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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과 공포

내가 여기 가족이 있고 사유 재산이 있고 어린아이가 기다리고 있고 직장이 있고 내 비자가 합법적이고 세금을 내고 있고... 등등 기타 모든 사정과 하등 관계 없이 90일 동안은 집으로 갈 수 없다. 난데없다. 아이를 동반하고 있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미성년자를 동반한 경우에 대한 예외도 없다. 아이 역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고 학교에도 갈 수 없다. 학생들도 마찬가지고 출장자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 거다. 그냥 국적이 문제일 뿐. 그러니 저 행정명령은 말할 수 없이 황당한 동시에 매우 공포스럽기도 하다. 미국이 저런 짓을 7개 국가 국민 및 난민을 대상으로 난데없이 저지를 생각을 했다면 같은 짓을 어느 나라를 대상으로 해서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세정
  • 입력 2017.01.31 05:54
  • 수정 2018.02.01 14:12

트럼프가 미국 동부시간으로 지난 금요일 발효한 '이민(여기서 이민immigration이라는 용어는 단지 살러 어딘가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출입국 관리를 통칭하는 말이다)에 관한 행정명령'에 의하여

- '시리아 난민'이 미국으로 입국하는 것은 전혀 허용되지 않고,

- (시리아를 제외한) 모든 '난민'의 미국 입국은 120일간 정지되며,

- 무슬림이 인구의 다수인 7개 나라의 국민은 그들이 '난민이건 기타의 경우건' 90일간 미국으로 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

황당하다. 이거, 황당하지 않나?

외국인 노동자로서 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즉, 한국 국적을 유지하되 취업할 수 있는 적법한 비자를 가지고 일하면서 내 집에서 가족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이 행정명령이 아주 매우 더할 나위 없이 심하게 황당하다.

만일 저 7개 나라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리고 저 행정명령이 발해진 곳이 영국이라면(이런 멍청한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저런 멍청하고 사악한 일은 없을 거라고 정말이지 영국인들이 저렇게까지 제정신을 잃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만서도), 그리고 하필 지금 내가 어딘가 잠시 여행이라도 갔거나 출장이라도 다녀오는 길이라면 나는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이야기다. 출근도 할 수 없다. 입국장에서 입국을 거절당해서 돌아가거나(다만 브룩클린을 필두로 하여 캘리포니아, 메사추세츠, 버지니아, 워싱턴의 연방 판사들은 이미 미국에 도착해 공항에 억류된 난민들과 기타 정당한 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미국 외로 추방하지는 못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는 아예 출발지에서 비행기에 오를 수조차 없다. 내가 여기 가족이 있고 사유 재산이 있고 어린아이가 기다리고 있고 직장이 있고 내 비자가 합법적이고 세금을 내고 있고..., 등등 기타 모든 사정과 하등 관계 없이 90일 동안은 집으로 갈 수 없다. 난데없다. 아이를 동반하고 있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미성년자를 동반한 경우에 대한 예외도 없다. 아이 역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고 학교에도 갈 수 없다. 학생들도 마찬가지고 출장자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 거다. 그냥 국적이 문제일 뿐.

다만 다행히도 저 일은 영국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한국은 저 7개 국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서 저 7개 국가가 어딘지 알아본다면 이란,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멘이다. 이름을 주욱 한 번 읽었으되 선명하게 구별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집트는? 레바논은? 아랍에미리트는? 알려진 바로는 이들 국가 출신들이 9.11 테러를 행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이 7개 국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니 저 행정명령은 말할 수 없이 황당한 동시에 매우 공포스럽기도 하다. 미국이 저런 짓을 7개 국가 국민 및 난민을 대상으로 난데없이 저지를 생각을 했다면 같은 짓을 어느 나라를 대상으로 해서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해서 대한민국 사람에게도 저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거다. 저 7개 국가 중 리비아 이라크 예멘은 한때 테러지원국가로 미국에 지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정해제 되었다. 북한 역시 한때 미국이 지정한 테러지원국가였고 말이다. 지금은 지정해제 되었다. 그러니 북한도 위험하다고 하고 게다가 코리아는 다 코리아지 남북이 뭐가 다르냐 해버리면 어쩔 거냐는 거지. 저 7개 국가 출신들이 미국 내 테러를 저지른 일이 없다는 사실, 미국 및 유럽에서도 자생적 내지는 유럽 국가의 시민권을 가진 테러리스트들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 뭐 이런 '사실'에 기반한 논리적 반박이 지금 도통 통하지를 않는다는 게 문제라는 거다.

사실 저 행정명령은 난민에 대한 심한 몰이해에 가득찬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 및 그 지지자들이 떠올리는 급진적 무슬림만 난민이 아니다. 여성 할례를 피해 도망친 어린 소녀(위 행정명령이 인정하지 않겠다고 단언한 여성에 대한 폭력에 해당한다)도 난민 신청을 하는 것이고 독재정권에서 피신해 온 정치범도 난민 신청을 한다. 이 모든 사람들이 120일 동안 오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시리아 출신이라고 한다면 기약 없이 난민 신청조차 할 수 없어지는 것이고 말이다. 개별적 위험성을 따지지조차 않고 무조건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 행정명령은 그러니까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며 매우 비인도적인 것이고 반헌법적이며... 그냥 말도 안된다. 저런 사람을 뽑아 놓다니, 미국인들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란 말인가.

한국인들은 위의 7개 국가 출신이 아니고 무슬림도 아니라 괜찮다고 한다면, 몇몇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다들 그냥 외국인일 뿐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많은 한국인들이 동유럽 사람들과 러시아 사람들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 행정명령의 목적(Section 1. Purpose)란은 말한다 : 2001년 9월 11일 이후 많은 외국 출신 사람들이 테러와 관련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연루되었다고. 이들은 방문객, 학생, 취업 비자 등을 받아서 또는 난민으로 미국에 들어왔다고. 이쯤 되면 외국인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는 거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건 그냥 외국인 혐오이며 차별이다.

1월 29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포트워스국제공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입국의 금지된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한 소녀가 성조기를 흔들며 춤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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