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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자가 술을 마셨건, 어떤 옷을 입었건 무슨 상관인가?": 이 판사의 '혁명적인' 판결문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 대학교에 박사 과정으로 재학 중인 무스타파 우루야(남성)와 만디 그레이(여성)는 2015년 1월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가끔 데이트를 즐기던 사이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사건'이 벌어졌다.

허프포스트US에 따르면, 우루야는 그레이와 함께 자신의 아파트에 들어서며 몹시도 화를 냈다. 그레이를 "창녀"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하기 싫다는 그레이가 오럴 섹스를 하도록 힘으로 강제했다.

그 후, 그레이를 강간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레이의 '동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둘이 이전에 데이트했건 어쨌건 말이다.

그해 2월부터 시작된 '성폭행' 재판에서 우루야는 "동의한 적 없다"는 그레이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서 '합의된 성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그레이가 '흥청망청 파티에 미친 여자'라며 인격을 깎아내리고, 그녀의 개인사까지 들춰내며 자신은 무고하다고도 주장했다.

이 사건은 지난 7월 21일 '유죄' 판결이 내려졌는데, 캐나다 온타리오 법원 판사 마빈 주커가 2시간 동안 읽어내려간 판결문이 가히 '혁명적'이자 '역사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판사 마빈 주커

판사 마빈 주커는 그레이가 평소 행실이 어땠는지, 과거 남자관계가 어땠는지 등등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성폭행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방이 동의했는가?'. 이것 하나뿐이라는 것.

판사는 그레이를 폄하한 우루야의 주장에 대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거짓말"이자 "피해자에게 트라우마를 지우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완전무결한' 피해자 상을 그려놓고 그에 부합하지 않으면 아주 손쉽게 '피해자 비난하기'에 나서는 문화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동의'에 관해 두 사람의 주장이 매우 다르면... '그게 바로 강간이다'"(마빈 주커 판사)

허프포스트US에 따르면, 판사가 판결에서 특히 강조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어떤 상황, 환경에 놓였건 '안 된다'고 하면 정말 '안 되는 것'이다..

피해자가 술을 마셨건, 밤에 혼자 나다녔건, 어떤 옷을 입었건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요점은, 성폭행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아래는 허프포스트US가 전한 179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의 주요 대목들이다.

'전형적인 강간범'에 대한 인구학적인 프로 파일 같은 건 없습니다. 강간범을 정형화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만약 고발된 강간범이 피해자와 평소 친구였다면, (강간하기 위해) 관계를 이용하고, 피해자의 신뢰를 저버린 강간범의 사악한 행동을 비난해야 합니다.

('친구 관계인데, 정말 강간한 게 맞아?'와 같은) 강간 피해자를 의심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하지만..'피해자 비난하기'는, 정말 불행히도, 너무도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 문화는 정의를 가리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게 하는 데 가장 거대한 장애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책임 지우기'와 '비난'은 가해자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성폭행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 취약한 피해자의 상태를 이용하고, 피해자의 신뢰를 저버린 바로 그 가해자 말입니다.

'강간'은 피해자를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섹스를 무기로 사용한 매우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도,

강간을 그저 '성관계' 정도로, 성적으로 자극받아 행한 욕정의 한 행동 정도로 인식하는 잘못된 믿음이 퍼져있습니다.

'강간'과 '섹스'를 법적으로, 상식적으로 명확히 구분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저 '성적 욕구를 조절하지 못했을 뿐인' 상황이라는 건 없습니다.

'멋짐'과 '폭력' '사악함' '변태적 일탈'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말입니다.

따라서 '괜찮은 남자가 어쩌다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우루야는 구체적인 형량이 나오기 전까지 구금된다. 구체적 형량은 10월 24일 선고될 예정이다.

무스타파 우루야

무스타파 우루야

캐나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이날 판사는 이런 말도 했다.

피해자는 사건 후 바로 경찰서에 갔는가. 아니면 수일 후, 수 주일 후, 아니면 수개월 후에 갔는가?는 문제 되지 않는다. 경찰에 아예 신고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피해자가 모든 불쾌한 세부사항을 순서적으로 조리 있게 잘 기억하는가. 아니면 조금씩 이것저것을 시간에 무관하게 기억하는가. 보통 사람들은 큰일을 당하면 중요 부분만 기억할 수 있다. 사건이 기억을 흩으려 놓았을 수 있다. 여자는 무서워서 긴장해서 누워 있었다. 그러므로 가해자를 왜 대항하지 않았나, 도망치려고 몸싸움하지 않았나? 만일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노’라면 그가 법정에서 하는 모든 진술은 신빙성이 없는가.

만디 그레이

캐나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그레이는 자신의 이름을 보호하기 위해 걸어둔 보도금지 조항을 과감하게 취소한 뒤 보도자료 등을 돌리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혀왔으며, 유죄판결 후 아래와 같은 소감을 남겼다.

"사법제도가 피해자에게 너무 가혹해서 기쁜지 어쩐지 모르겠다. 이번 같은 판결을 기대하는 것은 사건 통계로 보면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사건 고발의 첫날부터 싸웠다. 이날 경찰관이 내가 '섹스에 동의한 것 같다'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판사 주커는 1990년대부터 가정법원 판사로 가정문제를 아이들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여성과 법에 관한 책도 2권을 저술했다.

(중략)

그레이는 사건이 그녀에겐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크대학교를 온타리오주 인권옹호위원회에 제소했다. 요크가 같은 반 학생이나 교직원들에게서 성폭행당한 여성들을 보호하는 분명한 절차와 기준이 없고 이를 확립하겠다면서도 실제론 자꾸 지연시킨다는 것. 그레이는 자기의 학위논문 방향을 ‘교도소 안의 여인들’에서 성폭행으로 변경했다.(캐나다 한국일보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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