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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람들은 안경을 어떻게 쓰고 관리했을까?

스마트 폰 때문에 시력이 많이 안 좋아지고 있다. 40대에 일찍 노안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스마트 폰 탓이라고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특히 흔들리는 차에서 작은 액정을 들여다 보는 것은 눈에 안 좋다. 이런 걱정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초등학생의 시력도 스마트 폰 때문에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2015 학교보건통계조사'에서 시력 1.0 미만인 초등학생 비율이 30.9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렇게 눈의 건강이 위협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안경 착용으로 이어진다. 안과에 가서 시력검사를 하고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맞추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그만큼 안경은 흔한 물건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후기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처음으로 안경이 상륙했을 때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1. 안경은 우리나라에 언제 처음 들어왔을까?

“키아라 프루고니의 ‘코앞에서 본 중세’에 의하면 안경의 발명자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13세기 말경 유리 생산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이다. …. 안경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이호민이 1606년에 쓴 ‘안경명’이다. …. 문헌 자료는 아니지만, 이수광과 이호민의 자료보다 연대가 올라가는 자료도 있다. 김성일이 착용한 것으로 올려진 안경이 한 점 남아 있는 것이다. …. 안경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조선에 알려졌고, 이내 수입되었던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2. 조선 사람들은 안경을 어디에서 구입했을까?

“안경이 원래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듯, 조선 사람들이 안경을 구입하던 곳은 북경이었다. …. 1766년 1,2월 두 달 동안 북경에 머무른 홍대용은 “안경 파는 푸자(가게)는 각색 안경을 좌우에 무수히 걸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3. 후에 직접 안경을 만들었을까?

“….강세황이 주로 활동하던 18세기 중, 후반에 경주에서는 수정으로 안경을 만들고 있었고, 민기가 안경을 손에 넣은 17세기 전반에 이미 안경을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4. 독서인의 필수품 안경을 찬양하는 글은 누가 지었을까?

“안경은 독서인을 자처하는 조선의 사족에게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광명을 찾아준 안경에 환호했다. 안경에 대해 중요한 기록을 남긴 이익의 경우를 보자. 그는 ‘애체경명’에서 안경을 열렬히 찬양한다. ‘….이제 노인이 아니고 젊은이가 되었네. … 누가 이런 이치를 알아내었을까? 구라파(유럽)의 사람이로다! 저 구라파 사람이야말로 하늘을 대신해 어진 일을 하였구나.’ 이익은 사라진 젊은 시절의 시력을 되찾아준 안경을 통쾌한 물건이라 일컬으며, 그것을 처음 만들어낸 ‘구라파’ 사람을 찬양해 마지 않는다.”

5. 안경 관리법도 널리 퍼졌을까?

“안경이 널리 사용되면서 안경의 관리법도 나타났다. 이규경에 의하면, 나무를 태운 잿물에 하루를 담가두면 때를 제거할 수도 있고, 보통 때는 침으로 닦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안경에 윤을 내는 법도 있다. 이규연은 안경을 만든 뒤 상화수를 바르고 불 위에 구우면 윤이 난다고 말한다." (이상 책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강명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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