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이박사라고 하면 무슨 뽕짝이나 부르는 행사 가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인생의 여러 고비를 넘어 이박사가 관광버스 가이드를 하던 시절 손님들이 심심할 틈 없이 노래를 불렀다. 아는 곡이 많아서 모르는 노래가 없는 "이박사"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도 그때.
사이비 음반제작자에게 픽업돼 고속도로 휴게소용 메들리 테이프를 녹음하게 됐다. 결과는 대박.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 휴게소 테이프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사람은 주현미, 진성 등 손에 꼽는데, 이박사도 거기에 이름을 올렸다. 판매 수익금은 기획자가 고스란히 챙겼다.
기회는 우연한 곳에서 생겼다. 이박사의 트로트 메들리 테이프를 우연히 들은 일본 소니 음반사의 관계자가 일본으로 그를 스카우트 한 것이다.
소니 레이블 산하에는 큔소니(Ki/oon Sony)라는 실험적 음악을 주로 하는 레이블이 있었는데 여기서 이박사의 명반들이 터져나온다.
우리들이 그저 뽕짝인줄 알고 듣는 이박사의 뽕짝 메들리. 알고보면 반주를 한 팀은 무려 Denki Groove.
Shangri-La / Denki Groove (Rising Sun Rock Festival 2014 in Ezo)
테크노 그룹으로서는 일본의 정상에 서있던 그와 함께 만든 앨범이 바로 Encyclopedia of Pon-Chak.
BACK TO '92, ORIGINAL PON-CHAK STYLE remixed by Yoshinori Sunahara / E Pak-sa VS Denki Groove
이 앨범의 대 성공으로 이박사는 일본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는 한국말로 그냥 녹음을 하곤 했는데, 덴키 그루브의 입장에선 이박사의 목소리조차 하나의 악기로 본 것이다.
(전곡 감상은 링크에서)
이박사는 이 기세를 몰아 메이와 덴키(明和電氣)와 앨범을 낸다. 내가 생각하는 이박사가 낸 최고의 곡이라고 생각하는 Space Fantasy가 바로 이 앨범 수록곡.
이 앨범에서 두 팀은 의기투합해 아리랑메이덴(아리랑 明電)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낸다.
이박사 + 메이와 덴키 = 아리랑메이덴 - オレは宇宙のファンタジー Space Fantasy
귀 밝은 분들에겐 들리시겠지만, 이건 그냥 신디사이저로 뭉갠 테크노가 아니다. 메이와 덴키는 형제로 아버지가 명화전기라는 전파상(이던가 공장이던가)을 경영하던 분이셨다.
이 형제는 공장에서 만든 여러가지 기계로 소리를 만들어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들이다. 유튜브 영상에 보이는 앨범 커버의 악기가 그들이 직접 만들어 연주하는 악기들.
가만히 잘 들어보면 정체 불명의 악기 소리가 기계적으로 맞물리며 몽환적인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박사의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가 되어 전체에 녹아들어간다. 특히 타악기 쪽을 집중해서 들어보면 내 말이 뭔 말인지 알게된다. 당신이 만약 한국에서 가재발인가 하는 분이 리믹스를 한 것을 들었다면 단언컨대 이건 다른 음악이다.
메이와 덴키가 했던 더 좋은 사례가 분명 있었는데 지금은 못찾겠고, 메이와 덴키가 하는 음악의 단초를 찾아보실 수 있는 클립. 7분 52초에서부터 들으시게 걸어놨다.
명화전기
이박사는 그냥 뽕짝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본에서 테크노뽕짝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하시고 그 파장이 한국에 넘어오게 만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였다.
내가 오늘 사진 찍은 분이 바로 이런 분이었다는 걸 설명하고 싶었다.
지금 소개한 모든 노래는 내가 아마존 재팬을 통해 직접 구매해 소장하고 있는데, 언제든 정말 좋은 스피커로 전곡을 들어보는 게 소원.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