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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어야 했던' 역사 속 출퇴근 이야기 4개

매일 전세계에서 5억 명의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다(책 '출퇴근의 역사', 이언 게이틀리 저). 말하자면 지금 이 글을 (어쩌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는 출퇴근 길에 스마트폰으로 읽고 있을 당신처럼 사람들에 치이고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적어도 5억 명 정도는 더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위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 잘 안다. 굳이 5억 명씩이나 있다는 사실을 몰라도 당신 양 옆을 꽉꽉 누르는 사람들만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생생히 느끼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런 얘기는 어떨까? 불과 100-150년 전만 해도, 출퇴근을 한다는 건 때로 '목숨을 거는 일'이기도 했다는 얘기 말이다. 산업화 초기, 서구에서 시작된 출퇴근은 지금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험하고 열악한 일이었다. 당시 사례들을 살피며 '그래도 지금이 낫'다는 안도감을 느껴보도록 하자.

1. 기차 매표소에선 언제나 생명보험을 함께 팔았다.

"...우선 그들은 용감할 필요가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철도는 정말로 위험했다. 매표소에서 승차권뿐만 아니라 '레일웨이 패신저스 보험회사'의 생명보험도 함께 판매했다. 증기 열차가 당시 사람들의 삶과 신체에 가한 위협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건은 1830년 9월 15일 리버풀-맨체스터 철도 개통식 때 저명한 하원의원 윌리엄 허스키슨이 조지 스티븐슨의 '로켓' 기관차에 치여 두 다리를 잃은 것이다. 허스키슨은 사고 몇 시간 뒤에 사망했다. 스톡턴-달링턴 철도 개통식 역시 무임승차자 한 명이 한쪽 발을 잃는 심각한 부상을 입음으로써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당시에는 기차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이 불구자가 되거나 사망하는 것만 같았다..."(책 '출퇴근의 역사', 이언 게이틀리 저)

지금과 같은 출퇴근의 역사는 1830년대 기차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본래 화물을 옮기기 위한 목적으로 발명되었던 기차는 승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었고, 당연히 안전장치, 사후 대책 등에 대해 무감각한 상태였다. ‘덤’으로 사람을 싣고 다니는 느낌이었기에 엄청나게 많은 열차 충돌, 탈선 사고가 발생했다. 때문에 영국 철도 역에선 승차권과 함께 생명보험도 판매했고, 미국 신문은 철도 사고를 대비해 언제나 지면을 비워놓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미국 철도는 초창기 레일을 철이 아닌 '각목 위에 철판을 덧대' 만들었기 때문에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진 각목이 사람의 목을 찌르는 사망사고까지 발생했다. 확실히 초창기 통근자들은 출퇴근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 대부분이 전문직들로서, 그냥 도시에 머물 수 있었는데도 교외로 나가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시보단 기차 사고가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2. 휴대용 비밀 화장실

"딱히 읽을 것이 없거나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이 이동 중에 할 수 있는 다른 소일거리도 있었다. ‘철도 여행자 안내서’는 콧노래를 불러보라고 추천한다... 콧노래는 화장실이 필요한 승객에게 특히 추천되었다. 영국의 기차는 189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화장실을 갖추기 시작했기에, 초기의 승객들은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생리적 욕구를 꾹 참아야 했다. 따라서 생리적 욕구에 응하고 싶은 승객은 잠자코 다리를 꼬거나, 아니면 바지 안에 집어넣어서 사용하는, 고무 튜브와 주머니로 이루어진 '휴대용 비밀 화장실'을 구입해야만 했다."(책 '출퇴근의 역사', 이언 게이틀리 저)

본래 화물 운송이 주목적이었던 기차는 초창기 승객을 배려하는 설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도 만들어 놓지 않았다. 승객들은 매 통근 때마다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튜브와 주머니로 만든 '휴대용 비밀 화장실'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189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화장실을 만들었다고 하니, 무려 5-60년 가까이 승객들은 고통을 감내했던 셈이다. 그런데도 철도회사에선 안내서까지 내면서 권한다는 게 고작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땐 콧노래를 불러보세요' 같은 거였으니, 승객들 입장에선 약이 올랐을 법도 하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으니 자칫 큰 실수를 해도 사진 찍힐 위험이 없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알았다면 훨씬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까?

3. 말똥이 가득했던 거리

"...1898년 뉴욕에서 열린 국제도시계획회의의 최우선 의제는 말로 인한 공해였다. 이 회의가 개최된 뉴욕의 말들은 매일 "대변 1,100톤과 소변 22만 리터"를 거리에 배출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특히 여름에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농부들이 추수로 바빠 거름에 사용할 말똥을 모으러 다닐 시간이 없다 보니 텅 빈 공터에 말똥을 쌓아놓게 되었는데 때로는 그 높이가 약 20미터에 달했기 때문이다..." (책 '출퇴근의 역사', 이언 게이틀리 저)

지금 우리가 기차나 전철을 타기 여의치 않을 때 버스를 타는 것처럼, 당시 사람들은 대체 수단으로 승합마차를 이용했다. 그 방법이 기차에 비해 더 안전했을진 모르지만, 결코 쾌적한 선택은 아니었다. 당시 도시의 공기는 심각한 말똥 냄새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승합마차를 탄다는 것은 그 공기를 잔뜩 마심을 뜻한다. 당시 마차 운행으로 유발되는 말똥 등의 공해는 지금 자동차 배기가스만큼이나 심각한 도시문제였다. 공터에 20m씩 똥 무더기가 쌓여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사고 등으로 죽은 말 사체가 토막 난 채 길거리에 널려 있었다. 처음 포드가 양산형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 미국 사회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도 운송수단으로서의 말로 인한 각종 오염 때문 아니었을까? 자동차 없이 말 개체수가 늘어났다면 1930년대엔 뉴욕 거리 전체가 3층 높이의 말똥에 파묻혔을 거라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4. 승객 밀어넣기

"...지난 10년 동안 뭄바이 교외 철도에서 사망한 사람은 무려 3만 6,000명에 달하고,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의 수도 이에 버금간다. 대부분의 사망 사고는 철로를 건너던 사람들이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열차와의 거리나 열차 속도를 잘못 계산해서 일어났다.. 사망 원인 2위는 열차에서 또는 열차 지붕에서 떨어지는 추락 사고였다 초밀도 승객 욱여 넣기에 수반되는 추가적 압박이 승객들의 성격마저 바꿔놓은 듯, 그들은 열차에 올라타려 할 때만큼은 생명이나 팔다리를 잃을 위험에 대해서조차 무관심하기만 하다." (책 '출퇴근의 역사', 이언 게이틀리 저)

90년대까지 한국 지하철역에는 '푸시맨'이라는 게 있었다. 통근 시간대 전철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밀어 넣는 역할을 맡았던 역무원이나 공익요원들을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우리의 전철은 인도의 뭄바이 교외 철도와 비교하면 약과다. 1853년 아시아 최초의 철도 시스템으로 출발한 이 열차는 통근 시간대마다 지옥을 보여주는데, 1제곱미터에 16명이 들어가는 엄청난 압박과 이를 피해 지붕 위로 올라간 승객들의 추락으로 매일 1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들의 통근도 매일 '목숨을 거는' 일인 셈이다. 사는 게 전쟁이라지만, 그것이 출퇴근 전쟁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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