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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세대에게 위로를

한국 청년의 삶은 더욱 힘들다. 세계 제일의 청년 자살률은 우연이 아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공부에 시달린다. 대학 입시와 취업 전쟁을 거치면서 이미 탈진 상태다. 용케 직장을 얻어도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길게 버텨봐야 20년 남짓이다. 그러니 '헬조선' 소리가 절로 나고 한국을 떠나고 싶을 수밖에는. 실로 안쓰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 잘못이 아니다. 우리 어른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 안경환
  • 입력 2016.10.11 08:09
  • 수정 2017.10.12 14:12
ⓒ연합뉴스

'아프니까 청춘이다.' 10여 년 전 청년 세대를 휩쓸었던 책 제목이다. '아프니까 중년이다' 등등 '아프니까~' 시리즈가 뒤를 이었다.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은 세대가 없다. 아프고 힘든 사연이 제각기 다를 뿐이다. '얼굴을 들어 하늘에 하소연하니 하늘 또한 힘들다고 하네(仰面問天 天亦苦)' 명나라 말기 한 시인의 명구다.

전쟁과 기아를 쓰리게 체험한 세대에게 대한민국은 기적의 나라다. 누가 뭐라 해도 이만하면 잘살기도 하고 괜찮은 나라가 됐다. 그런데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힘들여 세운 나라를 젊은이들은 '헬조선' '한국이 싫어서'라며 증오를 내뱉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국기를 내걸어야 할 국경일도, 가족과 친척이 함께 기려야 할 명절도 이들에게는 그저 '노는 날'일 뿐이다. 이런 청년들을 보면 실망과 분노를 넘어 강한 배신감마저 든다. 20세기 영국의 계관시인 오든 (W H Auden)의 '법은 사랑처럼'의 구절이다. '노쇠한 할아버지 준엄하게 꾸짖네. 법은 노인의 지혜다. 손자 놈 혀 빼물고 대꾸하네. 법은 젊은이의 감각이라고.' 언제 어디서나 세태는 마찬가지다. 윗세대는 잊히고 무시되는 것. 어른의 분노와 아쉬움 속에 그래도 역사가 발전하는 법이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를 극명하게 갈라놓는 기준은 '디지털 친밀도'다. 젊은이들의 영토, 도심 커피숍 풍경이다. 저마다 커피잔을 앞에 놓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들여다본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조심스럽게 종이신문이라도 펼치면 사방에서 눈초리가 날아든다. 대학 수업과 가족 식탁에서도 양상은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맞선 보는 자리에서도 젊은이들의 눈은 스마트폰에 붙박여 있다고 한다.

현대인은 누구나 신경쇠약 증상을 보인다. 젊은이들은 중증이다. 전문가 지적에 의하면 삶의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신체는 수백만 년에 걸쳐 걷는 속도에 맞춰 진화해 왔다. 그런데 20세기 동안 각종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며 소화해야 할 정보량이 100배나 늘었다. 20세기 말 이후로는 정보가 수만 배로 급등했다. 인터넷의 출현 때문이다. 이제 세계 인류는 너나 할 것 없이 사이버 정보 전쟁에 징집된 것이다. 선봉에 나선 신세대의 뒤를 따라 구세대도 자원입대한다. 원하는 정보에 쉽게 접근하는 편리함이 경이롭다. 그러나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기존의 문자와 이성의 세계가 무너진다. 책도 종이신문도 사이버 세대에게는 M1 소총만큼 낡은 무기다. 반면 신무기 영상의 완벽한 지배 체제가 구축됐다. 게임과 포르노가 대표적 예다. 성서, 셰익스피어, 우주선의 화성 착륙, 올림픽, 그 어느 것도 게임이나 포르노의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남자들이 주된 피해자다. 게임과 포르노는 청년의 사회적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근래 들어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약진이 돋보인다. 여성의 재능과 노력 못지않게 사이버 세대 남성의 나태, 방만, 일탈의 반사 효과도 적지 않다. 한국 청년의 삶은 더욱 힘들다. 세계 제일의 청년 자살률은 우연이 아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공부에 시달린다. 대학 입시와 취업 전쟁을 거치면서 이미 탈진 상태다. 용케 직장을 얻어도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길게 버텨봐야 20년 남짓이다. 그러니 '헬조선' 소리가 절로 나고 한국을 떠나고 싶을 수밖에는.

실로 안쓰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 잘못이 아니다. 우리 어른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리고 우리의 성공이 대물림될 것이라,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더 이상 세상에 확실한 성공을 보장하는 직업은 없다. 젊은 세대는 무얼 해도 아버지 세대의 성취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다그치지 말자. 그 대신 윗세대와는 달리 무얼 해도 굶어 죽을 염려는 없다.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자. 그리고 느긋하게 지켜보자. 다만 한 가지 충고만은 잊지 말자. 주위도 살피면서 천천히 나가라고. 전문가들의 처방이다. 문명에 지친 심신의 치료법은 의외로 간단한 것, '걷기'라고 한다. 근래 들어 '올레길' '둘레길' '힐링'이 유행어가 된 이유가 있다. '달리는 수레 위에서는 공자도 없다(奔車之上 無仲尼)'. 한비자(韓非子)의 명언이다. 삶이 황망할수록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청년 세대의 일상에 스마트폰과 노트북 못지않게 산책과 사색이 중요하다. 은퇴자들이 대종인 주말 등산과 아침 산책에 젊은이가 동참하는 나라, 그런 세상이 되어야만 대한민국의 장래가 밝을 것이다.

* 이 글은 조선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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