 속에서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는 것일까. 조금이라도 좋아보이는 것이 있으면 체면이고 염치고 차릴 필요 없이 즉각 행동에 옮기는 것이 한국인들의 윤리강령인 것일까.
우리는 나라를 지킨 의병과 그들의 국난극복 의지를 높이 칭송하지만, 사실 의병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고자 한 것이었으며,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나라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지킬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운명은 비참한 것일지언정 영광스러운 것이 될 수 없다. 의병은 국가와 국방의 실패를 의미할 뿐이다.
나는 이 영화를 근대적 주체에 관한 텍스트로 받아들인다. 근대적 주체들도 다양한 삶을 경험하며 불행하거나 또는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그들이 하지 않은 행위로 인해 구속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그들이 한 행위로 인해서만 불행하거나 행복해진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근대적 주체의 요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서사가 아니라 주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영화를 가리켜 사이코, 변태 영화라고 말한다. 서사를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코, 변태들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야말로 집단주의적 주체인 한국인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기 힘든 영화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순장을 대체한 부장이나 전장 약탈을 대신한 훈장과 달리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의 지배적인 제도를 전쟁의 상황에 되먹임하여 적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찰의 핵심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일반화된 문제(여성 착취)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오로지 일본의 야만적인 행위로 비난하는 방식 이외에, 자신의 현재적 모순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사태의 원인도 근본적으로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아방가르드는 현실과 예술의 분리라는 질서를 뒤흔들고자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러한 기획은 미술관이라는 금 그어진 공간 안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다. 아방가르드가 미술관 바깥을 나가면 그것은 폭동 아니면 혁명이 된다. 최소한 교통위반이라도 걸리게 된다. 반대로 아방가르드가 미술관에 갇히면 그것은 얌전하게 길들여진 짐승이 된다. 그것은 전복의 이빨이 빠진 채 던져주는 먹이를 삼키며 살아가는 동물원 동물 신세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강력한 언어를 내보이더라도 미술관 미술에서 좀처럼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동물원 동물에게서 야성의 매력을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먼저 도심 한가운데에 이런 쓰레기를 투척할 수 있는 작가의 배포 또는 만용(?)에 경의를 표한다. 시민들이 이것을 쓰레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굳이 이 작업을 대단한 현대미술로 찬양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이 작품은 비엔날레나 미술관에 출품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공공장소에 전시된 것이기 때문에 공공미술이다. 그리고 공공미술의 주인은 시민이다. 시민이 싫다고 하면 철거하는 것이 맞다. 이것을 님비(NIMBY)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에 대해 변호를 좀 하고 싶다. 그것은 이 작품이 여느 평범한 흉물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괴물이라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되고 서구 근대문명을 동아시아 문어로 번역함으로써, 동아시아 근대문명의 저작권을 선취한 일본이 동아시아 근대성의 기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확실히 '일본 표준(Japanese Standard)'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결국 일본 표준에의 거리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근대 갈등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먼저 근대화된 일본이 제국주의가 되어 다른 지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대만, 조선, 중국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 확실히 동아시아 근대 갈등의 주된 장면을 연출한 것은 일본의 침략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의 영향, 즉 '일본 표준'을 어떻게 수용하고 내재화하는가의 차이가 갈등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한국인의 기본적인 도덕성이 바로 이러한 '약한 악'의 차원에 있다고 보는데, 정말 놀라운 점은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약함'을 '선함'과 일치시켜 왔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몽골, 일본과 미국 제국주의를 '강한 악'으로 설정하고, 자신들을 '약한 선'으로 치환한 것이야말로 한국인들의 가장 창조적인 업적이라고까지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한국인이 '약한 종족'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이 자동적으로 '선한 종족'임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역사는 '약함'이 빈번하게 '악함'과 결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야말로 근대 한국인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자기 기만의 이데올로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외설적인(?) 예술을 규제해왔다. 멀리는 1950년대 정비석의 〈자유부인〉에서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 염재만의 〈반노〉, 가까이는 장정일의 〈아담이 눈들 때〉와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외설적인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고발 내지는 사법적 처벌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외설적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예술을 탄압하는 것은 예술과 사회의 경계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예술은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서는 안되며,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불온한 것은 예술에서도 표현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주류 예술관이다.
최근 국회에서의 박근혜 풍자 누드화 소동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뭔가 빗나간 문화적 이해의 문제로 보인다. 말하자면 서구 미술사에서 누드는 오늘날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 평가하든 간에 나름 역사적으로 축적된 표현의 문법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한국 미술에서 누드라는 것은 좀 생뚱맞게 차용된 형식일 수밖에 없다. 서구의 경우 전통적인 방식이든 아니면 현대적인 재해석이든 간에, 거기에는 일정한 의미의 고정과 재해석에 대한 규칙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 풍자 누드화에서는 전혀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정치적 충돌 이전에 시각적 문법의 부재가 불러일으킨 좌충우돌의 하나로 보인다.
일본에 저항하다가 귀향을 간 최익현이 중국을 기리는 글씨를 새겨놓은 것을 두고 오늘날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역사 의식의 결여라고 본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모두 이중국적자들이다. 그들은 중국인이면서 동시에 조선인이었다. 중국 황제의 신하이면서 동시에 조선왕의 신하였다. 이는 전혀 모순되는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